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4일 비정규직 노동자 30여 명이 서울대병원 앞마당에 모여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나도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자격으로 연대 발언을 하기 위해 참석했다. 서울대병원의 모태인 ‘대한의원’ 개원 행사에 이토 히로부미도 참석했다는데 그 대한의원 본관의 유서 깊은 시계탑 건물, 그리고 올해 3월 문을 연 최첨단의 ‘대한외래’ 입구 사이,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이 역사적 현장에서 110년째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해온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병원의 청소와 조리, 환자 이송, 설비 유지처럼 드러나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오던 이들이 땡볕 아래서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7년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먼저 찾은 외부 기관은 인천국제공항공사였다. 이곳에서 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그해 7월20일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 5000여 명 중에서 정규직이 된 이들은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의 240명밖에 없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1단계 전환 대상자인 병원 노동자들은 2018년 상반기까지 정규직 전환이 마무리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국립대병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왜 병원 노동자들은 정규직이 되어야 하며, 병원들은 왜 애써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고 있을까?

ⓒ시사IN 조남진서울대병원에서 청소 노동자가 쓰레기를 옮기고 있다. 병원 청소에는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물질과 도구를 활용하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이유는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변동 폭이 큰 노동 수요, 자체 충족할 수 없는 전문적 기술 수요 대응이라는 유연성과는 거리가 멀다. 상시 필수 업무를 좀 더 싼 임금으로 해결할 수 있기에, 노동 권익이나 안전보건 같은 각종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쓴다. 병원이라고 다를 리 없고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국립보건서비스(NHS)라는 유례없는 공공 의료보장체계를 만들어냈지만, 1980년대 보수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 작은 정부, 시장 원칙, 개인 책임을 강조했던 보수당 정부는 NHS 비용을 줄이고자 했다. 국민적 지지 때문에 전면 민영화를 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먼저 1983년 세탁·조리·청소 같은 지원 서비스에 대해 경쟁입찰을 통해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보수당은 공공서비스에서 ‘핵심’과 ‘비핵심’ 기능을 분리하고, 정부는 핵심 영역에 집중하되 나머지는 시장에 맡기면 된다고 주장했다. 경쟁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계약 조건을 통해 서비스 질을 모니터링할 수 있으며, 계약 갱신이 더 나은 생산성을 보장하는 인센티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외주화는 단순히 비용 절감만이 아니라 유연성 향상과 더불어 혁신 역량을 증가시킨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초기 연구를 보면 병원 지원 서비스의 외주화는 비용 절감에 효과가 있었다. 2010~2014년 잉글랜드 지역 병원들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청소 서비스를 외주한 경우 직영에 비해 병상당 연간 약 236파운드(약 35만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었다. 과연 이것이 말로만 듣던 시장원리의 마법이란 말인가!

슈퍼 박테리아 급증과 청소 인력 외주화

역시나, 그럴 리는 없었다. 영국 NHS는 1984년 10만여 명이던 청소 노동자 수가 2004년 무렵 5만5000명으로 감소했다. 영국 작가 폴리 토인비의 〈거세된 희망〉에는 2000년 즈음 용역업체를 통해 NHS 병원에서 환자 이송, 보조 업무를 했던 체험이 그려져 있다. 2000년에 이런 일을 통해서 저자가 받은 임금은 놀랍게도 30년 전 비슷한 일을 했을 때보다 더 낮았다.

