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홀 못지않은 화려한 무대 조명에 눈이 부셨다. 웅장한 느낌의 배경음악을 시작으로 미리 제작된 영상이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다. 가끔씩 아래에서 위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가 무대 효과를 더했다. 드디어 발표자 등장. 세련된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한 장씩 넘겨졌다. 퓨처, 글로벌, 융합, 혁신 같은 단어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정말 아주 잠깐,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창업가 느낌이 날 ‘뻔’했다. 총장을 포함해 멀뚱한 표정의 남성 대여섯이 무대 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준비된 버튼을 동시에 누르자 번쩍번쩍 조명이 행사장을 몇 차례 휘감았다. 몇 년 전, 한 대학의 비전이 그렇게 선포되었다.

대학에서는 종종 ‘비전 선포식’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린다. 건학 60주년, 개교 40주년 등을 내걸거나, 새 총장이 취임한 뒤 몇 개월 준비 기간을 거쳐 새로운 비전이 발표된다. 다른 대학 비전 선포식에 갈 기회가 생기면 되도록 가보려고 한다. 직접 가지 못할 땐 관련 기사나 보도자료라도 챙겨 본다. 그 대학 총장은 어떤 비전을 가졌는지, 다른 대학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행사는 어떻게 치르는지 참고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다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박해성


우선 공허하다. 화려한 미사여구 때문일까, 조직의 비전이라는 것이 추상적 개념들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탓일까. 비전을 구성하는 단어들이나 비전을 실현코자 하는 대학의 목표·전략에 공감하기가 힘들다. ‘세계 명문대학 도약’ ‘글로벌 창의리더 육성’ ‘융합인재 양성’ ‘4차 산업혁명 시대 선도’ 같은 비전은 거창할 뿐 손에 잡히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은 느낌이다. ‘아시아 10위’ ‘세계 100위권’처럼 순위를 내세운 경우는 (평가 순위를 대학의 비전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논외로 하고) 과연 스스로 실현 가능하다고 믿는 것인지 묻고 싶을 정도다. ‘비전 2030’처럼 뒤에 연도를 붙이는 경우도 많은데, 2030년이 멀게 느껴지는 것만큼 비전 내용과 실현 가능성 또한 아득하기만 하다.

‘비전 2020’ 선언했던 대학들의 현주소는?

선포식에서 학생들은 동원의 대상이다. 객석 맨 앞줄은 역대 총장, 이사장, 동문회 관계자, 지자체장, 국회의원 같은 귀빈 차지다. 행사장과 그 주변은 이들의 동선을 챙기는 수행원들과 의전에 실패하지 않으려 애쓰는 교직원들로 분주하다. 학생은 버튼을 누르거나 비전 선언문을 낭독하는 등 퍼포먼스를 위해 한두 명 참여하는 게 전부다. 행사장이 넓어서 혹여 빈자리가 보일까 걱정되면 학생들을 동원하기 위해 교내 학생식당 식권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기념품을 준다고 공지한다. 선포식에 참석하느라 수업에 빠질 경우 사유서를 발급해준다고 홍보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 구성원들은 시큰둥하다. 비전 선포식은 대학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공유하고 서로 격려하며 축하하는 자리로 포장되지만, 경영진이나 기획·비전 담당 부서 외에는 무관심하다. 몇 년이 지나 총장이 바뀌면 또 다른 수사(修辭)와 함께 선포될 비전, 공감대와 현실성 없이 경영진과 몇몇 교수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전략과 목표를 보며 구성원들은 냉소한다. 학생들은 동문 연예인이라도 몇 명 온다면 구경 삼아 들를까, 대학의 비전이나 미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한때 미래 사회를 상징하는 숫자였던 ‘2020’의 해를 목전에 둔 지금, 유행처럼 ‘비전 2020’을 선포했던 국내 대학들의 현주소를 돌아보면 어떨지 상상해본다. 그때 꿈꾸던 캠퍼스에서,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걸까.

기자명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