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후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국내 전문가들의 공적이 되다시피 했다. 2월27일 북·미가 거의 합의에 도달했는데 2월28일 오전 볼턴 보좌관이 노란 봉투를 들고 확대정상회담에 참석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주장이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는 정상회담이 끝난 뒤 미국 언론 인터뷰에 거듭 등장해 단계적 접근을 부정하고 일괄타결에 입각한 빅딜을 연거푸 주장하면서 미운 털이 더욱 박혔다.

볼턴 보좌관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으면 될 것 같던 미국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상대적으로 온건했던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특별대표)가 볼턴 보좌관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3월11일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이 워싱턴 DC에서 개최한 핵정책 콘퍼런스에서 비건 특별대표는 “북한과 대화를 지속하겠지만 비핵화를 점진적으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31일 스탠퍼드 대학 연설에서 자신이 밝혔던 단계론을 철회한 셈이다. 그는 볼턴 보좌관의 주장대로 앞으로 일괄타결에 입각한 빅딜을 추진해나가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미국 정부 내에서 볼턴 보좌관뿐 아니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하노이 정상회담에 앞서 매우 강경한 태도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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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하노이 정상회담 합의 불발 책임이 볼턴 보좌관에게 있다고 한 몇몇 국내 전문가의 주장이 오히려 이번 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못 보게 한 측면이 있다. 볼턴 보좌관 같은 강경파는 물론이고 온건파로 돌아섰던 폼페이오 장관조차 왜 회담 직전에 강경해졌을까? 그리고 비건 특별대표는 왜 자신의 단계론을 철회하고 일괄타결론을 단호하게 주장하기 시작한 것일까?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닐 터이다. 이번 회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미국 측 협상 담당자나 정부 당국자들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 영변과 영변 외 핵시설을 폐쇄한다 해도 핵물질이나 핵무기는 그대로 남기 때문에 동결 수준에 불과한데, 북한이 그조차도 못 받겠다고 한 것이다. 북한 스스로 단계론을 거부한 것이나 다름없다. 단계론 아니면 일괄타결론이라는 점을 몰랐단 말인가. 정말 안타깝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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