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은 일주일 만에 뒤집혔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ㄱ씨가 변호사와 함께 출석했다는 점이다. ㄱ씨는 변호사의 눈치를 보며 진술을 번복했다. 경찰의 신문이 끝난 뒤 조서에 적힌 진술을 확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그는 진술을 고쳐 썼다. ‘김한빈이 YG엔터테인먼트에서 마약 검사를 했는데’라고 말했던 구절 아래에 ‘마약 검사라는 건 정확하지 않습니다’라고 적어 두루뭉술하게 바꾸는 식이었다.

ㄱ씨는 2016년 8월22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붙잡힌 마약 판매책이 고객 명단을 자백했는데 거기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체포된 날 그는 경기 용인동부경찰서에서 1·2차 피의자 신문을 받았다. 조사에서 그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경찰이 자신의 핸드폰에서 발견한 카카오톡(카톡) 메시지도 부인하지 않았다. 6월12일 〈디스패치〉가 공개한 카톡 내용에 따르면 대화 상대는 그에게 “나는 그거 평생 하고 싶다. 센 거야?”라고 묻는다. ㄱ씨가 “우리나라에서 엘(LSD)은 일등급 마약”이라고 답하자 상대는 “그거(등급) 말고 약의 세기”라고 재차 묻는다. 그는 “약 자체도 세다. 엘 하고 나면 떨(대마초)은 우스워 보인다”라고 말한다.

ⓒ연합뉴스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 아이콘의 리더 비아이.

ㄱ씨의 카톡 상대는 아이돌 그룹 ‘아이콘’의 리더 비아이(본명 김한빈)였다. 비아이는 열다섯 살이던 2011년 1월 YG 연습생으로 발탁됐고, 2015년 9월 아이돌 그룹 아이콘 멤버로 정식 데뷔했다. 비아이가 ㄱ씨에게 연락해 ‘엘’을 찾은 건 데뷔한 지 반년이 조금 지난 2016년 4월 무렵이었다. 그는 “그러다 코카인까지 가는 거야. 그러면 진짜 혼난다”라고 재차 경고하지만 비아이는 “(코카인) 안 해. 난 천재 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며 LSD의 ‘효과’에 대해 계속 묻는다. “근데 엘 하면 그런 거 돼? 그래픽처럼 보이고 환각 보이고 다 돼?”

LSD는 수십~수백 마이크로그램(100만 분의 1g)만으로도 강한 환각을 일으킨다. 코로 흡입하는 코카인이나 주사를 놓아야 하는 필로폰에 비해 복용 방법은 간단하지만, 환각 효과는 강하다. 비아이는 LSD를 한 번에 많이 사놓을지 고민하면서 ㄱ씨에게 “대량 구매는 디씨(할인) 없냐”라고 묻기도 했다. ㄱ씨는 “처음이니까 조금 사라”고 했지만 비아이는 “나는 그런 거 없다. 처음부터 가는 거다. 남자는 그래야 한다”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2016년 5월3일 ㄱ씨는 마약 판매책으로부터 산 LSD 10장을 비아이에게 전달했다. 비아이는 숙소 앞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찾아 그에게 건넸다. 2016년 6월1일, ㄱ씨는 YG의 또 다른 아이돌 그룹 ‘위너’ 멤버 이승훈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씨는 ㄱ씨에게 “비아이와 함께 대마초를 피웠느냐”라고 물었다. 이씨는 비아이가 YG 자체 마약 검사에서 걸렸다며 할 이야기가 있으니 YG 사옥 근처에서 만나자고 했다. 약속한 장소에 나온 사람은 이씨가 아니라 YG 관계자였다. 그는 ㄱ씨에게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내게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남겼다.

양현석 “제기된 의혹은 사실 아니다”

2016년 8월22일, ‘무슨 일’이 생겼다. ㄱ씨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고, 두 차례에 걸친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비아이의 실명까지 거론됐다. 그는 김한빈이라는 사람과 함께 대마초를 피웠고, 김한빈씨에게 LSD를 교부했음을 인정했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까지 특정해 진술했다. 불구속 입건으로 풀려난 ㄱ씨는 YG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YG 관계자는 그를 차에 태워 YG 사옥으로 데려갔다.

