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직서가 역사의 거대한 방아쇠를 당겼다. 양승태 대법원이 은밀히 진행하던 사법농단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 출발점이었다.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으니 그것을 비밀리에 관리하는 등’이 자신의 ‘새 임무’라는 사실을 들은 판사 이탄희는 바로 다음 날 사표를 냈다. 2017년 2월13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내려지기 전이었다. 그의 직위인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2심의관’과 ‘판사 뒷조사 파일’ 간에는 어떤 직무 연관성도 없었다. 헌법상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당한 지시였다. 이탄희는, 공직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단순명료한 원칙에 기반해 움직였다.

ⓒ시사IN 이명익


그런 출셋길 자리는 가지 않겠다는 한 판사의 소신은 법원행정처 내에 소란을 일으켰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가 원래 근무하던 법원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일견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진짜 사건’은 이제 시작이었다. 자신의 명예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쓴 사표가 불러온 파장이 이탄희 개인을 넘어서고 있었다. 얼마 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소집됐다. 이탄희의 원칙에 동감한 동료 판사들이 함께 목소리를 냈다.

지난 2년 동안 3차례 법원의 진상조사위가 꾸려져 조사하는 과정에서 판사 블랙리스트는 물론 재판 거래를 의심할 만한 문건까지 쏟아졌다. 일제 과거사 징용 사건, KTX 여승무원 해고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 당시에도 갑작스러운 결론 변경으로 의아하다며 뒷말을 샀던 판결들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상고법원 설치 등을 위해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와 벌인 사법농단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을 지낸 인사가 구속 기소됐다. 원칙이 만들어낸 변화였다.

이탄희 판사는 지난 1월 다시 사표를 썼다. 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지 닷새째 되는 날, 법원 내부전산망에 사직의 변을 남겼다. 두 번째 사직서를 쓰며 그는 “2년간 유예되었던 사직서라 생각한다. 지난 시절 행정처를 중심으로 벌어진 헌법에 반하는 행위들은 건전한 법관사회의 가치와 양식에 대한 배신이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더 큰 공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연합뉴스박근혜 대통령(왼쪽)과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5년 10월1일 국군의날 행사에서 대화하고 있다.


법관으로서 이탄희의 마지막 인사는 다음과 같다. “지난 2년간 배운 것이 많다. 한번 금이 간 것은 반드시 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인생은 버린 사람이 항상 이긴다는 것을 배웠다. 깨진 유리는 쥘수록 더 아프다. 하루라도 먼저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저도 무엇을 하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겠다. 저 자신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인가부터 먼저 생각해보려 한다.”

넉 달 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새 출발을 한 변호사 이탄희의 소식이 알려졌다. 5월21일 ‘공감’에서 첫 공개 강의를 맡은 그가 내세운 주제도 사법농단이었다. ‘후불제 민주주의 사회와 사법농단-사법농단은 왜 우리를 화나게 하는가.’ 사법농단의 역사적 기록에서 ‘양승태’란 이름만큼이나 고유명사로 여겨질 ‘이탄희’를 5월26일 만났다.

‘후불제 민주주의 사회와 사법농단’이라는 주제로 첫 공개 강연을 했다.

제도를 물건에 비유하면 선불과 후불로 구매하는 방법이 있다. 근대 민주주의를 도입한 서구에 비해, 우리는 후불에 가까운 상황이다. 역사적 투쟁으로 제도를 쟁취한 게 아니다. 좋은 제도라는 것이 확인된 이후에 들여왔다. 그러다 보니 그 제도가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 있다. 공직 사회부터 생각해보자. 고위 공직자들이 공직을 공적 역할로 생각하지 않고 사적 신분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다는 생각이 부족해 남용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시민이 행동해야 하는 일이 많다. 시민이 직접 나서야 하는 고단함, 그게 비용이다. 2016년 촛불집회에서 많이 나온 구호가 ‘이게 나라냐’였다. 공직 사회가 위임받은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담은 말이다. 지금도 비용을 우리 사회가 후불하고 있다. 사법농단도 그중 하나다.

