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하는 것이 정치”라고 말했다. 손혜원 무소속 의원 재단과 측근 그리고 일가의 목포 부동산은 ‘서생적 문제의식’의 산물일까? 아니면 ‘상인적 현실감각’의 결과일까?

손혜원 의원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침체된 목포 원도심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나전칠기박물관과 공방을 만들려고 한 것은 서생의 문제의식을 풀고자 상인의 현실인식을 동원한 것으로 본다. 반면 비난하는 쪽은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국토교통부(국토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 지역으로 선정될 곳에 손 의원 측이 미리 부동산을 산 것은 상인의 욕심을 위해 선비의 명분을 핑계로 삼은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자신을 둘러싼 정반대 서사가 충돌하는 가운데 손 의원은 1월23일 문제의 적산가옥에서 90분 동안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보유한 100억원 정도의 가치가 있는 나전칠기 유물과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 자산을 전라남도나 목포시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의 행위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공동취재단1월23일 손혜원 의원은 목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신이 수집한 나전칠기와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 자산을 국가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라는 저널리즘의 6하 원칙에 따라 손 의원 측의 부동산 구입 경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일단 ‘누가’ 샀느냐다. 이 지역에서 손혜원 의원이 본인 명의로 산 부동산은 없다. 손 의원 남편이 대표로 있는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과 손 의원 보좌관의 남편 그리고 손 의원의 조카들이 22필지 정도의 부동산을 구입했다. 하지만 손 의원은 본인이 주도하고 결정해서 이 부동산을 샀으며 조카들에게도 증여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권해서 사게 했다고 말했다.

다음 ‘언제’의 문제다. 손 의원이 이 지역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 것은 대선 기간인 2017년 3월이다. 이후 2017년 4월에 조카 손소영씨가 카페를 열기 위해 건물을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전반기까지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이 주요 건물을 구입했다. 이곳은 2017년 12월 국토부 도시재생 뉴딜사업 지구로 선정되었고 2018년 8월에는 문화재청이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사업 지역으로 지정했다. 국토부 사업으로는 250억원(국비 150억원, 지방비 100억원) 정도가, 문화재청 사업으로는 500억원 정도가 이 지역에 투입된다.

그다음은 가장 중요한 ‘어디서’의 문제다. 손 의원 측이 부동산을 집중 매입한 목포시 대의동 일대는 쇠락할 대로 쇠락한 원도심의 중앙에 있다. 그곳에서도 주로 폐가로 방치되었던 건물을 손 의원 측이 매입했다.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왔고 근대건축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의 소유자이기도 한 지역 상인은 “뉴스를 보고서야 손 의원이 이곳에서 건물을 샀다는 것을 알았다. 상권이 죽어서 돈을 줘도 안 들어갈 곳인데 그렇게나 많이 샀다고 해서 의아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선정된 번화로는 밤이면 점포들이 대부분 문을 닫는다.
손 의원 측이 부동산을 직접 매입한 번화로 일대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목포의 중심가였던 ‘본정통(혼마치)’이었다. 목포역과 목포항의 중간에 있는 이곳은 서울로 치면 명동 정도에 해당하는데, 1980년대까지 목포 상권의 중심이었다가 이후 쇠락한다. 보통 지방도시의 원도심이 쇠락하는 이유는 시청이나 도청이 이전하거나 신도시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목포도 마찬가지다. 하당 신도시와 전남도청이 들어선 남악 신도시 쪽으로 상권이 이동하면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손 의원에게 건물 팔고 탈출했을 것”

목포는 여기에 몇 가지 이유가 더해진다. 목포는 항구다. 항구도시의 핵심은 해상운송이다. 목포 북항이 들어서면서 목포항은 기능이 약화되었다. 또한 섬 인구가 줄고 압해대교 건설로 신안군 섬들이 연륙되면서 목포항을 이용하는 인구는 더욱 줄었다. 어업 인구 또한 줄어서 목포항 인근에는 항동시장을 제외하고는 어구를 파는 선구점 정도만 겨우 명맥을 이어나갈 정도로 상권이 약해졌다.

