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은 김연철 후보자를 ‘강성 햇볕론자’라고 부른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청문회에서 김 후보자를 ‘친북주의자’라고 칭했다. 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은 “북한에 대한 편향이 도를 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다음 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북한 통일전선부장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김 후보자가 ‘친북 성향 대북관’을 가졌기에 장관 자리에 부적격이라고 비판한다.
비판은 대개 ‘봉쇄론(containment policy)’의 시각에서 나온다. 봉쇄론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고 본다. 핵 없이는 정권의 정당성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어떤 혜택을 제공해도 김정은 정권은 핵을 포기하기 어렵다. 미국이 불가침을 약속해도 내부에서 붕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을 더 유지하지 못할 정도의 고강도 경제제재만이 핵을 포기하게 만든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택한 대북정책이다. 개각 발표 사흘 뒤인 3월11일 자유한국당이 낸 논평은 햇볕정책(또는 포용정책)으로 대표되는 관여론(engagement policy)을 봉쇄론이 어떻게 여기는지 보여준다. “정부·여당은 강요된 평화, 나홀로 남북 경협으로 북핵 위협이 해결될 것이라는 이상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수 정권의 ‘북한 봉쇄론’ 조목조목 비판
김연철 후보자의 생각을 보자. 김 후보자는 지난해 펴낸 책 〈70년의 대화〉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 제재가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적었다. 간단한 논리다. 제재의 목적은 ‘핵 보유 의지를 소멸’하는 것인데, 이 기간 북한은 오히려 핵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제재와 압박에도 북한 경제성장률은 높아졌고 핵능력은 고도화되었으며, 북한은 굴복하지도 붕괴하지도 않았다.” 우선 제재에 구멍이 나 있었다. 중국이다. 북한은 남북 경협의 빈자리를 북·중 경협으로 채웠다. 사드 배치 비판 역시 이 맥락에서 나왔다. “한·미 양국은 중국의 협력을 기대하면서도 중국이 협력하기 어려운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한국이 사드 도입 결정을 내린 이후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친북·반미나 반전·평화 논리라기보다는 모순된 전술을 질타한 데 가깝다.
중국을 설득해 제재 포위망을 촘촘히 하면 문제는 사라질까? 박근혜 정권은 그렇게 봤다.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국내외의 비판을 무릅쓰고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는 등 대중 외교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70년의 대화〉에서 김연철 후보자는 북한을 확실히 고립시켜도 근본적 문제는 남는다고 썼다. “제재가 북한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이것이 핵 억지력을 갖춰야 한다는 북한 지도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제재로 민생경제가 어려워져도 북한 지도부는 핵 억지력을 강화하는 시도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인 국가라면 민생 적신호는 정권 정당성 추락과 직결된다. 전근대 사회에서도 심각한 재정난을 불러온 정치 지도자는 축출되곤 했다. 봉쇄론은 이 ‘당연한’ 명제에 기댄다. ‘경제제재를 밀어붙이면 북한 정권은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봉쇄론 논리 앞에는 ‘여론이 폭발할 때까지’가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 김연철 후보자는 북한에 이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2016년 그가 발표한 논문 〈대북 제재의 편견과 북방 경제의 미래〉의 한 대목이다. “목적과 달리 제재는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의 정권을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외부 압력을 내부 정당성의 기회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민생경제가 파탄 날수록 내부 결속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는 ‘핵이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는 봉쇄론의 기본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북한 정권의 존립 근거는 핵이 아니라 ‘피포위 상황’에서 나온다. 2012년 논문 〈북한의 선군체제와 경제개혁의 관계〉에 김연철 후보자는 이렇게 썼다. “북한은 김일성의 항일유격대 경험을 체제 정당성의 기원으로 보고 있으며, (…) 사회적인 군사문화를 유지해왔다. 탈냉전 이후에도 북한은 미국에 의한 ‘피포위 상황’을 정권 유지의 강력한 근거로 활용하고 있으며, (…) 위기대응 체제로서 선군 정치가 부상한 측면이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북한 정권에게 핵은 ‘피포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선군 정치’의 결과물이다. 고강도 대북 제재는 피포위 서사의 재료로 활용된다. 북한 정권은 인민의 곤궁함을 ‘외세’ 탓으로 돌리고, 상황을 ‘항일유격대 경험’의 재판(再版)처럼 포장할 수 있다.
〈70년의 대화〉에 드러난 김연철 후보자의 대북정책관은 분명 포용정책이다. 그가 지지하는 포용정책은 ‘북한의 의도는 선하다’는 ‘친북’ 시각이나, ‘대화하다 보면 문제는 100% 해결된다’는 낙관론과 거리가 있다. “북한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전제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현실과 미래 사이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고 발전과 퇴보, 개혁과 후퇴의 가능성이 공존한다. (중략) ‘튼튼한 안보’를 대북정책의 원칙으로 강조한 것은 이중적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김 후보자에 따르면 포용정책은 유화정책과도 다르다. “유화정책은 현상유지를 추구하지만, 포용정책은 현상타파를 추구한다. 평화를 추구하고, 북한의 경제개혁을 유도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포용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대북 제재를 검토할 수 있다. 다만 포용정책은 대북 제재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다룬다.
“북한 붕괴 가정하면 대화·협상 무의미”
오히려 김연철 후보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직시하는 대신 북한붕괴론이라는 희망에 기댔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가정하면 대화나 협상은 무의미하다. 붕괴를 촉진하기 위해 제재를 강화하거나, 아니면 붕괴 이후 상황인 흡수통일에 대한 국내적 정당성에 주력하는 것이 대북정책의 전부일 수밖에 없다.” 보수 정부들이 ‘통일은 도둑같이 온다’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를 김 후보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남북관계가 악화돼 상대를 의식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서로 협상해야 할 현안이 있다면, 일방적인 통일방안을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 없다.”
김연철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대체로 저자세였다. “취지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한 점은 송구스럽다” “깊이 반성하고 있다” 등으로 답변했다.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정부 입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박왕자씨(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건 피해자) 유족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라고도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학자로서 소신을 굽히고 훼절했다”라고 야유했다. 2012년 펴낸 책 〈냉전의 추억〉에서 김연철 후보자는 “운동단체는 비판하면 되지만 정부는 해결해야 한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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