공직을 출세의 다른 말로 인식하는 태도가 너무 흔해서, 오히려 공직의 교과서적 의미를 말하고 실천한 이탄희 판사가 신기해 보인다.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으로 발령받고 ‘보은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과거 법원행정처 기조실에 근무했던 판사들이 한 이야기였다. 인사권자가 바라는 방향에 조응해서 노력한 결과로 인사권자가 준 답례이니, 내가 다시 관계 속에서 갚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말하는 공적 가치는 이런 것을 사적인 거래로 전락시키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공적 가치가 사라지면,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행동이, ‘내가 고위 공직에 가기 위해서 해야 하는’ 행동이 된다.

 

ⓒ시사IN 조남진5월21일 이탄희 변호사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첫 공개 강의에 나섰다.


이 공적 가치는 새로운 게 아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취임사와 퇴임사에도 나온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 ‘투명하고 열린 법원’ ‘투명하게 드러나는 재판 과정’ 등이다. 왜 새롭게 느껴질까? 공직사회 구성원들의 일상이 제도의 취지와 완전히 유리되어 별개로 돌아가는 게 문제다. 지독한 괴리다. 미국 유학 시절 만난, 미국 법원의 말단 공무원도 자기 직무가 뭔지 설명한다. 항상 자기 직무가 뭔지 생각해서다. 의문이 나면 ‘이게 내가 할 일인가?’ 되묻고 지침서를 찾아보거나 상급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근거를 남긴다. 우리 공직자들은 옆 사람에게 묻는 게 전부이고 술자리에서 사적으로 해결한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별이 없다.  

강연의 부제는 ‘사법농단은 왜 우리를 화나게 하는가’였다. 보통 ‘화’는 사적 감정으로 여겨지는데, 공적 사건과 결부시켜 설명했다.

판사들과 시민들의 분노를 언어로 의미 부여하고 싶었다. ‘당신들의 화는 정당하다’라며 지지하는 의미다. 믿지 않았다면 배신감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법치주의를 믿는다. ‘판사들 다 썩었다’라고 말하는 시민도 법정에 서면 판사를 믿을 수밖에 없다. 판사가 신뢰받을 자격이 있어서 믿는 게 아니라,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믿는다. 기대가 배신당하고, 좌절감으로 연결되면 화가 나는 법이다. 2017년 사직서를 낼 때도 내가 가진 부정적 감정이 공적으로 정당한지 고민했다.

처음 사직서를 낼 때는 내 세계관이나 명예를 지키겠다는 생각이 컸다. 이후 사직서를 철회하고 법원에 돌아가면서부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일이 올바르게 해결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다. 분노를 느꼈던 적도 여러 번이다. 2017년 4월 법원의 1차 진상조사위 결과를 봤을 때도 그랬다. 기대를 했기에 배신감을 느꼈다. 진상조사위원장은 진실을 명백하게 밝히겠다고 약속했지만, 관련 컴퓨터도 확인하지 않은 채 끝냈다.

일부 언론이 법관대표회의를 중심으로 한 법관들의 자정 노력을 색깔론으로 매도했을 때도 화가 많이 났다. 자극적 프레임을 들고 와 시선을 분산시켜 본질을 알 수 없게 만든다고 느꼈다. 사법농단은 진보·보수 문제가 아니다. 법정에서 재판을 하지 않고,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확인할 수 없는 자료를 보고 판결을 내리는 법원을 누가 원할까? 서구에서는 ‘Ex Parte(엑스 파테)’라는 라틴어 법 격언이 있다. 판사가 법적 근거 없이 한쪽 당사자를 다른 당사자가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는 것을 일컫는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재심 사유다.

〈조선일보〉 등을 비롯한 언론 보도가 대표적이었다.

