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부는 6월7일, ‘5월의 일자리 증감’ 수치(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를 공개했다. 비농업 부문(제조업, 서비스업 등)에서 새로 창출된 일자리가 7만5000개였다. 일자리 전망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경제 전문가들의 당초 전망치인 18만 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4월의 일자리 증감 수치 22만4000개에 비하면 참담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날 뉴욕 증시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오히려 0.7% 올랐다. 정보통신 기술주들이 집중돼 있는 나스닥 종합지수도 0.5% 상승했다. 일자리 전망 악화는 통상 경기 둔화의 징조로 해석된다. 금융시장에서는 주가의 동반 하락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히려 주가가 올랐다. 이유는?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 덕분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가 금리 인하를 위한 본격 채비에 나섰기 때문이다. 연준은 앞으로의 경기 전망이 나빠지면 금리를 내리기 마련이다. 금리가 내리면 주가는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시장에 민감한 투자자들이 일자리 전망 악화 소식에 대해 주식 매도가 아니라 매수로 대응한 이유다.
 

ⓒAP Photo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6월4일 “경기 확장을 위해 적절한 대응을 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넷웨스트 증권사의 수석 경제학자인 미셀 기라드는 〈뉴욕타임스〉에 “연준 이사들이 6월 회동에서 금리 인하를 위한 방아쇠를 당기겠다는 신호를 보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캐나다 굴지의 투자금융사인 BMO 캐피털마켓의 브라이언 벨스키 수석 투자가는 “요즘의 투자자들은 금리 인하를 예상해 주식을 사들이는 완전히 다른 세대”라고 CNN에서 주장했다. 6월12일 현재 연준의 기준금리는 2.25~2.5%다. 2014년 0.25%를 바닥으로 지난해 연말까지 모두 9차례 인상된 결과다.

현재 미국 경제는 실업률이 50년 만에 최저인 3.6%에 달할 정도로 잘나간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 10명 중 7명이 미국 경제를 호황으로 평가한다. 지난 5월의 ‘일자리 증가 폭’이 예상보다 부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자리 자체는 104개월(8년8개월)째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라면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연준이 오히려 금리 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이 도발한 무역전쟁으로 불확실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산 수입품의 거의 절반에 대해 25%의 고율 관세를 물리고 있다. 이에 반발한 중국 역시 미국산 제품의 관세율을 더 높이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2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무역협상 타협에 실패할 경우 추가로 30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사실상 중국산 수입품 전체에 높은 관세를 물리겠다는 이야기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지난 5월의 일자리 통계수치가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 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지금처럼 미·중 무역전쟁이 지속되면, 기업들이 관세 인상에 따른 부담을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덜어내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줄어들면 기업의 수익 전망 역시 악화되면서 고용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스위스 굴지의 다국적 투자은행 UBS는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가 지속될 경우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 경제가 침체기로 접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7월부터 금리 인하 나설 전망

이런 경기 침체 경고음을 연준이 모를 리 없다. 연준은 5월까지만 해도 ‘올해 금리 인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최근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가장 확실한 신호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6월4일 시카고 연준 이사회에서 한 발언이다. “지금의 무역 갈등이 언제 어떤 식으로 해결될지는 알 수 없다. 무역 갈등이 앞으로 미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연준은) 기존의 경기 확장을 지속하기 위해 적절한 대응을 취할 것이다.”

이 발언에서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라는 직접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은 이 발언의 핵심을 금리 인하 방침이라고 본다. 실제로 미국 금융산업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는 파월 의장의 발언 이후, 금리 인하 자체는 확정된 사실로 본다.

 

 

 

ⓒ연합뉴스2017년 1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양국 기업 대표들이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경제 분석가들 대부분은 연준이 6월18~19일로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인 7월부터 금리 인하에 나서리라 본다. 6월 말로 예정된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의 결과를 참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자리 전망이 악화되고 물가인상률 역시 저조한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미·중 무역전쟁이 어떻게 전개되든 금리 인하를 먼저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뉴욕 소재 민간 투자상담사인 매크로폴리시 퍼스펙티브의 창업자 줄리아 코로나도 사장은 〈블룸버그 뉴스〉에 “현재의 경제 상황이 결코 평온한 분위기가 아니”라면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7월, 9월에 각각 0.25%포인트씩 내릴 것으로 예측했다. 영국의 다국적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의 조너선 밀러 이코노미스트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심지어 연준이 시장에 ‘앞으로 금리가 인하된다’는 확실한 신호를 주기 위해 7월에 파격적인 0.5%포인트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본다. 이어서 2개월 뒤인 9월에 다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더 내린다는 것이다. 뉴욕 선물시장에서는 연준의 7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83%까지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연준은 향후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경우 ‘중앙은행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남길까 봐 고심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연준에 금리 인하를 공개 압박해왔다. 금리 인하 효과로 경기가 호전되면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호재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이 금리 인하 방침을 시사한 뒤인 6월10일에도 CNBC에 출연해 연준을 질타했다. “그동안 연준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렸다.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연준은 “우리의 최우선 임무는 최대의 고용과 물가 안정을 지속시키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라는 원론적 방침이다. 하지만 조만간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경우 경기지표와 상관없이 트럼프 대통령 입김의 영향을 받았다는 논란이 일 듯하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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