문화재거리로 지정된 번화로에는 빈 상가 건물이 즐비하다. 낮에는 그럭저럭 상가 꼴을 갖추고 있지만 밤이 되면 일제히 불이 꺼져 공동화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번화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쇠락한 이곳에 남은 고객은 이제 노인들뿐이다. 그래서 초원관광호텔이 초원실버타운으로 바뀌었고 거리의 큰 건물 중에서도 여러 채가 노인요양 시설로 바뀌고 있다. 손혜원 의원 측근들이 이곳의 건물을 쉽게 매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처럼 거리가 침체되었기 때문이다. 한 상인은 “손 의원에게 건물을 판 사람은 팔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팔고 탈출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이곳 땅값은 떨어지기만 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위는 이 일대를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목포시는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그동안 여러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불 꺼진 도시는 일어설 줄을 몰랐다. 얼마 전까지 이 거리의 이름은 ‘1897 개항문화의 거리’였다. 손 의원이 집중 매입한 지구 양쪽으로는 ‘민어의 거리’와 ‘건해산물의 거리’가 있다. 번화로와 나란히 뻗어 있는 영산로는 ‘빛의 거리’여서 도로 위에 아치형 조명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목포국제여객터미널에 중국 크루즈선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는 이곳을 차이나타운으로 조성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런 요란한 시도에도 상권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다음은 ‘무엇을’ 샀느냐다. 손 의원 측이 나전칠기박물관 건축을 위해 산 건물은 문화재거리 안에 있지만 등록 문화재로 선정되지 않았다(보좌관 남편 건물만 선정). 적산가옥인데, 개별 문화재로 지정될 정도의 가치가 있거나 보존 상태가 좋은 건물은 아니다. 등록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손 의원 측이 산 건물에는 수리비가 따로 지원되지 않는다. 손 의원은 새로 짓지 않고 건물의 뼈대를 살려서 쓰겠다고 밝혔다.

이 구역의 특징 중에서 감안해야 할 요소가 있다. 필지가 작다는 점이다. 같은 지붕 아래 있는 건물도 3~4개로 필지가 나뉘어 있기도 하다. 손 의원은 필지가 작아서 심지어 한 필지를 샀더니 그 안에 딸려온 작은 필지 땅도 있었다고 밝혔다.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이 구입한 땅이 총 14필지나 되는데, 전체 면적이 260평밖에 안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구입한 14필지를 14채로 표현하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손혜원 의원 측이 매입한 목포시 대의동 일대는 문화재청이 선정한 ‘근대역사문화공간’과 국토부가 선정한 ‘도시재생 뉴딜사업’ 구역이 겹치는 곳이다.
다음 ‘왜’ 샀느냐이다. 손 의원은 이곳에 나전칠기박물관과 나전칠기 공방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나전칠기 장인들을 데려와 부지를 보여주고 장인의 부인들도 만나서 설득했다고 한다. 그 결과 나전칠기 장인 세 명이 이곳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나전칠기를 향한 손 의원의 애착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이번 기자간담회 때도 손 의원은 자신이 ‘대한민국 최고의 나전칠기 전문가’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손 의원이 나전칠기 장인과 공동 작업한 ‘조약돌’이라는 작품이 대표적인 팝아티스트인 데이미언 허스트에게 팔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샀느냐의 부분이다. 이때 역할을 한 사람이 나중에 손 의원이 ‘거리의 큰손’이라고 비난한 정 아무개씨다. 조카가 카페를 할 만한 곳을 물색하던 손 의원에게 정씨가 적극적으로 다가와 도와주어서 구매가 이루어졌다고 했다. 손 의원은 부동산 투기라고 하는 것은 단기간에 수익 창출을 위해서 사고팔 때 쓰는 말인데, 자신이 관여된 측은 장기적인 박물관 운영을 위해 구매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매 목적이 아니라 박물관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산 것이기 때문에 투기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제 정반대의 서사다. 반대편에선 손 의원 측이 부동산을 산 시기 전후에 이 거리가 국토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 지구로 선정되고 문화재청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된 점을 지적한다. 미리 알고 산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먼저 ‘누가’에 대한 부분이다. 손 의원을 의심하는 이들이 주목하는 인물은 김지민 목포대 건축학부 교수다. 2017년 5월부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교수는 목포시가 문화재청에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사업 신청을 할 때 자문 역할을 했다. 김 교수는 목포시 향토문화재위원인 자신이 신청부지 규모를 정하고 구획을 확정하는 데 참여했다고 밝혔다.

“목포의 진짜 얼굴은 그쪽이 아니다”

손 의원과 김 교수는 2017년 3~6월, 100일 남짓 동안 최소 세 차례 만났다. 손 의원이 3월19일 목포 문화예술인협동조합의 사무실 ‘나무숲’을 방문했을 때, 5월12일 손영선 화백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6월29일 목포시장과 함께 ‘목포 근대문화유산 보존과 활용방안’이라는 주제로 정책 세미나를 했을 때 김 교수도 함께했다.

5월12일 손영선 화백의 작업실에서 촬영한 단체 사진에는 손 의원과 김 교수가 나란히 찍혔는데 ‘거리의 큰손’ 정 아무개씨도 옆에 있다. 이날을 비롯해 정씨는 최소 2회 이상 손 의원과 김 교수가 있는 자리에 함께 있었다. 정씨와 정씨 일가는 번화로 일대에 많은 건물과 땅을 구입했다. 전체적으로 20필지인데 필지당 면적이 넓어서 손 의원 측보다 훨씬 많은 땅을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 의원을 비판하는 쪽은 문화재거리 지정과 관련해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전문가와 그 지역에서 가장 심한 투기를 한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 그가 함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손 의원은 정씨가 번화로에 집을 사기 시작한 것은 김 교수 때문이 아니고 자신이 조카에게 집을 사게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김 교수와 사적으로 만나서 (주택 구입과 관련해) 상담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언제’와 관련한 부분은 도시재생 지원 사업 정보를 미리 알았다는 의혹과 직결되는 이번 논란의 핵심이자 검찰 수사 대상이다. 손 의원은 직권남용과 공무상 비밀 누설죄, 그리고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당했다.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남부지검도 손 의원의 도시재생 지원사업 사전 인지 여부를 집중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

