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한가? 사진을 찍고 나누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쉬워진 시대에 우리는 산다. SNS에 하루 포스팅되는 사진만도 1억8000만 장에 달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풍성한 먹을거리, 이국적인 모습들이 넘쳐난다.

SNS 사진을 들여다보노라면 월터 리프먼이 자신의 저서 〈여론(Public Opinion)〉에서 ‘시민들은 그들이 스스로 머릿속에 만드는 그림(the pictures in our head)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이 말은, 시민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을 통해 세상에 대한 이미지를 갖는 게 아니라 미디어가 제시한 메시지로 세상을 본다는 뜻이다. 리프먼의 말을 SNS에 적용해보면, SNS라는 미디어를 통해서 본 세상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이규철 사진집 〈나, 죄 어수다-4·3 수형인 18인의 이야기〉 표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현실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구성된 사회적 현실’이다. 현저함이나 두드러짐을 통해서
미디어는 특정 메시지를 더 강조할 수 있다. 이때 가장 강력한 미디어의
무기가 바로 사진이다. 우리는 매일 대중매체를 통해 수많은 사진을 보고,
그 사진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하고 판단한다.

사진(photography)은 그리스어로 빛(photo)과 그림(graphy)이 합쳐진 말로, 문자 그대로 ‘빛으로 그린 이미지’ 또는 ‘빛이 남긴 자국’이다. 그래서
사진은 실재하는 무엇인가의 ‘자국’ 혹은 ‘흔적’이기 때문에 진정성이라는 특별한 힘을 가진다. 사진에 기록된 것은 언제, 어디선가 실재했던 무엇인가를 증명한다. 문제는 이처럼 무엇인가의 자국임을 증명하는 사진이 ‘어떻게’ ‘얼마만큼’ 제시되느냐에 따라 현실과는 다른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매체가 제시하는 메시지와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미미한 존재가 내보내는 메시지는 그 파급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 특정한 내용의 이미지만을 더 자주, 더 크게 보여준다면 그 반대 처지에 있는 시각은 무력해질 것이다.

기억해야 할 역사 다룬 사진 드물어

세상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진은 많은데, 정작 우리가 사는 현실 문제를 드러내고, 기억해야 할 역사 문제를 다루는 사진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전통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왜곡되고 매몰된 사회적 현실만을 봤을 뿐, 그 ‘그림자’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환상적인 이미지에 파묻힌 숨은 이야기를 다시 표면으로 밀어올리고, 잊힐 법했던 역사적 사건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게 돕는 것 또한 사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지 홍수 시대에 진정성을 가진 목소리를 내는 사진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매스 미디어와 SNS에서 쏟아내는 수많은 이미지에 파묻힌 채, 더 이상 세상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찾아내고, 이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믿는 소수의 사진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박탈당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작은 목소리지만 꿋꿋이 들려주는
이들이 있어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다. 이들의 작업을 통해 현실과 역사의 일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문드러진 속내 이야기가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사진가는 미디어(여러 사람)가 말하는 것을 보지 않고, 미디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본다. 그 사진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한가?

기자명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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