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경남도지사 판결문(김경수 판결문)을 읽었다. 본문만 162쪽. 판결문을 정독해보니 유죄 논리가 일관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빈틈도 ‘보였다’. 예를 들면 재판부는 같은 사안을 한쪽에선 추정했는데, 다른 쪽에선 확정했다. 추정에서 확정으로 나아간 대목이 여럿 ‘보였다’. 김경수 판결문의 맹점은 판결문 자체에 나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길지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법관의 면전에서 선서한 후 공개된 법정에서 진술에 임하고 있는 증인의 모습이나 태도, 진술의 뉘앙스 등 증인신문조서에는 기록하기 어려운 여러 사정을 직접 관찰함으로써 얻게 된 심증까지 모두 고려하여 (진술의) 신빙성 유무를 평가한다.” 판례를 인용한 대목인데, ‘심증’이 눈에 띈다. 법관의 자유심증주의라는 게 있다. 증거능력에 대한 판단을 법관의 자유 판단에 맡긴다는 것이다. 법관의 심증은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beyond reasonable doubt)’의 입증이 전제되어야 한다.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되지 않으면, 형사법의 대원칙에 따라야 한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김경수 판결문은 바로 이런 합리적 의심을 뛰어넘지 못한 대목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경수 판결문에는 ‘~한 것으로 보인다’ ‘~ 것으로 보이는 점’ ‘보이는데’ 등 ‘보인다’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판결문 원문을 즐겨 읽는데, 이렇게 추정 표현이 많은 건 이례적이다. 물론 이것은 김경수 판결문에 대한 내 개인 평가일 뿐이다. 정반대 평가를 내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 판결 직후 갑론을박이 오갔다. 판사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도 없지 않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재판을 한 법관에 대한 공격은 헌법상 보장된 법관 독립의 원칙이나 법치주의 원리에 비춰 결코 적절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김 대법원장이 이 말에 앞서 말했듯, “판결 내용이나 결과에 관해 건전한 비판을 하는 건 허용돼야 하고 바람직하다”. 나 역시 바로 이 점을 말하고 싶다. 사법고시를 합격한 ‘똑똑한’ 판사에게 판결을 맡기고 판결문을 신성시하는 건 낡은 도그마다. 통제받지 못한 사법 권력의 폭주를 우리는 양승태 대법원에서 목도했다. 사법 농단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이탄희 판사는 JTBC와 한 인터뷰에서 “삼권분립은 삼권 분리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사법 개혁을 법원에만 맡기지 말고 다른 기관들과 시민들까지도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법관의 판결 역시 진공상태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 1월1일부터 대법원 사이트를 통해 형사사건 판결문 공개가 확대됐다. 공론장에서 판결에 대한 평가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뗐다. 김경수 판결문에 대한 논쟁이 반갑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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