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며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대학생들이 체포당하거나 실종되고 있다. 지난 1월 중국 광둥성의 한 도시에서 만난 ‘좌익’ 활동가 톈샤오(가명)에게 물었다. “(마르크스주의 학생운동 그룹 중 하나인) 베이징 대학 마르크스주의학회의 투쟁은 지나치게 무모하지 않은가?” 톈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엄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들은 중국 좌익운동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경제투쟁(노동조건의 향상에 집중하는 운동)에 몰두하던 자생적 노동운동과 목적의식적이고 이념적인 학생운동이 조우한 것 자체로 유의미한 변화가 만들어질 것이란 얘기다. 그도 내 우려를 부정하진 않았다. 이미 마르크스주의자 수십명이 연행됐다. 당국의 고강도 탄압은 계속될 것이다.

베이징에서 만난 몇몇 학생 활동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중 가장 강렬했던 건 마른 체격의 두 대학생이었다.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나타난 그들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내내 긴장된 상태로 대화를 나눴다. 갑자기 공안이 들이닥쳐 어디론가 끌고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초 대규모 연행으로 졸업생 등 선배 20여 명이 끌려간 후, 극도의 보안이 필요해졌다.

ⓒEPA지난해 5월4일 카를 마르크스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기념대회가 열렸다.
학생들은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개혁개방이 중국 사회를 망가뜨렸고 노동자계급을 새로운 착취의 늪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산당 내 관료주의자들과 자본가들이 망쳐온 중국을 바꾸려면 노동운동의 부흥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에서 마르크스주의자와 노동운동이 탄압받는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지난해 광둥성 선전시 핑산신구(坪山新區)에서 발생한 노동쟁의를 통해 그 과정을 복기해보자. 핑산신구에 있는 직원 1000명 규모의 자쓰과기유한공사(佳士科技股份有限公司)에서는 지난해 여름 노동자 80여 명이 작은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공회(노동조합)를 설립하려 했는데, 이런 바람마저 쉽사리 용인되지 않았다. 사용자 측은 용역경비를 동원해 공회 설립 주동자들을 폭행한 뒤 공장 밖으로 내쫓았다. 경찰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을 오히려 유치장에 가둬버렸다. 사측의 입김이 광둥성 경찰에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게 지역 활동가들의 추측이다.

핑산신구에는 공장이 밀집해 있다. 공단 노동자들의 삶은 개혁개방의 어둠을 보여준다. 어느덧 2억9000만 농민공(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농촌 출신 빈곤층 노동자)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할 정도로 증가한 ‘신세대 농민공’들은 저렴하고 가혹한 노동으로 경제성장을 이끄는 주역이자 중국 사회의 불안정 요소이기도 하다. 매일 잔업에 시달리다가 공장 이전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기도 한다. 오랫동안 이들의 생활환경과 문화에 대해 조사해온 베이징 노동자의집 뤼투 연구원은 이들이 벽돌 위에 얹어놓은 나무판자와 변기가 전부인 쪽방에서 살아갈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한다고 묘사한 바 있다.

ⓒ자쓰과기 노동자지원단 제공대학생 활동가들이 선전시에서 자쓰과기 노동자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2015년 혼다자동차 파업 이전과 이후

오늘날 광둥성·푸젠성 등을 중심으로 성장한 중국 노동운동의 주역은 농민공이다. 개혁개방 이후 2000년대 초·중반까지 중국은 10%를 상회하는 초고속 성장률을 지속했다. 발전이 가져온 모순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대형 참사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우발적이고 자생적인 노동쟁의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2015년 혼다자동차 포산 공장 파업은 중국 노동자운동의 주요 변곡점 중 하나다. 국영기업 중심이었던 노동자 저항이 민영·외자 기업 중심의 대규모 파업으로 전환됐다. 2011년에서 2017년까지 발생한 파업 6149건 중 국유기업에서 발생한 파업은 15.9%인 데 비해 사영기업과 외자기업을 합친 비율은 84.1%를 차지했다. 노동쟁의 발생 건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6년 1월 파업과 시위는 1년 전(2015년)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난 500여 건이었다. 지난해 기록된 파업 1701건 중 73.3%인 1246건이 중국 내 민영기업에서 일어난 것이었고, 11.6%는 국영기업, 2.9%는 외자기업에서 발생했다.

자쓰과기유한공사 쟁의는 자생적 경제투쟁에 머물러 있던 노동운동이 정치적 급진주의와 조우한 첫 번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베이징 대학·런민 대학·난징 대학 등에서 마르크스주의학회 활동을 하던 학생운동 그룹이 노동운동과의 전면적 연대를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전면적 등장은 작지만 큰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 당국은 인터넷 통제에 총력을 다했고, 동아리 활동을 불허하더니 학생 운동가들을 죄다 잡아갔다.

