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모 언론지상을 보면, 대통령님께서 83학번이라는 보도를 어디서 봤습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토론이 한창 뜨거워지던 때, 박경춘 당시 서울지검 검사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질문했다. 검찰 개혁에 관한 토론을 하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대학 학번을 물었다. 노 대통령은 “네… 80학번쯤으로 보시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박 검사는 “그렇습니까(웃음). 저는 그 보도를 보고 내가 83학번인데 동기생인데, 대통령님이 되셨구나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졸 출신 사시 합격’은 널리 알려진 노 대통령의 이력이었는데도, 박 검사는 학번 이야기를 꺼냈다.

2003년 3월9일 생방송으로 전해진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는 결과적으로 ‘검사스럽다’라는 신조어만 남기고 끝났다. 그해 국어사전에 등록된 뜻은 ‘행동이나 성격이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논리 없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데가 있다’이다. 토론회에 배석한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2011년 〈문재인의 운명〉에서 당시를 이렇게 기록했다. “검사들의 태도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오죽했으면 ‘검사스럽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청와대사진기자단‘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가운데). 왼쪽 세 번째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


애초 취지와는 달리 평검사들은 검찰총장에게 인사권을 넘겨달라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이에 노 대통령이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고 지적하자, 이완규 당시 대검찰청 연구관은 자기들도 그것은 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게 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법무부 장관이 제청권, 즉 실질적 인사권을 가지고 정치권의 영향력을 수없이 검찰에 들여왔다.”

이석환 검사, 2009년 노 전 대통령 사건 수사

당시 평검사회의를 대표해 나온 10년차 안팎의 검사 10명이 발언을 했다. 이들 중 김병현 검사만 2019년 현재 검찰에 몸담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검찰을 떠났다.

정치권으로 옮긴 인사는 두 명이다. 김영종 당시 수원지검 검사는 지난해 자유한국당 윤리위원장을 맡았다가 지난 3월 사의를 표했다. 그는 2003년 토론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전 청탁성 전화를 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말했다. 당시 노 대통령의 형 이야기를 꺼낸 이정만 당시 서울지검 검사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의 문을 두드렸다. 20대 총선 때 경기 광명갑에서 새누리당 예비 후보에 출마했다가 당내 경선에서 떨어졌다.

2003년 “SK 수사에 여당 중진, 정부 고위 인사로부터 외압이 있었다”라고 말한 이석환 당시 인천지검 검사는 2009년 다시 노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대검 중수 2과장이던 그는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 우병우 중수1과장 등과 함께 노 전 대통령 사건을 수사했다. 2017년 제주지검장이던 때는 대검의 경고 조치를 받았다. ‘압수수색 영장 회수’ 등으로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데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었다.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검찰의 인사권 보장을 강하게 요구하던 윤장석 당시 부산지검 검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밑에서 민정비서관을 지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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