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스펙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금융 애널리스트가 꿈이었던 최두성씨(가명·28)는 그 말을 믿고 ‘애니스탁’에 입사했다. 애니스탁은 유사투자자문업체 중 하나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주식 방송을 하는 회사다. 유사투자자문업체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투자 상품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다. 일대일 상담이 가능한 투자자문회사와 달리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만 조언할 수 있다. 대신 금융위원회에 단순 신고만 해도 영업을 할 수 있다.

2017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약 9개월 동안 최씨는 애니스탁에서 ‘운영자’로 일했다. 입사 전에 들었던 말과는 달리, 그가 경험한 운영자는 ‘댓글 조작 부대원’에 가까웠다. 먼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자칭 주식 전문가를 통해 사이트 홍보가 이루어졌다. 텔레비전을 보고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온 사람들이 무료 방송을 볼 때, 최씨와 같은 운영자들은 화면 옆에 딸린 채팅창에서 ‘서포터(가짜 회원)’ 노릇을 했다. 전문가의 실적을 칭찬하는 채팅과 조작된 ‘감사 후기’를 올렸다. 여기에 넘어간 사람들은 고액의 가입비를 내고 유료 방송을 들었다. 유료 방송에 딸린 채팅창에서도 가짜 회원임을 숨기며 방의 분위기를 관리했다. 실적이 좋은 운영자가 ‘전 A투자자문사 교육실장’과 같은 경력을 달고 전문가로 데뷔해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시사IN 조남진최씨는 “손실을 입고 자살하겠다는 고객의 전화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유사투자자문업체에서 근무했던 직원이 직접 입을 연 것은 처음이다.


〈시사IN〉은 최씨와 다섯 차례 인터뷰를 하며 여전히 온라인에서 활발히 이루어지는 증권방송 댓글 조작 사건을 재구성했다. 그의 이야기는 내부고발자로서 증언한 것이기에 검증한 끝에 최대한 업계 용어인 은어 등을 살려 싣는다. 최씨는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는 자료도 함께 내놓았다. 유사투자자문업체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례가 몇 차례 보도된 적은 있지만, 업체 내부에서 근무했던 직원이 직접 입을 연 것은 처음이다.

이에 대해 회사 쪽 법률 대리를 맡은 변호인은 〈시사IN〉과 전화 통화에서 “경력에 A회사, P회사 등으로 적혀 있는 것은 구체성이 없기에 사람을 속였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며 조작이 아니라고 말했다. 최근 회사는 최씨에게 영업비밀·정보유출 등으로 3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최씨는 이미 회사 쪽 인사에게 모욕 등 혐의로 형사 고소당한 적도 있지만, 지난해 12월 검찰은 그를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했다.

운영자의 일과는 어땠나?

아침 8시까지 사무실로 출근한다. 먼저 모든 전문가들의 인터넷 방송에 들어가 채팅창마다 가상 회원 30명 정도를 심어놓는다. 그때 회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그런 다음 사내 메신저 ‘미쓰리’로 전문가와 작전을 짠다.

작전을 짠다는 게 무슨 뜻인가?

어떤 식으로 ‘서포트(회원인 척 채팅하는 것)’할 건지 입을 맞춘다. 예를 들어 ‘오늘은 회원 싸게 안 받아주는 척할 건데 너네(회원인 척하는 운영자)가 자꾸 받아달라고 조르면 마지못해 받아주는 식으로 방송 진행하자’고 제안하거나, ‘요즘 종목 뭐 뭐가 물려 있어서(손해를 보고 있어서) 분위기가 안 좋으니 이 종목 언급하는 사람들은 바로 강퇴시켜라’고 당부한다.

온라인 방송이 시작되면?

운영자마다 자기가 담당하는 전문가의 방송 스케줄에 따라 움직인다. 보통 운영자가 전문가 3~5명을 맡기에, 모니터 3~4개 앞에 앉아 채팅창 여러 개를 띄워놓고 동시에 관리한다. 그 와중에 상담 문의 전화도 받고, 내가 가입 권유 전화도 돌려야 한다. 점심도 30분 안에 먹고 와서 교대해야 한다. 마지막 방송은 새벽 1시가 넘어서 끝나는데, 방송이 끝나고 다음 날 밀어줘야 하는 전문가에게 감사 후기까지 써야 퇴근할 수 있었다. 주말에도 하루는 출근했다.

언제부터 채팅을 조작했나?