이들은 어디에서 나타난 걸까? 노동연구자인 크리스 챈(챈킹츠)은 2000년대 이후 농민공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노동운동의 성장을 주된 토양으로 본다. 물론 사회적 모순의 촉발이 청년들에게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들의 출현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베이징 대학 마르크스주의학회의 기원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톈안먼 광장에서의 거대한 외침이 산산이 부서진 이후, 정치적 민주화의 길은 요원해진 반면 개혁개방의 흐름은 본격적 궤도에 오르고 있었다. 당시 중국공산당의 개혁개방 노선에 비판적이었던 일군의 당원들이 베이징 대학 등 유수 대학에서 학생 서클을 조직했다. 당내 세력 구도로는 개혁개방론자들을 극복할 수 없으니 ‘아래로부터의 지식인 운동’을 도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엽선전시 노방촌의 모습. 초고속 경제성장에도 많은 주민들은 힘겹게 삶을 꾸려간다.
학생 서클의 출발은 사회비판적 학습모임이었다. 오랫동안 지하 서클로 명맥을 이어온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목적의식적 활동에 돌입한 건 2010년경이다. 보시라이의 몰락과 새로운 노동운동의 폭발적 성장 등 개혁개방 이후 표면화된 여러 모순이 이들을 노동 현장으로 이끌었다. 자쓰과기 쟁의 이후 끌려간 50여 명은 베이징 대학 출신들이 조직한 ‘청년선봉’으로 분류된다. 졸업 후 공장이나 노동 NGO 등에서 활동하던 이 청년선봉 활동가들은 ‘마오쩌둥주의 좌파’로 불린다. 마오쩌둥 사상과 문화대혁명의 동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개혁개방 이후 자본주의적 변화에는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노(老)마오좌파’와도 확연한 세대차를 보인다.

중국의 좌익 운동에 청년선봉 그룹만 있는 건 아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그룹이 존재한다. 다들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지만 이념적 지향과 사회 진단, 활동 방식은 다르다. 청년선봉과 다른 그룹의 경우, 자쓰과기 사건엔 거의 개입하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두 그룹의 갈등이 상당히 첨예한 편이다. 역량을 보존하고 실력을 더 양성해야 한다는 입장과 전면적인 노학 연대를 주장하는 청년선봉의 입장 간 첨예한 대립은 과거 한국의 ‘무림-학림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2016년 중국 정부는 사회조직 관련 법규들을 제정하거나 수정함으로써 이른바 NGO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노동 NGO와 노동운동가들이 독립적이고 자율적 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상당수의 노동 NGO가 문을 닫거나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다. 현재 선전의 공단 지역 곳곳엔 ‘흑악세력(黑惡勢力)’을 비난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 ‘흉악하고 악덕한 세력’이 바로 노동 NGO다. 임금 체불 같은 일을 당한 노동자들에게 쟁의행위 등을 지도했다는 이유만으로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다. 2016년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상황이다. 지난 1월15일 개최된 전국정법공작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흑악세력은 사회악”이라며 “경제 사회 질서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당의 집권 기반을 잠식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중국공산당의 최대 표적은 노동운동이 된 듯하다.

“경찰의 힘을 모아 색깔혁명 막아라”

지난 1월20일엔 선전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저명한 노동운동가 5명이 갑작스레 연행됐다. 이 중 3명은 ‘공공질서를 어지럽힌 혐의’를 받았는데, 자쓰과기 사건과 간접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 날(1월21일)엔 톈진에서 베이징 대학 학생 4명과 런민 대학 학생 1명 등 7명이 체포되었다. 이들은 당국의 탄압을 피해 베이징을 떠난 상태였다. 이로써 자쓰과기 사건과 연루된 연행자는 모두 54명이 되었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 서구 언론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공산당 스스로 노동운동과 학생 마르크스주의자들을 탄압하는 아이러니를 비판하고 있다. 홍콩과 타이완, 한국 등에서도 규탄 기자회견이 열린 바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는 요원해 보인다. 학생 7명이 연행된 1월21일, 중국공산당은 시진핑 주석 주재하에 “‘마지노선 사유(底線思維)’ 견지와 중대 위기 해결을 위한” 성부급(한국의 장차관급) 주요 영도 간부 집단학습을 개최했다.

무엇이 ‘중대 위기’인가? 1월17일 열린 전국공안청 국장회의에서 중국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 자오커즈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모든 경찰의 지혜와 힘을 모아 색깔혁명(顔色革命)을 막아야 한다.” 1월15일과 21일, 시진핑 주석의 발표 역시 ‘색깔혁명을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요약된다. 소련 붕괴와 더불어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등에서 벌어진 색깔혁명은 오랫동안 중국공산당을 괴롭혀온 문제였다. 개혁개방이 안착하고 중산층이 성장하면서 위기의식이 줄기도 했지만, 2011년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광장혁명의 물결이 일자, 다시 경계심이 강해졌다.

‘색깔혁명 방비’는 올해 중국공산당의 핵심적 정치 임무가 된 듯하다. 대도시 농민공을 결집해 쟁의행위를 정치화하려 시도하는 좌파야말로 국가의 안정성을 해치는 ‘흑악세력’이라고 본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사회운동은 운동 사회 내의 분열을 해소하고, 대중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까? 옛 혁명 구호를 반복하는 마오쩌둥주의 좌파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동세대 청년들과 소통하기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좌파 중에서도 소수파 그룹에 속한 활동가는 “중국은 권위주의적 국가자본주의로 전락”했으며, “중국공산당은 이미 그 구성과 역할에서 자본가와 특권 관료들의 집정당(執政黨)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는 중국 좌익운동의 과제를 “자유파들과의 연대를 통한 민주혁명”으로 꼽는다. 그 이후에야 개혁개방에 대한 발본적 비판과 좌파적 실천이 가능해질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가 언급한 ‘민주혁명’을 ‘색깔혁명’으로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베이징에서 만난 두 학생 중 한 명은 7명 친구들이 잡혀갈 때 몰래 톈진을 빠져나왔다. 그는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젊은 반항자의 무사안전을 비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기자명 베이징·이우연 (가명·중국 연구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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