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2공항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 (천막촌)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1월14일이었으니, 제주도청이 공무원 수백명을 동원해 농성자들을 기습 진압한 지 대략 일주일 만이었다. 메일을 보내온 이는 행정대집행 이후 여러 단체에서 다시금 천막과 텐트를 치고 도청 현관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며, 2월16일에 낭독회를 진행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이 제2공항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문화 행사를 기획한 듯 보였다. 그는 당연하게도 이번 농성이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천막촌은 해학적으로, 즐겁게 싸우기로 했다는 계획을 덧붙여 들려주었다.

“팔다리가 들려 치마가 올라가고, 옷이 벗겨지고…”

여러모로 난감했다. 첫째는 내가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아서였고, 다음으로는 제안해준 날짜에 이미 다른 일정이 잡혀 있어 그곳에 갈 수 없어서였다. 고심 끝에 정중히 거절하는 메일을 보내며 일단은 마음을 먼저 보태겠노라고 전했다. ‘제주도청 앞 천막촌 사람들’에서 농성을 벌이는 한 여성 활동가의 글을 찾아 읽었다.

ⓒ정켈

“20일째 아침에 쓴다. 여기는 제주도청 앞 천막촌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여전히 (제주도청 앞) 그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로 끝나는 글은 자연히 지난해 인구 60만인 제주도에 관광객 1600만명이 몰려왔다는 사실과 작년 제주도 해변에서 수거된 해양 쓰레기의 양이 8t 트럭 약 1800대 분에 이르며, 얼마 전 BBC 방송에서 너무 많은 관광객으로 씨름하는 세계 관광지 다섯 곳 중 하나로 제주도를 꼽았다는 사실을 연이어 알게 했다. 제2공항이 생길 경우 제주의 관광객이 지금보다 2~3배는 더 늘어날 것이며 과잉 관광과 무리한 토건 사업으로 인해 환경오염이 급격히 진행되리라는 예상은 누구도 잘못된 예측이라 말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 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렇게 팔다리가 들려 누군가는 치마가 올라가고, 겹쳐 입은 옷 네 겹이 다 벗겨지고, 떨어져 머릴 다친 채로 내동댕이쳐졌다”라며 강제 진압의 상황을 담담히 서술한 부분이었다. 공권력과 자본이 여성을, 청년을, 사람을 짐짝처럼 간단히 내동댕이치는 모습은 새삼 상징적이었다.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낸 비자림로에 걸려 있다던 두 펼침막에 적힌 문구 역시 뇌리에 남는다. 하나는 “도로 확장은 지역 발전. 사람이 먼저다”였고 나머지 하나는 “살려주세요”였다. 후자는 나무의 목소리로 인간의 만행을 고발하는 것일 테고, 전자는 사람의 목소리로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일 텐데 둘 다 인간과 자본과 문명의 재앙을 숙고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같은 선전을 하는 듯 보였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에 이토록 강한 의구심을 품어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제주도청은 이미 행정대집행 전날 계단에 앉은 사람들을 고소했다.

메일을 보내온 이로부터 답장을 받지 못했으나, 이제 천막촌은 입주자 회의를 하는 마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언제나처럼 여성과 청년과 토박이 주민이 그곳에 자리를 폈을 것이다. 천막과 텐트로 이루어진 마을(현장)에서 그들은 남성과 기성세대와 개발업자들에게 맞서며,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을 자꾸만 회의하는 가운데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불변의 진리를 알리는 싸움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지금, 거기에 사람을 점검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상상을 해본다. 일단은.

기자명 김현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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