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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

2019년 04월 05일(금) 제603호
이윤승 (서울 이화미디어고 교사)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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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담임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 서류는 정말 담임만 보고 폐기해왔다. 그런데 올해는 상담 부서를 통해 결재를 받으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학생이 교사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사립학교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문득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이 상황에서 불편한 것은 내가 이상해서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학교에서 나는 이상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학생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여러 상황에서 학생인권을 중심에 두고 판단하다 보니 교사들과 부딪치는 상황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올해는 오랜만에 담임을 맡게 되었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학교가 학생을 대하는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옳지 않다’고 따지는 일도 생기는데 대개 내가 제기하는 문제들은 대다수 교사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가정통신문과 온갖 동의서가 넘쳐난다. 학생의 개인정보를 사용할 일이 많기에 어쩔 수 없다. 학생들도 며칠 만에 많은 가정통신문에 대한 회신서를 제출해야 하니 보통은 보지도 않고 동의하기도 한다. 담임교사들도 워낙 많은 서류를 처리하다 보면 빨리 모아 제출하려 한다. 담임교사도 자세히 읽고 판단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어쨌든 학기는 시작되었고 수업 준비가 우선이니 이런저런 서류를 자세히 볼 틈이 부족하다. 다행히 최근 들어 점점 개인정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 올해부터는 생활기록부에 부모의 인적사항 기재 방식을 개선했다.


ⓒ박해성

담임교사로서 학생을 지원하려면 일정 부분 가족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그런 취지로 학기 시작과 함께 ‘담임에게만 들려주는 내 이야기’라는 서류를 만들고 있다. 학생이 쓰고 싶은, 혹은 담임이 알았으면 하는 이야기를 쓴다. 그동안 이 서류는 정말 담임만 보고 폐기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도 상담을 담당하는 부서를 통해 결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않을까 싶었다. 개인정보를 보관하고 활용하려면 언제나 동의서를 받고 있는데 과연 학생이 담임에게만 털어놓은 이야기를 제출할 수 있을까? 심지어 학생의 동의도 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여지없이 나는 괜한 일로 트집 잡는 사람처럼 되었다. 어쨌든 나를 제외한 모든 담임이 제출했다. 여럿에게 물어보니 어떤 이는 꺼림칙하지만 어쩔 수 없이, 너무 민감한 것은 알아서 감추고 제출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학생이 제출할 때는 담임만이 아니라 학교를 보고 내는 것이니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 그럴 수도 있다. 학생들도 처음 만나는 담임에게 숨기고 싶은 이야기는 하지 않고 담임이 수합해 결재를 받는 일에 문제를 느끼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학교 관리자도 담임교사의 학생 상담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결재를 요구할 수 있다. 내용을 상세히 살피지 않을 것이니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설명을 다 듣고 나서도 나는 낼 수가 없었다. 혹시 담임만 보기를 바라며 담임을 믿고 쓴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봐.

학생은 모르고 교사만 아는 학교 정보들


학교에 대한 많은 정보를 학생만 모를 때가 있다. 교사들끼리 잘 정해서 해야지 괜히 학생에게 말해 일을 그르칠까 봐 학교는 걱정한다. 학생이 쓴 이야기를 제출하는 것도 교사들끼리 정하고 학생에게는 얘기해주지 않았다.

비단 이것뿐일까.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학생의 일인데도 학생 모르게 진행되고 있을까.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학교와 학생 모두에게 긍정적이지 않을까.

집단에서의 권력 나눔은 정보 공유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학생은 어떤 사안이 생겨도 잘 몰라서 교사와의 관계에서 종속적일 때가 많았다. 그러니 교사와 학생이 좀 더 대등한 관계를 가지려면 정보의 공유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런 믿음을 가진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더라도. 어쩌면 나는 이상한 게 아니라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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