캐나다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름다운 도시 경관으로 유명한 밴쿠버가 속한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정부 재정 절감 차원에서 2003년에 청소·세탁·급식 같은 병원 지원 서비스 외주화를 결정했다. 사실 캐나다의 공공부문은 여성 노동자의 4분의 3이 조합원일 만큼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고, 지난 30년 동안 단체교섭과 제도 개선 노력을 통해 상당히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왔다. 외주화는 이러한 성과를 무위로 만들었다. 실제로 2003년 외주화 직후 대규모 입찰을 통해 계약을 따낸 한 다국적기업은 노동자 시급을 시간당 18달러에서 9달러로 깎고, 단체협약으로 정했던 건강보험 추가 급여나 연금도 삭감했다. ‘유연한 노동’이라는 명목으로 풀타임 노동을 파트타임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외주화를 통한 비용 절감은 거창한 혁신이 아니라 단순한 셈법에서 나온 결과였다.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할 일은 똑같고, 하청업체나 파견업체의 관리수수료와 영업이익까지 챙겨야 하는데, 무슨 빼어난 혁신이 있어서 비용 절감이 가능하겠나. 노동자를 쥐어짜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물론 이런 직접비용 절감만이 외주화의 목표는 아니다. 원-하청 관계가 합리적 경제 행위자들 사이의 대등한 시장계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원청과 하청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구조는 이른바 ‘갑질’의 토양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2001~ 2008년 산재 보상 자료를 이용해, 외주화 이후 근로 환경이 악화되어 혹시 노동자의 재해율이 높아진 것은 아닌지 분석한 연구가 있다. 예상과 달리 외주화 이후 노동자의 재해율, 재해로 인한 업무 손실 일수는 미미하게 줄어들었고, 재해로 인한 평균비용도 유의미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 외주화를 실행한 곳과 직영을 유지한 병원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을 시행했다. 노동자들은 외주든 직영이든 막론하고 병원 규모 확충에 비례해 인력이 늘어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직 후에도 인력이 제대로 충원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업무량은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또한 공식적으로는 산재 발생 시 적극적으로 보고하라고 장려하지만, 외주업체 노동자의 경우 일자리 불안정성과 관리자의 압박 때문에 그러기 어렵다고 했다. 외주화 이후 산재 건수는 줄어들었지만 재해당 평균 요양 일수가 늘어난 것은 비교적 경미한 산재는 아예 보고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한 파트타임이 늘어나고 저임금 때문에 부업을 하는 노동자, 이직하는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해당 사업장에서 산재를 고려하는 것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서울대병원은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전환을 추진 중이다. 서울대병원이 노·사·전문가협의체에서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간접고용을 해야 파업이 일어나도 대체인력 투입이 가능하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또한 정권이 바뀌면 노동정책도 달라질 수 있는데 지금 직접고용을 해버리면 그때 가서 다시 외주화하기 어렵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외주화와 간접고용을 선호하는 본질적 이유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민중의 소리6월4일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서울대병원의 이러한 태도는 역설적으로 ‘그림자 노동’인 병원의 지원 서비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준다. 병원에서 환자를 직접 돌보는 의사·간호사 같은 의료 인력의 중요성이야 누구나 인정하지만, 이들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그림자 노동의 몫이다. 이를테면 수술실의 청소와 소독을 담당하고, 환자들의 항생제 내성 세균 감염을 예방하며, 주사기와 위해 폐기물을 처리하고, 당뇨나 심각한 알레르기가 있는 환자, 씹는 기능에 문제가 있는 환자, 그리고 병원 의료진과 방문객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노동자들 말이다.

청소 노동자, 조리 노동자, 전기와 설비를 담당하는 노동자, 환자를 이송하는 노동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모두 병원에서 사라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난장판이 된 수술방, 복도와 병실마다 수북이 쌓인 빈 수액병과 주사기, 피 묻은 거즈와 환자복, 더러워진 시트, 꼼짝없이 배를 곯고 있는 환자들 사이에서 역시 끼니를 거르고 미친 듯이 뛰어다닐 간호사와 의사들의 모습. 어쩐지 전쟁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렇게 극적인 모습은 아니더라도 병원의 그림자 노동, 특히 청소와 청결이 환자 안전에 중요하다는 점이 실증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병원 감염이 중요한 보건의료 이슈였다. 이는 병원 환경 청소, 손 위생, 항생제 사용 수준, 환자 특성, 병상 점유율, 병원 내 환자 이동성 등 여러 요인과 관계있는데, 언론은 특히 ‘더러운’ 병원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 이를테면 BBC는 1980~1990년대 이른바 ‘슈퍼 박테리아’로 알려진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이 급증한 시기와 많은 병원에서 청소 서비스를 외주화해 인력이 절반으로 줄어든 시기가 일치했음을 지적했다. 2007년 발표된 영국 정부의 가이드라인도 열악한 환경위생이 병원체 전파에 기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러한 우려가 일자 2008년 영국왕립간호협회는 병원 청소 업무를 다시 직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로 스코틀랜드 NHS는 병원 감염을 줄이기 위해 청소 업무 직영화를 실행에 옮겼고, 웨일스와 북아일랜드에서도 외주화를 중단했다. 그럼에도 청소 업무 외주화가 정말 병원 감염 위험을 증가시키는지에 대해서는 학술적 논쟁이 벌어졌는데, 2017년에 발표된 논문은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옥스퍼드 대학 연구팀은 2010~2014년 청소를 외주화한 51개 병원과 직영을 유지한 75개 병원의 병원 감염 MRSA 발생률, 환자가 인식한 병원의 청결도, 손 씻기 시설의 가용성을 비교했다. 그 결과 청소를 외주화한 병원의 평균 발생률은 10만 병상일(병상×일수)당 2.28건으로 직영을 유지한 병원 1.46건에 비해 약 50% 높았다. 환자들이 인식하는 병실과 화장실의 청결도 또한 비록 차이가 작기는 하지만 직영 병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고, 손 씻기 설비도 직영 병원에서 더 많았다. 병원 감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3의 요인들을 고려한 뒤에도 병원 감염 MRSA 발생률은 청소 업무를 외주화한 병원에서 유의미하게 높았다.

