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6~27일 제주 무명서점에서 ‘304 낭독회’가 진행됐다. 쉰여섯, 쉰일곱 번째였다. 2014년 9월에 시작한 304 낭독회는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작가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낭독회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주로 서울 곳곳에서 열리던 낭독회는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서울 이외의 지역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인천으로 갔고, 4월을 맞아 제주를 찾았다. ‘세월호’와 ‘제주’라는 이름을 포개어놓는 데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304명이 닿아야 했던 곳, 닿을 수 없었던 곳에서 열린 낭독회는 여느 때보다 더 무겁고 조용하게 시작됐다. 누군가와 여전히 함께 산다는 것, 기억이라는 행위에 모든 이가 몰입했다. 너무 큰 비극 앞에서 우리는 때때로 슬픔의 묵비권을 행사하기도 하는 법. 그런데도 사회를 맡은 양경언 평론가가 ‘제주에…’ 하고 여는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자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제주에 닿지 못한 이들을 대신해 와 있다는 사실을 삶으로, 애도로, 책임으로, 진실로 받아들인 가운데 모두 오만 가지 방향으로 마음을 쓰고 있었다.

“시민의 힘으로 세월호 진실도 밝혀내게 될 거야”

ⓒ정켈


제주에서 주로 활동 중인 김신숙 시인은 ‘4·3 사건’을 언급하며 ‘잊힌 여성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4·3의 진상이 규명되는 와중에도 여성 피해자들의 서사는 자주 투명해진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달을 보아라 갸름한 여자들이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토산에서는’으로 시작되는 〈유미〉라는 시를 통해 4·3과 세월호를 국가가 자행한 폭력으로 자연히 연결하며 ‘여성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다시금 환기했다.

또한 수산리에 터를 잡고 있는 허은실 시인은 4·3을 추념하는 전시에서 보았던 ‘김순금(1917년생, 제주 서귀포시 남제주군 성산면 수산리)’이라는 이름을 세월호 희생자 명단에서 다시 발견하곤 그 ‘우연의 일치’를 역사적인, 우주적인 차원에서 살펴본 후에 ‘기억이란 행동성과 능동성을 요구하는 행위’이며 ‘희생된 이름으로써 역사는 추상적인 과거가 아니라 실제적인 사건이 된다’라고 깨친 바를 들려주었다.

강정에 사는 한 시민의 낭독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세월호에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사용될 철근이 과적되어 있었다는
데에 분노하던 ‘성호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녀가 아들 성호에게 보낸 편지(〈그리운 너에게〉 후마니타스, 2018)를 읽었다. ‘민중들의 울분과 분노는 가실 날이 없단다… 깨어 있는 시민의 힘으로… 세월호 진실도 밝혀내게 될 거야’라고 말하는 이는 더는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정혜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체였다.

노래하는 사람으로 낭독회에 참여한 가수 요조는 근래 들어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나’에 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전하며 사회적 약자·소수자와 연대하는 게 기억하는 일인 것 같다며 ‘싫은 사람이 얼마나 싫은지 이렇게 저의 노래로 부릅니다’라고 싫어할 권리를 노래했다. 얼굴 속 주름이 아니라 주름 속 얼굴을, 하얀 머리카락이 아니라 머릿속 하얀 것을.

그날 ‘이름 없는’ 책방에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못했던 말을 나누고,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많은 이가 각자의 이름을 잠시 놓아둔 채 하나의 이름으로 서로를 불러주었다. 가닿았다. 연결되었다. 사람이었다. 304 낭독회는 ‘사람의 말’을 나누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나 낭독자로 함께할 수 있다. 이때 사람의 말은 무엇보다 여성의 말이기도 함을 부러 밝혀 적는다.

기자명 김현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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