2016년 8월23일 양현석 YG 대표의 집무실에 들어선 그는 휴대전화를 빼앗겼다. 그는 양 대표가 “변호사를 붙여주고 처벌받지 않게 해줄 테니 비아이와 관련된 진술을 번복하라”고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어차피 한빈이는 걸려도 링거 맞으면 약 성분 다 빠진다. 내 새끼가 경찰서 가는 것 자체가 싫다.” ㄱ씨는 “양 대표가 ‘너 연예계에서 망하게 하는 건 일도 아니다’라고 했다”라고 주장했다. 양현석 전 대표는 지난 6월20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그간 제기된 의혹들은 제보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연합뉴스6월27일 ‘외국인 투자자를 상대로 한 성접대 의혹’과 관련해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는 양현석 전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

2016년 8월30일, ㄱ씨는 경찰에서 3차 피의자 신문을 받았다. YG 사옥에서 양 대표를 만난 지 꼭 일주일 만이었다. 그는 경찰에서 어머니가 자신의 변호인을 선임해주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양 대표가 붙여준 변호사였다. 경찰이 “김한빈에게 마약류를 교부한 사실이 있느냐”라고 묻자, ㄱ씨는 이전 조사에서와는 달리 “없다”라고 답했다. 경찰이 지난번에 확보한 카톡 내용을 언급하며 재차 마약류를 구해준 적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그런데 안 구해줬다”라고 말했다. 그는 변호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경찰에게 “미안하다. 제 입장을 이해해달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수사는 더 진행되지 않았다. 조사 다음 날인 2016년 8월31일 경찰은 ㄱ씨의 마약 사건을 수원지방검찰청으로 넘겼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당시 수사팀이 검찰로부터 사건을 빨리 송치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사건을 송치하면서 비아이 마약 의혹을 담은 2쪽짜리 수사 보고서도 함께 보냈다.

그러나 검찰도 비아이를 조사하지 않았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해당 검사는 경찰에게 사건을 빨리 송치해달라는 요구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라고 반박했다. 경찰이 첨부했다는 비아이에 관한 보고서는 받았지만, 경찰이 비아이에 대해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검찰에서 따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경찰은 ㄱ씨에 대한 사건을 검찰로 송치한 뒤 비아이에 대한 내사를 따로 진행했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6개월 만에 끝났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이미 ㄱ씨 마약 사건과 함께 검찰로 넘겼기 때문에, 이후 검찰에서 수사를 진행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검찰이, 검찰은 경찰이 수사를 할 거라고 미루는 사이 비아이는 한 번도 조사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ㄱ씨는 2017년 9월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보호관찰 120시간 판결을 받았다.

지난 6월4일 ㄱ씨는 YG와 수사기관의 유착 관계를 조사해달라며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제보했다. 권익위는 해당 사건을 대검찰청(대검)에 넘겼고, 대검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 배당했다.

수사기관 사이 ‘네 탓’ 공방은 단순 업무 태만이었을까, YG 봐주기였을까. 검·경은 비아이의 마약 투약, YG 수사 개입 및 수사 부실 의혹을 모두 해소할 수 있을까.

YG를 이끌어온 양현석 대표 프로듀서와 동생 양민석 대표는 ‘버닝썬 사태’에 이어 비아이 마약 투약 의혹까지 불거지자 6월14일 동반 사퇴했다. 양 전 대표는 6월26일, 2014년 말레이시아 재력가인 조 로우에게 두 차례에 걸쳐 성접대를 한 의혹과 관련해 서울지방경찰청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그는 9시간에 걸친 경찰 조사에서 관련 의혹을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표는 비아이 마약 투약 의혹과 관련해서도 검찰의 소환 조사 대상에 올라 있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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