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KTX 여승무원으로 8년간 근무하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1년간 휴직한 뒤 더 이상 휴직이 불가해 퇴사한 사람이었다. 산업재해(산재) 신청을 위해 상담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 나는 이직을 해서 질병의 업무 관련성을 평가하는 업무까지 할 여력이 없었다. 예약을 받지 않고 있었지만, 외래로 방문하도록 했다. 우울증의 원인이 감정노동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0년에 ‘감정노동에 의한 직업병’이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을 쓴 뒤로 간간이 질문을 받을 일이 있었지만 산재보상 상담은 처음이었다. 2013년 정신과 질환의 산재 승인자는 53명, 승인율은 38.7%였고, 이 중 우울장애는 3건, 불안장애는 1건이었다. 우울장애로 산재 인정을 받는 것이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산재’에 시달리는 여성 감정 노동자

ⓒ윤현지


만나서 긴 이야기를 들었다. 입사 후 4년째부터 속이 좋지 않고 토하거나 몸이 아팠으며, 출근하기 싫은 마음이 자주 들었다고 했다. 입사 7년째부터 직무 스트레스가 더 심해지면서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았고, 승객의 폭언과 위협에 노출된 이후 열차 타는 게 무서워서 승차하기 전에 기관실에서 매일 울었다고 했다. 입사 8년째에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진단받았고, 두 달 뒤 증상이 악화되어 입원치료를 받았다. 산재라고 생각한 이유를 물었다. 사람들에게 시달리면서 서서히 우울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의무기록을 검토하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방문했던 개인 의원이나 입원했던 병원의 기록은 주로 남편과의 관계 등 사적인 내용의 비중이 훨씬 더 많았다. 의무기록을 읽어보면 업무와 관련해 발생한 우울증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의 업무는 다음과 같았다. 한 달 간격으로 탑승 일정을 받으며 휴무일은 월 8~9일, 1년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연차는 최대 5~6일 정도였다. 근무시간은 탑승 열차에 따라 다양했고, 통상 4일 연속근무를 하며 최대 8일까지 연속근무를 했다. 야간에 퇴근하거나 새벽 출근을 하는 경우는 회사 숙소에서 잤다. 업무는 안내, 순회, 검표를 맡아 동시에 이루어지는데 18칸 열차(900석)에 승무원 한 명이 9칸씩 담당하고, 순회는 30분당 1회를 수행했다. 경우에 따라 특실 서비스, 장애인 및 거동 불편자, 어린이 돌봄 서비스가 추가되었다. 검표 시 수시로 폭언에 노출되었고, 일부러 몸 스치기, 몸 전체를 훑어보기, 엉덩이 찌르기, ‘재미 한번 보자’는 식의 발언, 남성 생식기 관련 발언 등 성적 괴롭힘은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아프기 전에는 열차 내 취객 관리와 관련해 ‘순회를 안 하더라’는 민원이 제기되었다. 또 민원이 들어올까 봐 같이 일하는 코레일 직원이 좀 쉬었다 하라고 말할 정도로 ‘미친 듯이’ 순회를 했다고 한다.

두 번째 만남에서 물었다. 왜 의사들과 대화하면서 사적인 이야기만 했는지.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물어보는 대로 대답했어요. 업무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어요. 부부싸움은 신혼 초에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와서 한 번 한 적이 있어요.”

아직도 여성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여성으로만 여겨진다. 일터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희롱과 폭언에 노출되면서도, 열차를 타는 게 무서워 타기 전에 매일 울면서도 일할 때는 웃어야 한다. 과도한 감정노동을 수행하다가 결국 아파서 병원에 가도 업무 스트레스보다는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질문을 받는다.

산재는 승인되었고, KTX 여승무원의 첫 산재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긴 시간이 지나, 부족하긴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어 일명 감정노동자보호법이라 불리는 조항이 2018년 10월부터 발효되었다. 그분의 마음이 치유되었기를, 고객을 응대하면서 폭언과 성희롱에도 웃는 얼굴로 일해야 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줄어들기를 빌어본다.

기자명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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