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은 조선업 구조조정의 한가운데에 있다. 산업은행(산은)은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현중)에 매각하는 ‘조선업 빅딜’에 합의했다. 최근 논의는 기업결합심사, 물적분할 등 인수합병 이슈에 소용돌이처럼 빨려들어가 버렸다. 산은 이동걸 회장은 “조선산업 재편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지금의 적기를 놓치면 우리 조선업도 일본처럼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라고 말했다. 빅딜은 조선업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산업 구조조정의 일환인데, 정작 빠져 있는 것은 ‘조선업 구조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연합뉴스2018년 8월20일 현대중공업 해양공장에서 나스르(NASR) 원유 생산설비가 운송선에 실려 출항하고 있다.


산업 구조조정 문제는 혁신과 맞물린다. 혁신은 거칠게 보면 제품 혁신과 생산 혁신이다. 제품 혁신은 세상에 없는 제품을 선점하여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활동이다. 상품기획과 연구개발 단계에 힘이 쏠린다. 생산 혁신은 동일한 제품을 싸게, 불량 없이 좋은 품질로, 적기에 만들어내는 혁신이다. 전통적인 제조업 혁신은 생산 혁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최근 ‘탈추격’이나 ‘기본설계 역량 확보’ 등 제조업의 고도화와 진화가 대두되는 건 한국 제조업이 선진국의 질문 앞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생산 혁신으로 ‘추격’하는 것을 넘어 제품 혁신으로 ‘탈추격’해야 한다는 의미다. 혁신 관점에서 2014~2016년 조선업 위기는 ‘해양플랜트’라는 탈추격 제품 혁신을 시도하다 발생한 진통이었고, 한국 조선업의 성공 공식이던 생산 혁신이 안 먹힐 수 있다는 징후였다.

‘기자재 생태계’ 유지·발전 대책 필요

그렇다면 조선업 구조조정은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다섯 개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자재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기자재는 조선업의 뿌리 산업이다. 제품 혁신 관점에서 LNG선이나 여전히 미래 먹거리인 해양플랜트에 대응할 수 있는 기자재 업체들을 잘 육성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기자재 업체들이 장기적으로 판매선을 글로벌 시장까지 확장해 제너럴일렉트릭(GE)이나 보쉬 같은 글로벌 업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LNG선 관련 기술에는 미개척 영역이 많고, 해양플랜트 기자재의 국산화율은 20%에 그친다. 현중은 선박 엔진 같은 기자재를 자체 사업부에서 생산하고 대우조선은 외부에서 구매한다. 가삼현 현중 부회장은 기자재 업체 4분의 3 정도를 두 회사가 공유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지만, 나머지 4분의 1만 납품선에서 제외되어도 경남 경제에 치명적 영향을 준다. 북유럽 사례를 볼 때 조선소가 문을 닫는 순간에도 영위해야 할 미래 산업이 조선해양 기자재 부문이다. 기자재 생태계를 어떻게 유지·발전시킬지 대책이 요원한 상황이다.

