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가라앉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1분기 전 세계의 성장이 정체되었으며, 며칠 전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 3.7%에서 3.3%로 낮추었다. 불황의 전조인 미국의 장단기 국채금리 역전 현상도 나타났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는 여전히 이전의 성장 추세에 미치지 못하며 전망도 어둡다. 일본과 독일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 경기둔화 앞에서 연방준비제도도 급히 스탠스를 바꾸었다. 지난해 내내 통화정책 정상화와 금리 인상을 강조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금리 인상을 멈추고 양적완화를 되돌리는 과정도 중단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세계경제의 장기적인 정체 가능성은 어제오늘의 우려가 아니다. 이미 로런스 서머스는 민간 소비와 투자 부족, 그리고 저축 과잉으로 자연금리가 오랫동안 하락했다며 장기정체론을 제시한 바 있다. 자연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통상적인 통화정책이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를 통해 돈을 뿌렸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부채 증가나 자산시장의 버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투자수요가 정체된 상황에서 대출은 늘지 않아 중앙은행이 뿌린 돈이 경제에서 돌지 않고 다시 되돌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총대를 멜 주체는 다시 정부다. 실제로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적극적인 재정 확장의 목소리가 거시경제학계에서 대세다. IMF의 전 수석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지난 1월 국채금리가 명목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현실에서는 높은 국가부채의 비용과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서머스도 장기 정체를 막기 위해서는 재정지출 확대가 필수이며, 다른 학자들은 정부가 총수요 둔화에 맞서 경기를 부양하지 않으면 장기 실업과 기업의 신기술 투자 정체로 생산성 상승이 둔화되고 장기 성장도 저해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학계의 긴축 논쟁은 케인스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다고 할 수 있지만, 현실의 경제정책은 정치가 결정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오바마 정부 내내 보수파는 정부 계획에 발목을 잡아 재정지출 확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긴축은 경기둔화와 불평등 심화를 낳아 대중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이를 배경으로 최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의원 등 미국 민주당 좌파 정치인들은 정부의 획기적인 재정지출에 기초한 ‘그린 뉴딜’을 주장한다. 이들은 녹색산업과 인프라에 대한 공공투자, 국민 모두를 위한 공적 의료보험, 그리고 연방정부 일자리 보장제도 등을 제시하고 있다.
‘거시경제학’보다 ‘정치경제학’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모두를 다 하는 데 엄청난 돈이 든다는 점이다. 이들은 현대화폐이론(MMT)이 주장하는 경제학을 제시한다. 이들은 주권통화를 발행하는 정부는 파산하지 않고 완전고용을 위한 정부의 재정적자를 중앙은행의 통화 발행으로 직접 충당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MMT는 보수파가 주장하는 긴축에 선명히 반대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여러 진보적인 케인스주의자들은 이들의 주장이 과도하게 단순하고 재정정책의 현실적 한계와 인플레이션 가능성, 제도적 현실 등을 간과한다고 비판한다. 이들이 인기를 끌자 이제 폴 크루그먼 등 주류 거시경제학자들도 당혹스러워하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아마도 MMT가 대두하는 것은 보수파가 주장한 긴축에 대한 정치적 반작용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결국 장기 정체의 가능성 앞에서 보수적 거시경제학이 저물고 정부의 적극적 재정지출을 강조하는 케인스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 물론 현실에 맞는 케인스주의의 이론과 정책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의 약화와 불평등의 심화가 총수요와 생산성 상승의 둔화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장기 정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재정지출을 넘어 먼저 자본과 노동 간 힘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 세계경제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거시경제학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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