‘판사 블랙리스트’ 개념에 대한 기사가 대표적이다. 제 기억만으로도 네 차례나 개념을 바꿔가며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보도했다. 당초의 블랙리스트 개념은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들을 뒷조사한 파일’이었다. 그게 2017년 1차 진상 조사 때 나왔다. 법원행정처 인사실도 윤리감사실도 아닌 곳에서 작성한, 정당한 절차에 의하지 않은 뒷조사였다. 그러자 일부 언론은 블랙리스트 개념을 바꿔버렸다. ‘전체 판사를 뒷조사한 파일이 블랙리스트인데 그건 안 나왔다. 그러니까 블랙리스트는 없는 거다’라고.

 

ⓒ시사IN 이명익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11일 검찰에 출석하기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2018년 2차 조사를 하자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가 아닌 판사들을 뒷조사한 파일도 나왔다. 다시 개념을 바꿨다. ‘뒷조사가 아니라 뒷조사를 한 이후에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검토한 문건이 나와야 블랙리스트다. 그게 안 나왔으니 이번에도 블랙리스트가 없다.’ 3차 조사에서 인사 불이익 조치를 검토한 문건도 나왔다. 또 바꿨다(웃음).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실행한 문건이 안 나왔다면서. (해당 언론은) 이렇게 계속해서 개념을 바꾸며 사건의 본질을 흐렸다. 그런데 검찰 수사에서 ‘인사상 불이익 조치 실행’까지 나와버렸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양승태 대법원은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작성해 관리했다. 2013년부터 2017년 동안 판사 31명의 이름이 올랐다. 실제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판사들은 인사이동 시 불이익을 받았다. 특히 ‘원세훈 1심’ 선고 결과를 비판한 김동진 판사는 5년 연속 ‘물의 야기 법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을 주시했다.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사건이라 여겨서다. 2013년 1심 당시 이범균 부장판사는 원 전 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김동진 판사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비판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김 부장판사 몰래 정신감정을 의뢰해 허위 정보로 조울증 소견을 받아내는 일까지 벌였다. 세월호 특별법 관련 글을 쓴 문유석 부장판사 또한 블랙리스트에 올라 부당 인사 조치를 당했다. 법원행정처는 해당 기고에 대해 적시하며 문 부장판사가 ‘공명심이 커 행정법원 재판을 맡길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이후 문 부장판사는 희망 임지에 부임하지 못했다.

언론에 대한 생각도 많아졌겠다.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국민이 이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할 거라는 그들의 오만함이었다. 1차 조사 보고서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인데, 이걸 왜곡했다. 50쪽이 넘는 문건은 아무도 안 읽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두 번째는 ‘이렇게 해서 실제 사안이 유야무야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와 맞서 싸우지 않으면, 실제로 사건의 진실이 덮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진실은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다. 제가 판사로 재판할 때는 법정에서 증인을 열심히 신문하고 증거도 꼼꼼히 보면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믿었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한다고 반드시 진실이 밝혀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책임감을 더 무겁게 느꼈다. 나치가 유대인 등을 가뒀던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가면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노동이 당신을 자유케 하리라.’ 실제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의 본질을 남들이 알지 못하게 현혹하는 구절이다. 언어를 상황에 맞지 않게 사용함으로써 국민을 현혹시키는.

일부 고위 법관과 언론이 ‘사법부 독립’과 ‘사법권 독립’을 교묘하게 섞는 점도 지적했다.

대표적인 언어 오염 사례다. 법조인들이 헌법 공부하면서 보는 어떤 교과서에도 ‘사법부 독립’이라는 말은 안 나온다. ‘사법권 독립’이라고 쓴다. 사법권 독립이라는 용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래야 가치의 본질이 재판 독립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사법권은 재판권이다. 그런데 사법부 독립이라고 쓰면 사법부라는 위계 조직에 불가침의 특권을 부여하는 것처럼 오독하게 만든다. 핵심은 재판 독립이라는 걸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재판 독립을 침해한 사람, 그 사람이 사법부 조직 내에 있건 밖에 있건 책임을 묻고 사법권 독립이라는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는 점을 드러낼 수 있다.

