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올 때마다 아버지는 한국 마트에서 공짜로 주는 미주 한국 신문을 챙겼다. 아버지는 이 신문을 옆에 쌓아두고 읽으며 “한국이 망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나라가 엉망이 되었다”라고도 했다. “멍청한 노무현, 대학도 못 나온 게 어떻게 대통령이 되어서 나라를 망치는가.” 아버지는 신문을 읽을 때마다 이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그때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사람도 대통령이 됐구나. 신기하네’ 혹은 막연히 ‘진짜 무능한 대통령인가 보다’라고 여겼다. 굳이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의지도 상황도 아니었다.

나는 1995년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그리고 1999년에 결혼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나와 남편은 아버지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와 학교를 병행하며 가난한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2009년, 남편이 미국에 취직이 되어 처음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을 때, 평상시 습관대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한국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 사람은 언젠가 아버지가 그렇게 욕하던 대통령이 아닌가?’ 잘 모르는 사람의 죽음은 내게 ‘그냥 안됐다’라는 안타까움 그 이상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한국은 온통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물결로 가득 찼다.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일을 했길래? 어떤 사람이었길래? 대통령으로서 무능했던 이 사람을 사람들은 진심으로 추모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알게 된 노무현이라는 사람. 충격이었다. 어떻게 한국 언론이 한 사람에 대해 그렇게 왜곡하고, 줄기차게 비판할 수 있는가? ‘정치적 무관심은 결국 악한 자들의 지배를 돕는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한국을 떠날 때 스물두 살이었다. 투표는 딱 한 번 성년이 된 기념으로 했다. 그것도 그냥 다 모르는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을 대충 찍고 나왔다. 다이어리에 ‘처음으로 투표함’ 이렇게 적었다. 내게 정치인이란 그리고 대통령이란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만의 리그 안의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국민을 등쳐먹는 나쁜 인간으로 여겼다.

ⓒ시사IN 포토2009년 5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이 끝나고 서울광장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운구 행렬이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알게 된 이후로는 대통령이 국민을 사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딸아이에게도 자신 있게 소개해줄, 내가 존경하는 조국의 대통령이 생겼다. 2009년, 그분이 없는 시간에 그분을 더 알게 되고 존경하게 되었다. 또한 언론이 주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19년, 매주 성경공부 모임에 나가고 있다. 어느 날, 모임에 오는 한 분이 대뜸 사람들에게 같이 토론토에 가자고 했다. ‘한국이 적화통일이 된다’고, 가서 ‘나라를 구해야 한다’고. 그래서 이번에 열리는 태극기 집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이다. 2019년에 그것도 미국과 캐나다에는 이런 어르신들이 아직 많다. 이분들은 선거철이 되면 꼭 투표를 하러 가신다. 그래서 우리도 악착같이 미국에서 투표를 한다. 이런 사람들의 표가 아무런 의미 없는 숫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