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훈을 이야기할 땐 잠시 호흡을 가다듬게 된다. 그의 가장 최근 키워드는 ‘자숙’이기 때문이다.

어쩐지 그가 방송에서 잘 안 보인다 싶어 자숙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지만, 사실 이렇다 할 잘못을 저지른 적은 없다. 어떤 연예인들이 ‘유명한 것으로 유명’하다면 천명훈은 ‘조용히 지내는 것으로 잘 알려진’ 셈이다. 조금 억울한 듯, 피로한 듯한 표정도 어딘지 타박받기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

2인조 그룹 하모하모로 처음 데뷔하던 1996년, 그는 소문난 미소년이었다. 이듬해 하모하모를 재편한 보이그룹 NRG도 워낙 해사한 미소년 그룹이었다. 첫사랑의 들뜬 마음에 방방 뛰어오르던 NRG는 최근 보이그룹 트렌드인 ‘청량 소년’의 선조 격이었다. 그는 ‘Hit Song’ ‘대한건아 만세’ 등 NRG의 대표곡을 써내기도 했다. 유쾌한 기세가 넘실대는 곡들이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부담스러운 눈빛을 부라리며 까불거리는 이미지로 예능계의 주목도 받았고, 연예인 출신 클럽 DJ가 많아지기 전부터 DJ의 삶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만하면 꽤 성공적으로 안착한 연예인의 이력서 같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왠지 자숙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잠잠한 커리어였다. NRG 시절의 그는 날카롭고 눈부셨지만, 세월을 겪은 그는 조금 자신감 없어 보일 때마저 있다. 그럴 때 보통의 아저씨들은 마치 정해진 순서라는 듯 자기 연민을 보인다. 이를테면 순수하던 자신이 세파에 찌들어 얼마나 ‘더러워졌나’를 늘어놓으며, 그 과정에서 짓밟히거나 억눌린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불쌍한 양 구는 식이다.

천명훈을 웬만해선 미워할 수 없는 건 그래서일지 모른다. 그가 자신을 낮추는 모습은 상쾌하다. 동정해달라고 떼를 쓰기보다는 구박하기 좋게 자신을 내맡기기 때문이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연예계의 명암 속에 남을 탓하지도 않는다. ‘자숙의 아이콘’도 지금의 자신을 희화화하는 현재의 유머다. 그리고 과거의 추억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정으로 소화한다. 몇 해 전 1세대 아이돌을 재조명하는 방송에 출연할 때도 옛 동료들을 재회하는 반가움에 가장 감격하고, 라이벌이던 H.O.T.나 젝스키스의 멋진 점을 열심히 주워섬기는 이도 그였다.

그의 커리어에서 귀감을 찾으려는 이가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상당히 재능 있는 젊은이가 질곡을 겪으며 평범한 아저씨에 가까워질 때, 천명훈은 얻지 말아야 할 것들을 얻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천명훈이 전하는 것이 아주 짜릿한 ‘엔터테인먼트’는 아닐지 몰라도, 그는 사람으로서 꽤 괜찮게 나이 들고 있다. 눈이 멀 듯이 빛나는 세계에서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연예계에는 그런 사람들의 자리가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최근까지도 그는 대중을 만나고 있다. ‘자숙’해가며, 드문드문. 조금은 억울한 듯한 얼굴로 자신을 희화화하며. 그의 매정한 오랜 벗 대중이 그걸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런 연예인이 꾸준히 즐겁게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시사IN〉에 그의 이름이 실리는 것에 긴장하는 이가 없길 바라며.

기자명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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