사법부 독립이라는 잘못된 용어를 쓰면 마치 ‘사법부 내에 있는 사람은 사법권 독립을 침해했어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잘못 읽힐 수 있다. 재판권 독립이 왜 중요한지는, 본인이 재판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면 된다. 법정에서 자기가 열심히 눈앞에 보이는 판사한테 이야기하는데, 다른 판사가 뒤에서 문건이나 이메일·전화를 건네 재판에 영향을 준다면 이해할 수 있겠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잘못된 논리인 걸 알 수 있는데, 잘못된 언어를 써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마찬가지로 ‘삼권 분리’가 아니라 ‘삼권분립’이 맞고, ‘법원주의’가 아니라 ‘법치주의’가 맞다.

지난 2년 동안 조직을 지켜야 한다는 현실론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탄희의 원칙이 정말 ‘현실’과 부딪치는 것일까.

일단 어느 정도 사실관계가 드러난 상황에서, 어떤 태도가 조직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사법농단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이라는 엄격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사법부라는 조직에 도움이 될까, 아니면 ‘그 정도는 별거 아니다’라는 생각이 도움이 될까? 이렇게 보면 ‘조직 보위’ 논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후자는 조직에 도움이 안 되니까. 사법부라는 조직은 재판 기관들의 연합체다. 3000명의 판사가 이루는 3000개의 사법부다. 군대나 대기업이 아니다. 개별 재판 기관이 모였기에, 좋은 재판 기관이 많은 사법부가 좋은 사법부라고 생각한다. 전체로서 사법부의 권위가 높아야 좋은 사법부라는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

물론 일선 판사 사이에서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에 대한 탄핵을 촉구한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자정 목소리도 있었다.

지난해 11월13일 대구지법 안동지원 소속 판사 6명 전원이 낸 목소리였다. (당시 사법농단 관련 현직 법관들이 드러나자 이들에 대한) 국회의 탄핵 절차 개시를 촉구한다며 전국법관대표회의 결의안으로 발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사법농단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정직한 판사들이 다수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그 판사들은, 정무적 판단을 일삼는 행정처 판사들과 대조적으로, 사안의 본질만 봤다. 정무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법관 탄핵’을 굉장히 자극적인 요소로 받아들인다. 당시 어떤 일간지에서도 법관대표회의의 탄핵 결의에 대해 ‘혁명을 하자는 것이냐’라는 제목을 뽑았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미국은 법관 탄핵 소추가 15번 일어났는데, 그럼 미국에서 혁명이 15번 일어났나? 법관 탄핵은 넓은 의미에서 징계에 불과하다. 정무와 무관한 보통의 판사들은 이 사안 자체가 헌법이 보장한 재판의 독립 가치를 침해했다고 봤다. 또한 법관 탄핵은 헌법과 법률에 정해져 있는 절차다. 그러니 법관 탄핵을 검토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상식적인 생각에 기초해 발언했다. 이게 어떻게 보면 판사들의 힘일 수도 있다.

 

ⓒ연합뉴스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1월24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농단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법관 탄핵이 현재 국회에서 지지부진하다.

법관 탄핵에는 시효가 없다. 물론 시간이 지나 법관이 아니게 된 이들이 생기겠지만, 한 명만 탄핵이 되어도 엄청난 일이 된다. 끈질기고 성실하게 하면 된다. 하나의 사건이 법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서기호 판사 재임용 탈락 사건’에 비유한다. 이 사건으로 판사 사회에서 ‘재임용 포비아’가 생겼다. 평범한 판사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할 수 있구나 하는 학습 효과를 안겨줬다. 이후 판사들이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게 되었다. 그와 반대로 판사 탄핵은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시간이 좀 지연되어도 꼭 법관 탄핵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판사들이 법원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재판을 해서 존경받는 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현재 대법원의 리더십은 어떻게 보나. 법관 징계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등 자체 개혁이 잘 이뤄지는지 의문이다.

