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권 독립은 헌법이 보장한다. 법관의 선발 과정을 법으로 정하고 신분을 보장한다. 심리와 판결은 공개가 원칙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공정한 재판을 위해 비슷한 장치를 둔다. 국회의원이 이 뿌리 깊은 원칙에 도전하는 일이 일어났다. 재판 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해 사법부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고위 판사들은 이를 가로막기는커녕 ‘전달책’을 자임했다. 2015년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과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사건은 지난 1월15일, 검찰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서 공소장을 추가로 제출하며 알려졌다. 공소장에 따르면 2014년 12월 서영교 의원은 한 지인에게 “아들이 강제추행 미수죄로 재판을 받게 됐으니 법원에서 벌금형의 선처를 받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 지인은 2012년 총선 때 연락사무소장을 맡았던 사람이다. 서영교 의원은 선고 사흘 전 국회 파견 판사를 의원실로 불러 “벌금형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파견 판사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이메일을 한 통 보냈다. “서영교 의원이 직접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서영교 의원은 피고인이 공연음란의 의도는 있었지만 강제추행의 의도는 없었고, 추행의 의사가 없었으니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입니다.”

ⓒ연합뉴스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판 청탁 의혹에 대해 기억이 없다는 입장이다.
임종헌 차장은 그 재판이 열리는 서울북부지방법원장과 법원행정처 기획총괄심의관에게 연락해 담당 판사에게 청탁을 전달했다. 담당 판사는 5월21일 피고인에게 벌금 500만원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명령 80시간을 선고했다. 2012년에도 공연음란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의 전력에 비춰 논란의 여지가 있는 형량이다. 서영교 의원은 “청탁한 기억이 없다”는 입장이다. 1월21일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의원실을 통해 ‘억울함이 없는지 살펴봐달라’는 메시지가 전달됐을 수는 있겠지만 검찰이 제시한 날짜에 (국회 파견) 판사를 만나지 않았다. (중략) 도저히 기억이 소환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영교 의원의 해명을 받아들인 모양새다. 1월17일 원내수석부대표 및 관련 상임위 위원 사임을 수용한다고 밝힌 데에 그쳤다. 그 밖의 징계는 없었다. “공소장 내용만으로 혐의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이유였다. 다음 날 홍영표 원내대표는 “과거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으로서 민원을 받아 관행적으로 했던 것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작은 문제라는 뉘앙스의 발언도 나왔다. “국민들의 준엄한 기준을 볼 때 비록 사소한 문제라 하더라도 영향을 미치고, 재판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다 해도 (중략) 본인이 사퇴를 결심했고 당이 수용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공세도 그리 거세지 않았다. 서영교 의원보다 목포 원도심 건물 매입 논란에 휩싸인 손혜원 의원을 비판하는 데에 공을 들였다. 1월16~24일 자유한국당은 손혜원 의원 관련 대변인 논평을 34차례 냈는데, 서영교 의원에 대해서는 9차례에 그쳤다. 당내 회의에서도 서영교 의원 건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1월17일 나경원 원내대표는 손혜원 의원에 대해 “정말 저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라며 장시간 발언한 반면, 서영교 의원 건에 대해서는 비교적 짧게 이야기했다. 1월21일에야 자유한국당은 서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했다. 자연히 국회 안팎에서 “자유한국당도 켕기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평이 나왔다. 근거 없는 억측이 아니다. 서영교 의원 사건이 적힌 검찰 공소장에는 노철래·이군현 전 새누리당 의원의 재판에 대해 2016년 8월 임종헌 차장에게 선처를 부탁한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이 등장한다. 이 인물은 자유한국당 소속 현직 의원일 가능성이 높다.

ⓒ사진공동취재단양승태 전 대법원장(가운데)의 목표는 상고법원 도입이었다.
서영교 의원의 ‘입법 거래’ 의도는 불확실

재판 청탁은 정말 정치권에 공공연히 퍼진 관행일까. 그래서 사안을 가볍게 다뤘을까. 한 국회 관계자는 “서영교 의원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사건을 듣고 놀라는 이도 별로 없다. ‘잘못 걸렸다’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아는 의사를 통해 병실을 우선 배정받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말을 들었다. ‘파견 판사의 주된 역할이 국회의원 민원 들어주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라고 말했다.

법학자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청탁이 성공해서 양형이 어떻게 됐는지는 다음 문제다. 국회의원이 판사에게 부탁한 시점부터 이미 어마어마한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하 교수는 형사처벌 가능성은 낮게 봤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된 2016년 11월 이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직권남용 혐의도 적용하기 어렵다고 하 교수는 말했다. “어떤 힘을 행사할 권한이 있어야 남용도 가능한데, 애초에 국회의원이 사법부에 관여할 권한 자체가 없다.” 2016년 이전에는 유사 사례가 적발돼도 처벌 가능한지조차 불분명했다는 이야기다.

양승태 대법원이 얻고자 했던 것은 상고법원이었다. 서영교 의원의 청탁을 받은 국회 파견 판사는 상고법원 입법추진 TF 대응전략팀에 속해 있었다. ‘상고법원 관련 국회 동향 파악 및 주요 타깃별 맞춤형 설득 전략 개발’이 그의 업무였다. 지난해 7월31일 공개된 법원행정처의 98번 문건(문건 번호는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붙인 일련번호 기준)에는 이런 전략이 등장한다. “[야당 설득 거점 의원3] 전병헌 의원 (중략) 최근 개인 민원으로 법원에 먼저 연락→민원 해결될 경우, 이를 매개로 접촉·설득 추진.”

서영교 의원도 ‘입법 거래’를 감행할 의사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서 의원에게 ‘지인의 민원과 상고법원 법안을 맞바꾼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청탁 시점인 5월18일 뒤에는 법안 찬성 쪽으로 기울어야 한다. 그러나 법원행정처 문건에 따르면 서 의원은 2015년 2월15일 ‘찬성’→3월24일 ‘유보’→6월7일 ‘유보’→6월30일 ‘악화 가능성 있음’으로 의견이 바뀌었다. 5월21일 지인의 재판과 특별한 상관관계를 찾기 어렵다. 2015년 9월 작성한 142번 문건에서 법원행정처는 서 의원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렸다. “기본적으로 사법부와 우호적 관계 유지하려는 생각에서 상고법원에 대해 사실상 찬성에 가까운 유보 입장 취해옴. 그러나 정치적 상황에 항상 민감하게 촉각을 세우고 대응하는 스타일답게, 한명숙 사건 선고 이후 야당 내 분위기에 편승하여 최근 신중론으로 돌아섬.”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에 상고법원 도입은 지상 목표였다. 열쇠를 쥐고 있는 여야 법사위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용의가 있었다. 사법부가 헐값에 내놓은 사법권을 의원들은 손쉽게 사들여 ‘관행’이 되기에 이르렀다. 상고법원 법안 통과가 사실상 어려워진 2015년 11월 말에야, 146번 문건에서 법원행정처는 “사법부의 대외적 위상 및 이미지 실추”를 우려했다. 최소한의 체면을 차리기 위해 “지금까지 입법 성사를 위해 감수해왔던 (국회의원들에 대한) 저자세 스탠스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고 썼다. 한 국회의원이 ‘지역구 연락사무소장의 아들’에게 베푼 선심은, 양승태 대법원이 사법부의 위상을 어디까지 떨어트렸는지 보여주는 예시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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