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대기업의 내부 인사관리 문건이 보도되면서 논란이 되었다. 해당 문서는, 사내에서 업무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저성과자’를 선별하고 관리할 것을 계획했다. 저성과자들에게 어려운 과제를 부여한 후 강력한 피드백을 주어 자발적 퇴직을 유도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문제는 회사가 단순히 저성과자만을 관리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보통 이상의 성과’를 보이는 사원이더라도 회사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자들을 별도로 분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문건에는 이들을 ‘blamer’라고 표현하고 있다).

저성과자란 일반적으로 ‘직무수행 능력이 부족하거나 근무성적이 극히 나쁜 자’를 말한다. 통상 2년에서 3년의 누적된 인사평가 결과를 놓고 저성과자로 선정되니, 공정한 인사평가가 있었다면 그들이 조직과 회사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윤 추구라는 명백한 조직 논리를 갖는 사기업 안에서,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지 못하는 그들을 조직에서 배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처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평 사원(blamer)의 경우는 어떤가. 문건에 나오는 저성과자 관리는, 회사의 주주와 이사들을 위해 일하는 인사 담당자의 원래 업무 범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회사나 상사에 불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회사로부터 특별 관리를 받고 있다면, 이것은 정당한가.

ⓒ윤현지


아니, 다시 묻자. 자율성을 갖는 개인이 회사라는 관료제 조직에 욱여넣어져 일을 하는 경우 도대체 불평·불만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노동자는 회사 조직에서 완벽한 상명하복을 실천하며 업무 내외에서 티끌만큼의 이견도 발설해서는 안 되는가 말이다. 저 회사의 문건에서 저성과자에 대한 부분보다 불평 사원에 대한 관리 계획이 충격으로 다가왔던 이유다.

회사의 불평 사원 관리 계획은, 실제 실행 단계에서 우리에게 더 큰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저성과자 분류는 회사가 공식적으로 실행하는 인사평가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회사는 저성과자와 정반대의 의미에서 ‘능력자들’(보통 ‘high-potential 사원’이라 불린다)을 선별하고, 이들에게 특별한 승진과 교육 등의 혜택을 부여하며 충성심을 유지시키기 위해 애쓴다. 말하자면, 회사의 인사 시스템에 의해 공식적으로 획득되는 평가 정보가 이 능력자들과 저성과자들을 가르는 자연스러운 기준이 된다. 사원들은 정기 인사평가를 통해 1년에 한 번씩 자신의 위치를 대충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불평 사원은 자기 스스로 그렇게 낙인 찍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은밀한 관리를 당하게 되는데, 분류 과정에서 평가 근거가 불투명하다는 점이 문제다. 만약 계획을 실행으로 옮겼다면, 회사는 사원들 사이에서 술자리 뒷담화나 휴게실 잡담을 은밀히 수집해 세평을 작성하거나, 심지어 사내 메신저나 이메일을 통해 사원의 머릿속을 염탐할 수도 있다(다른 회사 사례에서 개인정보를 위법하게 취득하는 것은 가끔 사실로 확인된다).

문건에서 회사는 불평 사원을 “개인 신상에 대한 불만보다는 회사의 정책이나 시스템 등에 주로 불만 경향”을 갖고 “리더와 궁합이 맞지 않아 불만인 경우도 종종 발생”하지만, “열정적인 특성이 있고, 의외로 아이디어가 많기도 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조직이 배워야 할 문화로는 “혹독한 훈련도 참아내고 때로는 희생도 감수”하는 “군대 조직문화”를 대안으로 삼고 있었다.

회사라는 큰 조직 앞에 선 노동자 개인은 너무 초라한 존재다. 불평 사원으로 분류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어떤 동료를 생각하면, 인간적인 연민을 품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과연 우리는 개인의 존엄과 개성을 가진 노동자로서 회사 조직의 당당한 구성원이 될 순 없을까. 우리가 이미 ‘회사 전체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 작은 소망은 순진하고 미약한 기대일 뿐인가.

기자명 양지훈 (변호사·〈회사 그만두는 법〉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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