지난해 5월에 김명수 대법원장이 (비위 법관들에 대한) 징계를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도 지난 1월 취임하면서 과거와 확실하게 단절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검찰에서 비위 사실을 통보한 3월 초 이후 신속하게 해당 법관들에 대한 징계가 처리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달 이상 시간을 끌었다.

또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법관 임용제도를 포함한 제도 개선을 논의할 개혁 기구를 만들겠다고 했다. 9개월 가까이 지났는데도, 아직 기구가 꾸려졌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다. 법관 임용은 정말 중요한 제도 개혁이다. 2026년부터는 10년 정도 변호사 경력을 가진 사람만 판사로 임용된다. ‘어떤 사람이 판사가 되느냐’는 새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그걸 논의하는 기구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아무 진척이 없다.

지난해 말에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행정회의’를 만든다고 했다. 법원행정처를 대체하는 기구로, 법관이 아닌 이들도 다수 들어갈 예정이었다. 지금까지도 소식이 없다. 고위 공직자는 부작위가 곧 작위가 되는 자리다. 즉, 안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행동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대법원 리더십의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게 많다.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다.

사법 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감당해야 할 고단함도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기대를 할 때 누구한테 무엇을 기대할지 잘 구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법원의 역할과 국회의 역할도 구별해야 한다. 국회에 기대할 내용을 대법원에 기대할 필요도 없다. 특히 제도 설계는 국회의 의무이자 권한이다. 우리가 사법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이지 논의할 때 (당사자인) 법원 의견에 너무 귀속될 필요는 없다. 어떤 분이 ‘판사 수 늘리는 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찬성한다’고 답했다. 그와 함께 ‘(그 질문을 당사자인) 판사들에겐 하지 않으면 좋겠다’라고도 말했다. 법원 개혁 문제를 판사에게 미루지 않으면 좋겠다. 판사들의 이해와 충돌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누가 자기 재판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걸 달가워할까. 더 이상 검사들한테 검찰 개혁안을 만들어오라고 하지는 않으면서, 판사들한테는 개혁안을 만들어오라는 사람이 아직 많다. 그런 태도를 버려야 된다. 그래야 ‘법원행정처 탈(脫)판사화’나 재판 투명화를 이룰 수 있다.

‘끈질기고 성실하게 사법 개혁 이슈를 계속해서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희망은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을 버리고 살 수는 없다.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지식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냉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민은 직관적으로 사법농단의 본질을 알고, 절대로 잊지 않는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잊는다고 푸념하는데 그렇지 않다. 잊는 게 아니고 삶이 고단하고 신경 쓸 게 많아서 미뤄두는 것뿐이다. 특히 잘못한 사람들이 언어를 교묘하게 써 말문이 막히게 만들어서 그렇지, 국민의 분노나 깨달음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그러니 법원 전체를 매도하기보다는, 개혁적인 판사들과 내부 목소리를 구분해서 봐주면 좋겠다. 정확히 비판하고, 애쓰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자.

그런 의미에서 법원에 남아 역할을 계속 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판사는 쉽게 말해 심판이다. 법원 개혁 관련 활동을 하면서 점점 심판이라는 위치에서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일을 촉발시킨 사람으로서, 바람직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서 필요한 활동과 역할을 2년 동안 열심히 했다. 점점 시간이 길어질수록 법원에 남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꽤 오래 전부터 했다. 누구보다도 재판하기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가슴이 쓰린 순간도 있었지만, 판사는 고위 공직자이기에 본업 특히 자기 직무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특별한 상황에 처해서 특별한 역할을 하게 됐지만 그걸로 한국 사회에 잘 쓰였다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제가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법원 개혁을 위해 법원에 남아 있으면, 아마 더 이상 제 모습이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 같다. 하루라도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도 없고, 과거에 박제돼 있을 수도 없다. 중요한 건 현재와 미래다. 제 본성이 어디로 가겠나(웃음). 새 직업 속에서 또 새롭게 기여할 방법을 찾아보겠다.

기자명 김은지·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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