병원 청소에는 상당한 팀워크와 지식 필요

병원 감염 위험성을 보여주는 삽화적 사례도 있다. 2008년 8월, 캐나다 밴쿠버의 한 병원에서 클로스트리듐(Clostridium difficile)이라는 장내세균에 의한 병원 감염으로 환자 64명이 감염되고 이 중 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보건 당국의 역학조사 결과, 손 씻기 설비가 부족했을 뿐 아니라 청소업체가 계약표준을 준수할 만큼 충분한 청소 인력을 제공하지 않았고, 병원 청소의 특수성에 대한 인력 훈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결정적으로 청소 노동자들이 청소 준비 과정에서 병원 감염을 막기 위해 1대 10으로 희석해야 할 살균제를 1대 1000으로 희석해서 사용한 것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시사IN 신선영2015년 메르스 사태는 평소 보이지 않던 비정규 노동자의 존재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청소를 외주화했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외주화나 파견 노동의 경우 현장에서 고용관계와 업무 지시 관계의 복잡성으로 인해 효율적 작업이 어려워진다. 이를테면 특정 구역에서 MRSA 유행이 확인되면 즉각적인 추가 청소와 소독 업무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외주화된 경우에는 이러한 상황에 즉각 대응하기 어렵다. 병동 간호사가 외주업체 청소 노동자를 임의로 직접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이 빠듯해서 근무시간 내에 정해진 일을 마치지 못하거나, 마감을 맞추기 위해 대강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긴다. 일을 서두르다 보니 정해진 규정을 지켜서 꼼꼼히 청소하거나 본인의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도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외주 청소업체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인력 부족,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므로 이직률이 상당히 높다. 집안 청소나 숙박시설 청소와 달리, 병원 청소는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화학물질과 특별한 도구, 독특한 청소 방법을 활용해야 하며, 때로는 상당한 정도의 청소 ‘계획’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MRSA가 발견된 병실을 물걸레로 이리저리 닦아서는 안 되고, 메르스 환자가 있던 방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해서도 안 된다. 병원 청소를 하는 데에는 상당한 팀워크와 지식이 필요하고, 현장에서 동료로부터 일을 배우며 경험을 쌓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직률이 높고 팀워크가 깨지면 이런 것들이 모두 불가능해진다.

결국 청소 서비스의 외주화는 청소 노동자 자신의 고용 안정성이나 안전·보건뿐만 아니라 환자 안전이라는 병원의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건을 침식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직접비용’의 절감이 가져온 대가인 셈이다.

2015년 메르스 유행의 진앙이었던 삼성서울병원 사례를 기억할 것이다. 응급실을 통해 유행이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병원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증상 조사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환자 이송을 담당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누락되고, ‘137번 감염자’가 뒤늦게 확인되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병원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가 선명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질 높은 병원 서비스라고 하면 흔히 더 높은 건물, 뛰어난 명의, 최첨단 검사와 수술 장비를 떠올린다. 그러나 보이는 곳이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병원 구석구석을 반짝이게 만들고, 환자와 의료진이 안전하게 치료를 받고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병원 지원 서비스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몫이다.

좀 더 청결하고 안전한 병원, 양질의 식사와 쾌적한 환경이 보장되는 병원을 기대한다면, 그림자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환자의 이해와 노동자의 이해가 일치하는 곳, 병원이야말로 노동자와 시민의 연대가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다.

기자명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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