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지었다는 대저택에는 다리미로 주름 한 점 없이 촤악 편 듯, 꼬인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박 사장과 연교, 그들의 자식이 산다. 영화 〈기생충〉은 그 집으로 백수 가족인 기택과 충숙, 기우와 기정이 각각 운전기사, 가사도우미, 영어 과외교사, 미술치료사로 일하러 오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박 사장네는 친절한 얼굴로 시도 때도 없이 시간외 노동을 시키고, 노동계약의 내용과 다른 업무까지 시키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사람을 내보낸다. 이 백수 가족은 과연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윤현지


개인의 집에서 일하는 요리사·가사도우미·세탁부·개인 비서·집사·운전기사·정원관리사·가정교사 등 ‘가사사용인’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남녀고용평등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같은 노동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 정부에 ‘가사노동자를 위한 괜찮은 일자리 협약(가사노동 협약)’을 비준하라고 권고했다. 가사노동 협약은 가사사용인의 경우에도 최소한 하루 이상의 정기휴일 보장, 산재 발생 시 보상 절차, 노동시간과 임금을 적시한 계약서 작성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최저임금과 관련해서도 “가내노동을 위한 최저임금 수준은 국가의 법과 관행에 일치하도록 설정돼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비공식 부문 가사노동자의 노동권 및 사회보장권 보호를 위한 권고’를 통해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에 ‘가사사용인’을 제외시키고 있는 문구를 삭제하고, 근로기준법 적용이 어려운 노동 특성을 고려하여 입법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모두 ‘권고’에 그쳤다.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는 가사사용인을 보호하는 노동법이 없다.

박 사장 집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는 기택,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충숙은 노동법 적용을 받지 못한다.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을 제공하지만, 박 사장네 ‘사생활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이들은 사각지대에 놓인다. 만약 기택과 충숙이 실제로 ‘더 케어’라는 회사에 소속되어 그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으며 박 사장 집에서 일하는 경우라면 어땠을까? 또는 기택과 충숙이 처음에 박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에 입사했다가 박 사장 개인 집으로 보내져 일하면서 임금은 박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로부터 받고 있다면? 운전기사나 가사도우미라 해도 일률적으로 가사사용인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업무 내용과 종속관계를 통해 노동법을 적용받는 노동자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먼저 박 사장 집에서 일을 시작한 기우와 기정은 영어 과외교사와 미술치료사이다(이들이 학력이나 경력 등을 속였다는 점은 논외로 하자). 이들은 과연 노동법 적용을 받는 ‘노동자’일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 함은 계약 형식(명칭이 프리랜서든 도급계약이든)이 아니라 그 실질에서 사용자와 사용 종속관계인지로 판단한다.

법원, 기우·기정을 근로자로 판단 가능

법원의 판례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기우와 기정의 업무 내용을 박 사장(또는 연교)이 정하고 업무 수행 과정에서 지휘·감독을 하는지, 박 사장(또는 연교)이 노동시간과 근무 장소를 지정하면 기우와 기정이 이에 따라야 하는지, 기우와 기정이 스스로 비품·원자재나 작업 도구를 소유하는지, 기우와 기정이 다른 제3자를 고용해 이 업무를 대행하게 해서 자신의 사업을 할 수 있는지, 지불받는 돈의 성격이 노동 자체에 대한 것인지, 노동 제공 관계가 어느 정도 계속되고 기우와 기정이 박 사장(연교)에게 어느 정도 전속되어 있는지 등 여러 경제적·사회적 조건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법원이라면 기우와 기정이 노동법을 적용받는 근로자라고 판단했을까? 그렇게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주 4회 출근하고 주말 파티에도 참석해야 하는 기정의 노동시간을 계산해 주 15시간을 넘겼다면 박 사장네는 기정에게 주휴수당과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발생한다. 

기자명 김민아 (노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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