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3월 중순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 대변인’에 빗대 세상을 북새통으로 만들었다. 나 의원이 글로벌 부국(富國) 중 하나인 대한민국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독재국가의 통치자를 ‘모신다’고 진정으로 믿는지 의심스럽다. 다만 이 발언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던지 너무 신나서 “해방 뒤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분열했다”로까지 폭주해버렸다. 같은 당 황교안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사실상 부정하더니, 주로 장외투쟁을 맡을 것으로 보이는 당내 조직에 ‘좌파독재 저지 특별위원회’라는 아찔한 이름을 붙였다. 보궐선거 지원유세 중인 자기 당 대표를 “찌질하다”라고 평가한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자유·책임·신뢰를 주요 가치로 하는 보수 우파 시민단체를 만든다고 한다.

나는 이른바 보수 정치인들의 최근 행태에서 어떤 공통점을 느낀다. ‘태극기 부대’로 통칭되는 극우 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온 것처럼 보인다. 아무나 ‘종북 좌파’로 몰아붙이거나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마치 성인처럼 받들어 모시는 행태가 그러하다. 극우 유튜버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이나 반민특위 해체까지 옹호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 의원의 반민특위 발언에서 짙은 기시감을 느낀 이유다. 보수 정치인과 극우 유튜버들은 한결같이 자유민주주의자를 자처한다.

ⓒ시사IN 양한모
이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뭔지 모르겠다. 보수 우파를 자처하는 분들 중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요소인 개인주의자나 시장주의자를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보수 우파는 호남과 북한에 대한 증오를 자유민주주의와 동일시하는 ‘사디스트적인’ 이들일 뿐이다. 증오하고 경멸하면서 느끼는 바로 그 ‘쾌감’이 그들에게는 자유민주주의일 터이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의 요체가 결국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이 나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가 타인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법치주의나 삼권분립 같은 제법 수미일관한 제도가 만들어진다. 호남과 북한에 대한 저주·경멸이 정체성인 이들을 부추겨 표나 얻으려는 보수 정치인들의 행태는 결국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귀결될 것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