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4일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참석한 가운데 강주아오 (港珠澳) 대교 개통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이로 인해 홍콩과 마카오는 다리로 연결됐고, 마카오의 배후 도시인 주하이도 육로로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이라면 선전을 거쳐 무려 세 시간이나 가야 하는 구간을 한 시간 이내에 주파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중국 언론은 환호했고 한국 언론도 덩달아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듯 기사를 쏟아냈다. 그런데 막상 홍콩인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왜 그럴까. 직접 답사해보기로 했다. 우선 대교를 이용하는 버스 탑승객은 과장을 약간 보태 100% 중국 사람이었다. 한 중국인 여행자는 내 앞에서 이게 ‘중국의 힘’이라며 버스가 떠나가라 소리쳤다.

눈에 띄는 건 또 있었다. 홍콩과 마카오 차량은 좌측통행이다. 반면 중국은 우리와 같은 우측통행이다. 홍콩에서 좌측통행으로 진입한 차량은 강주아오 대교에서 진행 방향을 바꿔 우측통행을 하다가 다시 마카오로 들어오면 좌측통행을 한다. 중국은 자신의 자본과 기술이 들어간 다리에 중국의 규칙을 적용했다.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는 홍콩과 마카오만 해당할 뿐, 그 사이의 모든 곳은 중국이라는 점을 굳이 이렇게 확인하고 있었다.


ⓒ이상엽지난해 10월 개통된 강주아오 대교.

비슷한 시기 개통된 홍콩과 중국을 연결하는 고속철도의 웨스트카오룽역도 상황은 비슷했다. 중국은 홍콩 카오룽반도(주룽반도) 한복판에 있는 역의 출입국과 관련된 모든 관리를 홍콩 자치법이 아닌 중국 법률에 의해 통제한다고 선언했다. 역내의 직원들은 오른쪽 팔뚝에 중국식 ‘붉은 완장’을 차고 있었다. 역내의 이정표는 홍콩식 번체자로 쓰여 있었지만, 탑승권 자동판매기의 안내 문구는 중국식 간체자 표기를 사용했다. 예상은 했지만 놀라웠다. 2015년 중국에 비판적인 서적을 팔던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점장 람윙키가 홍콩에서 중국으로 납치된 것을 기억하는 홍콩 사람들은, 이제 카오룽역까지만 끌고 가면 일사천리 아니겠냐며 몸을 사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중국인들이 몰리는 곳이면 어김없이 공산당을 욕하는 파룬궁 신도들도 웨스트카오룽역 주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침사추이의 스타페리 선착장 앞에서 수년째 시위 아닌 시위를 벌이는, 심지어 이제는 얼굴도 낯익은 파룬궁 신도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거기 있다가 중국으로 끌려가면 어쩌냐’는 답이 돌아왔다.

‘중국의 질서’ 강요당하는 홍콩인들의 슬픔

2월27일 홍콩 언론은 일제히 홍콩과 마주 보는 중국의 경제특구 선전의 총생산이 홍콩을 앞질렀다고 보도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무렵만 해도 홍콩은 중국 총생산의 30%가량을 담당했다. 당시만 해도 홍콩 사람이 ‘중국의 1등 시민’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도 중국에서 유입된 자금 덕에 큰 어려움 없이 넘겼고, 그해 개최된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서는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답한 홍콩 사람 수가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현재 홍콩의 젊은이 중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3%. 역대 최저치다. 중국의 질서를 강요하는 중국 정부의 행태에 홍콩 사람들은 지쳐가고 있다.  

홍콩은 대를 이어 살아온 토박이가 거의 없는 땅이다. 하나같이 중일전쟁과 공산 혁명의 와중에 전란을 피해 영국령으로 쫓겨 들어온 피란민 집단이다. 다시금 해외 이민자 수가 중국 반환 직전에 육박한다는 보도는 홍콩을 더욱 우울하게 한다. 그 또한 해외로 가서 살 능력이 되는 사람들 이야기다. 다들 어떤 세상이 다가올지 알면서도 홍콩을 떠날 방도가 없어 눌러앉아 있다. 2014년 수십 일간 벌어진 ‘우산혁명의 반동’이 홍콩 사회 전역을 짓누르고 있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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