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박은옥. 그 두 사람이 몇 년간 두문불출했다. 딸의 이혼 때문이었다. 수십 년을 한 몸처럼 붙어 다닌 부부였기에 딸의 이혼은 충격이 컸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완전 나가떨어졌다’. 외부 활동도 거의 중단하고 칩거했다 (뮤지션인 딸 정새난슬씨는 이후 2016년 정규 앨범 〈다 큰 여자〉를 냈다).
다른 몰입 대상을 찾았다. 정태춘은 가죽공예와 사진 그리고 글쓰기에 빠져들었다. 가죽공예를 하고 사진을 찍는 일은 일종의 묵언 수행이었다. 해 뜨면 들어가서 가죽을 다듬고 해 지면 나오는 일을 반복했다. 온종일 피사체를 쫓아다니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조용히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다시 그의 말문이 트일 무렵 친구들이 두 사람을 불러냈다. 노래 인생 40주년을 기념하자는 것이었다. 2009년 데뷔 30주년 때도 지인들이 ‘정태춘·박은옥 데뷔 30돌 기념사업추진단 100인 위원회’를 꾸렸다. 이번에도 다시 지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념하는 방식이 남달랐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기념 음반 출시와 콘서트 말고 다른 행사가 많았다. 40주년 기념 전시회, 학술대회, 출판, 영화가 예정되어 있었다. 들여다보니 정태춘과 박은옥은 핑계였다. 그들을 통해 우리 대중음악사를 정리하려는 야심찬 기획이었다.
김준기 전 제주도립미술관장이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의 총괄감독을 맡아 비엔날레급 기획을 했다. 음악평론가 박준흠씨가 수석 프로그래머로 대중음악 연구자와 문화예술인 그리고 후배 가수들과 함께 ‘트리뷰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문화예술기획 봄의 강성규 대표가 기획을 맡고, 〈워낭소리〉의 제작자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가 둘을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다.
그들은 정태춘·박은옥 부부를 연구 주제로, 그림의 소재로, 창작의 뮤즈로 삼았다. 4월12~30일 서울 세종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열리는 〈다시, 건너간다〉에는 미술작가 40여 명이 참여한다. 4월 초 제주를 시작으로 11월까지 전국 순회 콘서트가 열린다. 후배 뮤지션들이 둘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앨범도 낸다.
그들의 음악적 성취를 학술적으로 기념하는 것이 이채롭다. 오는 6월에는 한국대중음악학회가, 7월에는 한국음악산업학회가 두 사람의 40주년을 기념해 포럼을 연다.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한국의 밥 딜런’으로 호명되던 이가 바로 정태춘이다. 망향과 탈향 의식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가사는 시조의 정형성을 벗어난 사설시조처럼 자유분방하면서도 서정적이고 또한 비장했다. 〈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를 쓴 문학평론가 오민석 단국대 교수가 정태춘 노래의 가사를 분석한다.
정태춘·박은옥은 김민기와 한대수가 문을 연 ‘한국적 모던 포크’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같은 음악적 성취에 대한 연구 작업은 음악평론가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가 맡고 있다. 수석 프로그래머인 음악평론가 박준흠씨는 36명 필자와 함께 〈정태춘 박은옥 40 트리뷰트〉 책을 낸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김종휘 서울문화재단 대표, 이영미 대중예술 평론가,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등이 이 작업에 참여한다. 곽재구·박남준·이원규 등 시인, 박민규·천명관 등 소설가, 이철수 판화가, 임순례 감독 등 문화예술인도 나름의 ‘정태춘론’ ‘박은옥론’을 펼친다. 장유정 단국대 교수·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등 평론가들은 정태춘(1~3집), 박은옥(1~2집), 정태춘·박은옥(4~11집) 정규 음반의 리뷰를 싣는다. 정태춘 본인이 과거에 냈던 시집 〈노독일처〉도 복간하고 신간 시집 〈슬픈 린치〉도 올해 출간한다.
음유시인이면서 방랑시인인 정태춘은 우리 시대의 아웃사이더다. 늘 싸울 자리를 찾아 다리를 뻗었다. 그래서 정태춘이라는 이름은 우리 노래운동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음반 사전검열 철폐운동’ 당시 대중음악가가 사회적 의제를 가지고 싸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1991년 심의를 받지 않은 비합법 음반 〈아, 대한민국〉을 공개 발표했고, 1996년 마침내 대법원에서 ‘가요 사전검열 위헌’ 판결을 받아냈다.
문제의식은 대중음악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대중음악을 향한 국가의 관심은 오직 시장가치에만 집중되어 있는데, 대중음악도 다른 예술 장르처럼 공공영역에서 정책을 통해 좋은 생산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정태춘의 문제의식이다. 7월에 열리는 한국음악산업협회 포럼에서는 이런 내용을 기반으로 대중음악의 공공성에 대해 집중 논의한다.
40주년 기념 기간에는 종합예술인으로서 정태춘의 예술적 면모를 볼 수 있다. 그중 지금의 정태춘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붓글’이다. 서예 작품 같은데 글씨보다는 글로 봐달라며 붓글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구절을 담았는데 사색적이고도 토속적인 가사였다.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로또 복권을 콜라주로 붙이는 등 표현 방식에 거침이 없었다.
그는 글 쓰는 마음가짐에 대해 말했다. “리영희 선생은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절필한다 했고, 신영복 선생은 자신이 쓰는 것은 서예가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에 충실하려고 한다. 할 말 없으면 붙잡지 말고 할 말 있으면 반드시 가다듬어라, 라는 마음으로 붓을 잡는다.”
둘 다 1978년 데뷔 음반을 냈지만 올해를 40주년으로 삼은 것은 부부가 함께 활동하기 시작한 해가 1979년이기 때문이다. 40주년을 맞아 7년 만에 새 음반 〈사람들 2019〉도 낸다. 음유시인과 방랑시인, 노래운동가, 종합예술인, 아웃사이더 외에 이번 음반으로 어떤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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