입사 3일차부터 나더러 직접 채팅에 들어가라고 했다. 엑셀 파일을 하나 주면서 ‘이름 ○○○, 나이 30대 초반, 직업 사회 초년생 회사원, 자본금 5천, 투자 성향 단타’ 이런 식으로 여러 아이디의 인적사항을 지어내 적게 했다. 채팅을 할 때 내가 지금 어떤 아이디로 채팅을 하는지 헷갈리면 안 되니까.

주로 어떤 콘셉트로 채팅했나?

‘나이 60 먹는 동안 모아놓은 돈 없이 사기당하고 힘들게 살고 있다. 주식만이 답인 것 같다. 누구누구 선생님 믿고 하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가입비 내면 투자금도 없어질 상황이다. 꼭 함께 하고 싶다. 가입비 쫌 깎아달라’ 이런 식으로 내가 올린다. 연기 학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구석에서 비밀스럽게 하는 일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일상적으로 모두가 하는 일이었다.

진짜 회원의 채팅 글과 가짜 회원의 글을 구별할 수 있나?

운영자가 보는 채팅창에서는 구별된다. 진짜 회원과 가짜 회원의 채팅 아이콘 색깔이 각각 다르게 표시된다(20쪽 〈사진 1〉 참조). 나중에 회사 선배가 내가 쓴 글만 모두 뽑아오라고 했다. 그걸 보고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첨삭해주었다. ‘나이가 50대라고 했는데 아이디가 너무 젊지 않냐’ ‘이런 말은 누가 봐도 알바 같다’ ‘2분에 한 마디는 해야지’ 등등. 정말 자괴감이 들었다.

 

운영자 채팅창에서는 진짜 회원과 가짜 회원의 아이콘 색깔이 다르게 표시된다(사진 1). 조작한 감사 후기(사진 2). 킥복싱을 가르치다 회사에 들어온 운영자의 경력도 조작됐다(사진 3).


적응이 되던가?

처음에는 감사 후기 지어내는 것도 너무 어려웠는데, 나중에는 ‘애니스탁 인터넷 방송을 보고 얻은 주식 수익금으로 뽑았다’라고 쓰면서 냉장고 사진도 올린 적 있다(20쪽 〈사진 2〉 참조). 한번은 내가 할아버지 설정의 아이디로 쓴 감사 후기에 어미를 ‘~읍니다’고 쓰니까 (감쪽같다고) 좋아했다.

감사 후기도 많이 올렸나?

매일 올려야 한다. 계좌나 수익률 인증 사진은 그림판으로 조작했다. 이미지 조작하는 방법도 회사 선배가 알려주었다. 그림판에 숫자 사진을 붙여 넣고, 숫자를 한 개씩 잘라내 배열만 바꾸면 된다. 내 아이디 설정이 돈 많은 50대라면 큰 숫자를 앞으로 옮기고, 사회 초년생 직장인이라면 작은 숫자를 앞으로 옮기면 된다. 전문가들이 방송 중에 가짜 후기를 읽어주기도 했다.

가짜 채팅과 감사 후기를 잘 쓰면 좋은 점이 뭔가?

채팅방을 담당하는 운영자였다가 주식 방송을 진행하는 전문가로 빨리 승진할 수 있다.

전문가가 진짜 전문가가 아니라는 말인가?

텔레마케터에 불과한 운영자가 주식을 잘 아는 전문가로 둔갑한다. 입담만 좋으면 된다. 나한테도 경력은 얼마든지 만들어줄 테니까 빨리 전문가로 데뷔하라고 했다.

경력을 어떻게 만들어준다는 건가?

내가 문제 제기하면서 논란이 되니까 지금은 홈페이지에서 다 삭제했지만, 캡처해두었다(20쪽 〈사진 3〉 참조). 전문가 소개에 쟁쟁한 경력이 쓰여 있다. 전문가 ‘ㅅ’은 원래 체육관에서 킥복싱을 가르치다 회사에 들어와서 운영자를 했는데, 전문가로 데뷔할 때는 ‘전 H투자자문 주식운용 매니저, 전 S투자자문 투자분석 매니저, 전 B증권 분석가 활동’이라는 경력을 달았다. 내가 고정으로 담당했던 전문가 ‘ㅁ’ ‘ㄹ’ ‘ㄷ’도 모두 사이트 운영자 출신이다.

텔레비전에도 출연하는 전문가인데?

텔레비전 방송에서 미끼를 던져 인터넷 방송으로 끌어들인다. 머니투데이방송, 이데일리TV 등 경제방송사 프로그램에 전문가가 출연하는데, 〈수익만세〉(머니투데이방송), 〈대박투나잇〉(이데일리TV) 등 특정 프로그램에는 아예 애니스탁을 비롯한 유사투자자문업체를 10개 넘게 가진 여해그룹 소속 전문가만 나온다. 시청자 눈에는 방송사에서 ‘힘들게 모셔온 검증된 전문가’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렇게 유료 방송 가입을 유도해서 돈을 버나?

