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들 다 강간, 난 부처님과 갱뱅(gangbang·난교) (중략) 내 이름 언급하다간 니 가족들 다 칼빵.” 3월30일 래퍼 김효은과 브래디스트릿이 작업한 신곡 ‘머니 로드(Money road)’가 발표되자마자 SNS가 뜨겁게 달궈졌다. 이 노래는 19세 미만 청취 금지조차 되지 않은 채로 음원 사이트에 유통됐다. 비판이 거세지자 김효은과 브래디스트릿은 하루 만에 사과문을 올리고 가사를 수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힙합 음악에서 여성혐오는 일종의 장르적 특성으로 널리 용인되어 왔다. 랩 하나로 ‘정상까지 왔다’라는 성공 신화를 노래하는 곡에서 여성의 위치는 집, 자동차, 현금, 명품 시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래퍼들을 조롱할 때는 ‘네 여자 친구를 내가 빼앗았다’ 혹은 ‘계집애’ ‘게이’라는 표현이 흔하게 쓰이곤 했다. 남성성을 찬양하고 여성과 성소수자를 열등하게 여기는 관습 속에서 초등학생 래퍼는 “여자 친구들은 나랑 친하다고 떵떵거리면서 복도를 누벼(조우찬)”라고 노래하며, 여성 래퍼는 “난 남자랑 겨뤄, 계집쯤은 아무것도 아녀(에이솔)”라고 노래했다.
다만 김효은과 브래디스트릿의 빠른 사과가 보여주듯 분명한 변화의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블랙넛은 키디비를 성적으로 모욕한 혐의로 지난 1월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예술 내지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만큼 피해자의 인격권도 소중하고 보호돼야 한다”라고 판시했다. 2017년 박근혜 탄핵 정국 속에서 여성혐오적 표현을 담은 곡들이 발표되는 상황을 두고 버벌진트는 “그가 여성인 것을 걸고넘어지는 순간부터 하나도 말 안 되는 거 (중략) 혐오의 단어는 내뱉고 싶지 않아 나에겐 더 중요한 가치가 있으니까(‘그것이 알고 싶다’ 중)”라고 지적했다. 예전에 발표했던 곡의 혐오 표현을 수정한 최삼, 페미니즘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는 슬릭처럼 새로운 길을 고민하는 여성 래퍼도 늘었다. 빅스 라비나 블락비 피오처럼 힙합 음악을 하는 케이팝 아이돌도 여성을 지나치게 성상품화했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뮤직비디오를 일부 수정하기도 했다. 더 이상 “힙합은 원래 그래”라는 말로 넘어갈 수 없을 만큼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졌다는 증거다.
이와 같은 목소리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맥락 없이 혐오를 난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과거의 관습에 기대 창작력의 빈곤함을 메우려는 게으름일 뿐이다. 다양한 가사가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있다면 변화하는 사회에 걸맞은 청중의 요구가 아니라 바로 이 게으름일 것이다.
혐오 표현 없이 랩을 할 수는 없을까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픈 이라면 지금은 왜 그 ‘자유’가 유독 소수자나 약자만을 향하는지도 한 번쯤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또한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곧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면죄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고려해야 한다. 한 예로 독일음악산업협회는 2018년 4월 ‘에코 뮤직 어워드’ 힙합 부문 수상작에 반유대주의, 여성혐오, 동성애 혐오 가사가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자 26년 만에 시상식을 폐지했다. 래퍼들은 사과하고 반유대주의에 맞서는 캠페인에 10만 유로를 기부했다.
혐오 표현 없이 자유롭고 재미있게 랩을 할 수는 없을까? 의문이 들었다면 직접 써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여성민우회는 4월23일부터 5주에 걸쳐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곡을 완성하는 초급 힙합·랩 모임 ‘Fㅔ미점프’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 누구의 딸, 그 누구의 반, 어느 누구의 누구도 아닌 그저 하나의 나(슬릭, ‘36.7’ 중)”를 노래하려는 여성들의 힘찬 시작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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