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갈등의 원인 제공국은 미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이란 핵 합의’를 ‘나쁜 딜(deal)’이라며,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유럽 우방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파기했다. 또한 이란에 재협상을 요구했다. 이란은 재협상보다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감수하는 쪽을 선택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합의 파기에 비판적인 유럽연합(EU) 측의 구명줄을 기대해왔다. 이란은 EU 가운데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이 미국의 제재를 우회해 대(對)이란 무역을 가능하도록 구축해놓은 인스텍스(Instex)라는 국제결제 시스템 덕분에 다소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이란은 오는 7월 초까지 자국의 경제 고립을 해소할 방안을 강구해줄 것을 국제사회에 요구하고 있다. 여의치 않으면, 이란 핵 합의 이후 자제해온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은 핵 합의를 파기한 뒤 이란과 원유 거래를 하는 나라까지 제재하는 조치를 시행했으나 한국, 중국, 일본 등 8개국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한 바 있다. 지난 5월에는 8개국에 대해서도 이란과 원유 거래를 금지해버렸다.
원유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가 연간 500억 달러(총수출액의 절반 정도)에 이르는 이란에게는 치명적 조치다. 실제로 이란의 경제성장률은 2016년 13.4%에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3.8%로 폭락했다. 미국의 경제제재가 본격화된 지난해에는 -1.5%, 올해는 -3.6%로, 경제 규모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이에 대해 CNN은 “미국이 북한판 ‘최대 압박과 관여’ 전술을 이란에 적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정치학자인 비핀 나랑 교수는 트위터에서 “화염과 분노의 페르시아판”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8월, 북한에 대해 “더 이상 세계를 위협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전 세계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라고 위협한 바 있다.
이란 측은 요지부동이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우리의 선택은 오직 저항뿐이다”라고 선언했다. 중부 나탄즈 핵시설에서의 저농축 우라늄 생산 속도를 종전보다 4배나 높였다. 미국이 파기한 핵 합의에 따르면, 이란이 생산하는 원자력 연료의 우라늄 농도는 3.67% 이하로 제한되어 있다. 연료의 우라늄 농도가 3.67%라면, 원자력 전기를 생산하는 데는 유효하지만 핵무기를 만들 수는 없다. 핵무기에 사용하려면 연료의 우라늄 농도가 90%는 되어야 한다. 이란 정부가 우라늄 생산 속도를 높였다고 그 농도까지 높인 것은 아니다. 5월 말 현재까지는 우라늄 농도를 이전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이 빨라지는 만큼 우라늄 비축량은 늘어난다. 미국과의 긴장 수준을 높이면서도 공격의 빌미는 주지 않으려는 궁여지책이다.
이란 배후 의심되는 군사적 공격들
지난 5월12일, 아랍에미리트(UAE) 앞바다인 오만해(海)를 지나던 유조선 4척이 ‘누군가’에게 로켓으로 피격당했다. 이란은 공식적으로 자국은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중동의 우방국가(사우디아라비아 등)들은 이란의 소행으로 본다. 마이클 길데이 미국 합동참모본부 작전국장은 5월24일 기자들에게 “유조선을 겨냥한 로켓 발사의 책임이 이란 혁명수비대에 있다고 상당히 확신한다”라며 이란을 지목했다. 당시 로켓포 공격으로 인명 피해나 기름 유출은 없었다. 미국의 이란 원유 수출 전면 금지가 발효된 직후에 유조선들이 피격당했다는 점에서 ‘이란 배후론’이 나름의 설득력을 얻고 있다. 로켓 공격 이틀 뒤에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이른바 ‘그린존(정부 청사와 미국 대사관 등 외교 관련 건물들이 밀집)’에 로켓포 한 발이 떨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송유관 두 곳이 예멘 반군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예멘 반군은 이란의 지원을 업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송유관은, 현재 중동산 원유의 해상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에 의해 봉쇄될 경우 이를 육로로 대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략적 가치가 엄청난 시설이다.
이처럼 이란의 배후가 의심되는 군사적 공격이 발생하자, 미국은 5월 중순 페르시아만에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 전단, B-52 전략폭격기, 샌안토니오급 수송 상륙함, 패트리엇 지대공 미사일 포대 등을 급파했다. 5월17~18일에는 아라비아해에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벌이기도 했다. 5월25일 미국 국방부가 이란의 위협에 맞서 추가 병력 1500명과 전투기를 중동에 급파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미국은 국제 테러집단인 이슬람국가(IS) 퇴치 명목으로 미군 병력을 이라크에 5200여 명, 시리아에 2000여 명 주둔시키고 있다. 미국은 추가 파병을 ‘방어적 목적’이라고 설명했지만, 화들짝 놀란 미국 의회는 ‘이란과의 전쟁에 대비한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분위기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 7000만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정밀유도 병기(전파·음파·광파 등을 통해 목표 명중률을 대폭 강화한 미사일) 판매를 승인한 바 있다.
그렇다면 실제 전쟁 가능성은? 트럼프 대통령은 1500명 추가 파병을 언급하면서도 거듭 “이란이 미국과 싸우길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긴장 수위를 낮췄다. 마지드 타크트 라반치 유엔 주재 이란 대사도 “이란은 미국은 물론 어느 나라와도 전쟁을 하고 싶지 않다”라고 공언했다.
페르시아만의 군사적 긴장이 계속 고조될 경우 우발적 사고 혹은 상호 오판의 결과로 대규모 군사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심지어 이란 핵 합의 타결로 양국 간의 관계가 보기 드물게 우호적이던 2016년에도, 이란 혁명수비대가 2척의 미국 해군 특전사 함정을 나포하면서 페르시아만에서 긴장이 치솟은 바 있다. 당시에는 협상으로 15시간 만에 나포 함정들이 풀려났다. 지금처럼 양국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비슷한 사고가 또다시 벌어진다면 전면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 레이 메이버스 전 미국 해군장관 겸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가 CNN에 “지금은 미국이 나서서 대이란 무력 충돌을 야기하지 않겠지만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상호 오판의 가능성은 커지고, 사태는 통제 불능 사태로 빠져들 것이다. 지금 미국은 지난해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할 때보다 더 이란과 전쟁 상황에 상당히 근접해 있다”라고 지적한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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