맞다. 보통 석 달 가입에 100만원, 1년 가입에 250만원인데, 딱히 정가랄 게 없다. 전문가가 무료 인터넷 방송을 하다가 ‘오늘만 특별히 선착순 3명에게 유료 방송 가입비를 석 달 90만원에 해주겠다’고 말한다. 원하는 사람은 채팅창에 숫자 1을 치라고 하면, 운영자들이 가짜 회원 아이디 여러 개로 1을 누른다. 분위기를 조성하면 진짜 회원들도 경쟁적으로 1을 누른다. 우리는 색깔을 보면 누가 진짜 회원인지 아니까, 그들에게 전화해서 가입을 받았다. 세 명이든 네 명이든.

유료 방송은 전문성이 있나?

주식 장이 열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유료 방송에서 전문가의 리딩(주식 종목을 추천하는 행위)을 받을 수 있다. 그래봤자 ‘5일평균선 터치했으니 이제 상한가 갈 거다’ 이런 초보적 수준이다. 포털사이트에서 ‘삼성전자’ 검색해서 진짜 애널리스트가 분석해놓은 글을 보고 자기가 분석한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전문가가 따로 주식 투자를 연구하지 않나?

전문가도 방송을 하면서 일정이 비는 시간에 운영자 역할을 하거나, 환불팀 직원이라고 전화를 돌리는 등 TM(텔레마케팅)을 해야 한다. 전문가 중에는 리딩 종목이 계속 하한가를 기록해 회원들이 다 떠나버린 사람도 있다. 그래서 다시 운영자로 되돌아와서 같이 일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또다시 지금은 전문가를 한다. 내부에서도 공부 안 한다고 질타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전문가가 추천해준 종목으로 손해를 보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나?

전화로 환불을 요청하면 업무가 밀려 있으니 기다리라고 한다. 손실을 본 사람은 환불을 기다리면서도 주식은 계속하니까 그동안 다른 전문가의 방송을 본다. 운영자는 느긋하게 3주 후쯤에 전화를 건다. 터무니없이 적은 환불금을 제시하면서 ‘이 돈을 받느니 차라리 가입비를 조금 추가해서 다른 전문가의 유료 방송을 듣고 원금을 회복하시라’고 구슬린다. 대부분 운영자의 말을 따른다.

채팅창에서 전문가에게 공개적으로 항의할 수도 있지 않나?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운영자가 바로 가짜 회원 아이디들을 동원한다. ‘이번에 운이 안 좋았다’ ‘전문가님이 잘돼야 우리가 잘되는 건데 분위기 흐리지 마라’ 하고 집중포화를 퍼붓는다. 그래도 계속해서 항의하면 강퇴(강제 퇴장)시킨다. 그런 다음 따로 전화해서 ‘약관에 따라 환불금 없이 강제 탈퇴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백이면 백 잘못했다고 오히려 사과한다. 가입비를 내고 나면 갑을이 바뀐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입사했나?

조작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원래 금융권으로 가고 싶었다. 필수 자격증인 파생상품투자 상담사, 증권투자 상담사, 펀드투자 상담사도 땄다. 여기서 열심히 하면 애널리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 항의 전화를 받다 보면, 회원들의 가입비가 어떻게 번 돈인지 알게 된다. 돈 있는 사람들은 유사투자자문업체를 이용하지 않는다. 이런 방송을 듣는 분들은 보통 서민, 개미 투자자다. 환경미화원분이 1000만원을 모아서 가입비 몇백만원을 내고 들어온 적도 있다. 손실이 너무 커서 자살하겠다고 울며 전화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왜 바로 그만두지 않았나?

취업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니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기를 치면서도 계속 찜찜했다. 그게 괴로웠다. 직원이 힘들어하면 회사에서 술을 사주면서 달랜다. ‘다 겪었던 일이다, 너도 해온 일이지 않느냐’고. 너도 공범이니 할 말 없다는 거다. ‘전문가 돼서 성과급 몇천 받아야지’ 하고 꾀기도 한다. 힘들어도 버티면 전문가가 돼서 외제차를 타고 다닐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거다. ‘나는 다른 전문가가 되어야지’ 생각하면서 버티다가 양심의 가책 때문에 더는 못 견디겠다 싶어 퇴사했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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