둘째, 중소 조선사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성동조선해양은 법정관리를 받고 있다. STX조선해양은 법정관리는 졸업했지만 여전히 회생 과정에 있다. 중소 조선사들은, 정부가 ‘선수금 보증(RG)’을 제공하면 회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조선사는 고객으로부터 선수금을 받고 선박을 건조한다. 조선사가 선박 건조를 완료하지 못하는 경우엔 고객만 손실을 감당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이나 정부 등 제3자가 해당 고객에게 ‘사고 발생 시엔 선수금을 돌려주겠다’고 보장하는 것을 ‘선수금 보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중소 조선사들은 설비투자 부족, 인력 유출에 따른 숙련 부족으로 생산성이 높지 않다. 주력 선종은 중국과 경쟁하는 중이다. 산은이 성동조선을 삼성중공업에, 대한조선을 대우조선에 위탁 경영하게 한 방식도 실패했다. 공적자금 추가 투입도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남은 선택지는 중소 조선소 통폐합으로 연구개발 및 엔지니어링의 집적효과를 내는 것이다. 선박 경쟁력 확보 자체가 어려워지는 순간, 조선해양 기자재 중소기업의 시제품을 시험할 수 있는 신기술의 테스트베드 구실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시사IN 조남진1월8일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수빅 조선소(아래)는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셋째로, 한국에서 선박을 계속 건조할 수 있을 것인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수빅 조선소는 생산기지 이전(오프쇼어링)의 어려움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다. 한진중공업은 인건비 절감을 목표로 수빅에 진출했다. 부산의 엔지니어들이 만든 도면과 필리핀 노동자들의 저렴한 인건비로 경쟁력을 갖춘다는 계획이었다. 수빅 조선소는 한때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수주하기도 했지만 한계를 넘지 못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노사 갈등이 심하고 수주 부족으로 조업을 쉬는 기간이 많다 보니, 한국 모기업의 혁신을 수빅으로 전파하기 어려웠다. 주재원들이 기술 전수를 했지만, 필리핀 노동자들을 한국식 생산관리에 적응시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간한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와 동아시아의 일자리 변동〉의 핵심 주장은 생산기지 이전에서 성공하려면, 모기업이 생산하면서 (이에 따른) 작업장 혁신을 해외 생산기지로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엔지니어들의 숙련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자동화와 생산기술 향상으로 생산의 중심이 생산직 노동자로부터 엔지니어들에게 넘어간 지 오래다. 현중 권오갑 부회장은 5000명 규모의 판교 연구개발(R&D) 센터를 세우겠다고 밝혔다. ‘명문대’ 출신 엔지니어들은 수도권 생활을 원한다. 연구개발과 설계 등 구상 기능은 수도권으로, 공장은 지방으로 분리되는 것이 제조업의 추세다. 그런데 엔지니어 연구자 베일리와 레오나르디에 따르면, 이는 ‘산업의 특성’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토목 설계의 경우, 현장과 엔지니어가 서로 얼굴을 맞대어야 혁신이 이루어진다. 조선업 설계도 마찬가지다. 설계와 현장의 긴밀한 연결은 3D 시뮬레이션으로 대체될 수 없다. 기술경영학자 마이크 홉데이는, 주문 제작 시스템인 데다 복잡한 부품 생태계를 가진 조선업은 생산과정 속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상호 학습이 혁신의 핵심이라고 역설한다. 그래서 수도권 근무만 선호하는 명문대 엔지니어들보다 부산·울산·경남(부·울·경)에서 나고 자라 지역 대학을 나온 엔지니어들을 위한 정책이 더 시급하다. 명문대 출신들이 떠난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현장을 지킨 엔지니어들이다. 지자체와 정부 부처 모두 이들의 경험을 진화시킬 학습 인프라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부·울·경을 광역급행철도나 도시철도로 연결하자고 제안한다. 옥포조선소 엔지니어가 부산의 대학원을 다니기 위해 직접 운전하며 거가대교 통행료 1만원(편도)을 매일 내는 대신, 2000원으로 탑승한 전철에서 논문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지역 균형개발의 시작이다.

 

 

 

 

ⓒ시사IN 신선영조선업 구조조정은 본격적으로 처음 시작하는 산업 구조조정이다. 위는 울산 현대중공업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

 


마지막으로, 조선업 위기와 탈산업화의 흐름에서 밀려나는 산업역군 생산직 노동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2016년 이후 5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고용위기지구로 선포되고, 울산·거제·통영 등지에는 ‘조선업 희망센터’ 등 재취업 지원센터가 들어섰지만 기존 직무와 연계가 부족하다. 숙련 기술이 있는 노동자들은 울산의 석유화학공단이나 수도권의 발전설비 현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특수한 기술 없이 ‘물량팀’으로 동원된 노동자들은 길을 잃었다. 영화 〈땐뽀걸즈〉에서 횟집을 하겠다고 서울로 간 해직자 아빠가 이런 경우다. 〈제인스빌 이야기〉에 등장하는 미국 GM 자동차 공장 해직자들은 전문대에 가서 인사관리 등을 배운다. 배우는 것에는 익숙지 않고, 행정직이나 경영지원직에는 충분한 일자리가 없어서 좌절을 맛보기 다반사였다.

재교육과 재취업 체계는 ‘숙련 체제’를 총체적으로 정립해야 유효하다. 박정희 정권 시절 상공부와 과학기술처는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연구개발직·기술직·기능직으로 나눠 노동 수급을 관리했다. 필요 인원을 추계하고 상황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했다. 공과대학·전문대·기계공고의 정원 및 자격 능력별 인원이 산정되고, 기업들은 직업훈련소 양성 인원을 짰다. 여전히 독일에서는 제조업체들의 필요를 검토해 만든 국가 표준으로 엔지니어부터 생산직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숙련과 인력 수급을 관리한다. 기업이 도산해도 노동자 개인의 숙련이 인증되면 다른 회사로 쉽게 수평 이동할 수 있다. 생산직들이 공학사를 취득하여 관리직으로 수직 이동하기도 한다. 50%로 높아진 독일의 대학진학률은 4년제 대학에 진학한 생산직 노동자 덕택이다. 노동자들이 숙련과 학습을 병행하면서 경력을 쌓아가며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숙련을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개발독재 시절의 망령만은 아니다.

조선업 구조조정은 본격적으로 처음 시작하는 산업 구조조정이다. 거제가 흔들리면 부·울·경이 흔들리고, 울산이 흔들리면 대한민국 경제 전체에 위기가 온다.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고민해야 할 것들은 지역 균형발전과 혁신성장 외에도 산업·교육·노동 정책의 재통합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다. 진지한 논의 테이블을 기다린다.

 

기자명 양승훈 (경남대 교수·〈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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