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의 천재들
앤드루 산텔라 지음,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펴냄

“내 목적은 이 습관을 끝내는 게 아니라 정당화하고 변명하는 것이었다.”

원고 마감을 앞두고 있으면 세상 모든 일이 기껍다. 싱크대 배수구와 화장실 청소,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가 세상에서 가장 급하고 중요해진다. 저자 역시 어려운 글을 써야 할 때면 일단은 화장실에 들어간다. 타일 사이 줄눈을 티끌 하나 없이 벅벅 닦는다. 마감하기에 적절한 기분 상태를 만들기 위해 낮잠을 자면 집중이 잘될 거라는 둥, 지금 트위터를 하는 건 글쓰기 전 좋은 준비운동이 될 거라는 둥, ‘미루기의 천재들’은 자기 합리화의 달인들이다. “문제는 자신을 방어하려는 이러한 시도가 자멸적인 결과를 낳는다(58쪽)”는 점이다. 시쳇말로 ‘뼈 때리는’ 이 재밌는 책을 내가 미루지 않고 읽게 된 이유도 마감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 빼고는 다 재밌는 시간이다.



근사하게 나이 들기
하야시 유키오·하야시 다카코 지음, 염혜정 옮김, 마음산책 펴냄


“조금은 즐기는 마음으로 기분 좋은 것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조금씩 체념하는 것들이 생긴다. 맵시가 그렇다. 중년이 되면 몸이 변한다. 멋을 부리기 위해 젊을 때처럼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하기 어렵다. 기본에 충실하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조금씩 가미하는 절제와 성실함. 일본 고베 시에서 편집매장을 운영하는 하야시 유키오, 하야시 다카코 부부는 ‘어른의 멋, 나이의 맛’의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검버섯과 주름마저 인생의 나이라고 말하는 두 사람은 감출 수 없는 흔적을 지우려 하기보단 그것마저 ‘멋지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춘다. 세월의 진중함이 묻어나는 사진이 잘 어울리는 책이다. 옷에 대한 이야기에 중점을 두지만, 어떻게 멋진 어른이 될 것인지 고민한 흔적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만화로 보는 자본주의 경제학
팀 카서 지음, 래리 고닉 그림, 전영택 옮김, 궁리 펴냄

“사람들이 노력한다면 사회제도는 바뀔 수 있다.”

‘물질주의적 가치관’과 ‘웰빙(행복감, 삶에 대한 만족도)’ 간의 상충 관계를 연구해온 미국 녹스 대학 팀 카서 심리학 교수는 절대다수의 시민들이 물질적 이득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경제 시스템이 시민들의 삶의 목표를 물질주의로 설정한다’라는 결론을 내린 그는 각종 인문·사회과학에 정통한 만화가 래리 고닉과 더불어 자본주의 탐험에 나선다.
만화지만 결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설명을 빠뜨리거나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수많은 실증적 연구와 데이터를 활용하는데도 명료하고 생생하며 유쾌해서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저자 중 한 명이 심리학자라서 그런지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설명과 심리학이 교차하는 부분도 매우 흥미롭다.



고민이 고민입니다
하지현 지음, 인플루엔셜 펴냄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을 잘하는 법을 익혀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작은 고민이라도, 고민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시시콜콜한 고민을 풀어내고 조언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큰 파도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물결이라고 말한다. 고민이 없어지기를 바라기보다 우리 삶이 고민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단다. 책은 고민을 ‘잘’ 하는 실용적인 ‘공식’들을 소개한다. 배가 고플 때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누구나 알 법한 조언부터, 큰 덩어리의 고민을 쪼개 우선순위를 정하라는, 고민할 판을 까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책 부제에 ‘고민을 절반으로 줄이는’이라고 적혀 있는데, 읽고 나면 어쩐지 짧은 인생이 더 살 만해진다는 착각이 든다.

목호의 난
정용연 지음, 딸기책방 펴냄

“노를 저어 어딜 가리, 제주바당 한골로 가세.”

‘목호’는 말을 기르는 오랑캐라는 뜻으로 고려 후기 제주에 살았던 원나라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저자는 목호 장수 석나리보개와 그와 결혼한, 유배 온 고려 관리의 손녀 버들아기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목호를 토벌하러 제주에 온 최영 장군이나 원의 간섭으로부터 고려의 자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목호 토벌을 명한 공민왕이 아니라 둘의 삶을 그리며 역사에 휘둘리는 민중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1374년 고려의 이야기인데 왠지 낯설지 않다.
미국의 한 주가 되고 싶어 하는 ‘아스팔트 우파’와 고려를 원나라의 한 성으로 편입시키려 했던 ‘부원배’의 사대주의가 똑같고,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한 사람들의 울음과 토벌군에 맞서다 밀려 범섬에서 자결하던 목호의 한탄이 닮았다.

모빌리티와 인문학
피테미리만 외 지음, 김태희 외 옮김, 앨피 펴냄

“새 모빌리티 패러다임은 사회과학의 근본적인 재구성을 추구한다.”

모빌리티 인문학은 기차·자동차·비행기·모바일 기기 등 모빌리티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기는 현재와 미래의 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모빌리티 기술은 우리 삶을 직접적으로 바꾼다. 이런 기술을 적극 활용하면서 이동이 또 하나의 본성이 된 ‘고 모빌리티 시대’에 철학자들은 사고의 플랫폼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일단 글로컬화·탈중심화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런 담론 역시 모바일 기술을 단순히 수단으로 보는 한계가 있었다며, 모바일을 또 하나의 본성으로 보아야 한다며 인문학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공학과 철학의 만남이다. 지하철에서 모바일 기기에 파묻혀 있는 현대인의 모습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둘의 절묘한 만남을 이끌어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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