‘어디서’와 관련해 번화로의 다른 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번화로는 가운데 목포진공원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뉜다. 손 의원 측이 건물을 산 오른쪽은 일제강점기에 상가였다. 반면 왼쪽은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남촌’으로 구 일본영사관 건물과 구 동양척식회사 건물 등 적산가옥이 많이 남아 있다. 해방 이후에도 이곳은 목포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발전했다. 조선내화 창업주였던 이훈동 회장의 저택을 비롯해 보해양조 사장의 저택 등 목포 유지들의 집이 대부분 이 동네에 있다. 번화로 왼쪽 구역에 사는 한 공예가는 “목포의 진짜 얼굴은 손혜원 의원 측이 구입한 상가 쪽이 아니라 이곳 주택가 쪽이다. 타지에서 손님이 와서 목포를 보여준다면 가장 번듯한 곳부터 보여주는 것이 맞지 않나. 이쪽은 이미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들어서서 활성화되어 있다. 그런데 손 의원 측이 부동산을 산 상가 쪽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왜’이다. 목포 시민들이 손 의원에게 온정적인 이유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목포의 현지 여론은 ‘손 의원만큼 목포에 신경 써주는 사람도 없다’는 쪽이다. 기자간담회장 앞에서 손 의원을 비난하는 누군가가 1인 시위를 하려 하자 목포 시민들이 그를 밀어내기도 했다. 그 이유는 목포 시민들의 소외감이 크기 때문이다.

목포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 중 한 곳이다. 등록 문화재이기도 한 조선내화주식회사 구 목포공장 부지 옆에서 동네 노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중 한 노인이 버려진 공장 굴뚝을 가리키며 “목포에는 큰 기둥이 저 세 개뿐이네. 근디 셋 다 연기가 안 나는 굴뚝이네. 목포가 그런 도시네”라고 말했다. 여수(여천)에 화학산업단지가 들어서고 광양에 제철소가 들어섰지만 목포는 이렇다 할 성장의 계기를 갖지 못했다.

다음 ‘어떻게’에 대한 부분이다. 손 의원이 밝힌 대로 수십억원어치의 나전칠기 컬렉션을 기부할 의사가 있다면 굳이 무리해서 땅을 매입해 박물관을 직접 짓지 않아도 목포시가 시설을 제공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구입 단계에서 손 의원의 지인들도 이런 문제가 생길 것을 예상했다. 손 의원의 한 지인은 “직접 구입하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내셔널트러스트운동 같은 곳과 함께해서 사회적으로 자산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냈었다”라고 말했다.

‘손혜원의 하수인’으로 묘사된 사람들

이번 논란을 겪으며 목포 시민들은 여러 번 상처를 입었다. 이곳이 지역구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처음 손 의원을 옹호하면서 ‘목포가 해외투자 받은 격’이라고 표현했다가 지역에서 비난을 듣기도 했다. 목포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손혜원’이라는 이름을 지우면 비로소 보이는 것에 주목해달라고 부탁했다. 목포는 손 의원만 바라보고 있는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손 의원 주변 인물들도 ‘손혜원의 하수인’으로 묘사되면서 존엄을 잃었다. 서울 경리단길의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 전 재산을 처분해 목포에 내려와 카페를 연 손소영씨나 역시 진정성 있는 문화기획자로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 목포에 구심점을 만들려고 했던 김승민씨도 증여와 차명 의혹 때만 이름이 오르내릴 뿐이다. 조희숙 보좌관 역시 전주한옥마을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도시재생 전문가인데 이번 사태의 ‘종속 변수’로만 언급되었다.

손혜원이라는 이름을 빼고도 목포는 이미 조용히 변하고 있었다. 홍동우·박명호 ‘공장공장’ 소장이 추진하는 ‘괜찮아 마을’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건물주가 빈집을 산 뒤 10년 동안 무상 임대하는 조건으로 빈집을 확보해 청년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바꿔놓고 있다. 새로 목포 도시재생지원센터장으로 임명된 전은호 전 시민자산화지원센터장은 공공자산화에 관한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손 의원 외에도 목포에 인재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것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목포 출신의 도시 기획가로 ‘서울로 7017’의 초기 기획자인 조경민 서울산책 대표도 마찬가지다. 목포의 도시재생 사업을 돕고 있는 그는 “외지인 중에서도 목포가 지닌 가능성에 주목하고 본인의 콘텐츠를 접목하려는 방식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 목포 출신이거나 목포 원도심 거주자 가운데서도 도시재생의 흐름을 읽고 본인 소유 건물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목포·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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