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진계에 눈에 띄는 현상이 하나 있다. 사진 프린터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매장이나 전시 이벤트가 늘고 있다. 젊은 사진가와 기획자들이 모여 열었던 〈더 스크랩〉이라는 전시는 사진가 100명한테 열 장씩 사진을 받아 익명으로 전시했다. 관람객은 다섯 장에 3만원, 열 장에 5만원을 내고 사진을 구입할 수 있었다. 사실 판매 수익을 노린 전시라기보다 ‘사진이란 어떻게 유통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실험이었다. 그런데 롯데백화점은 서울 잠실점에 ‘291 photographs’라는 매장을 열고 이 전시의 형식을 빌려 아예 상업적인 판매를 시도했다. 8×10인치 한 장에 1만원. 이렇게 싼 가격에 판매되는 사진은 ‘작품’인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사진은 독일 사진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라인강’으로 48억원에 판매되었다. 국내 사진가의 최고 가격은 약 1억원 안팎이다. 사진은 복제본이 여러 장 있다는 가정하에 유화의 10분의 1 정도에 판매된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의 짧은 역사에 비해 그리 싼 가격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가격을 무시하는 듯 롯데백화점이 인쇄된 포스터 가격과 비슷한 가격에 사진을 판매하는 것이다. 도대체 사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진은 발명 초기부터 사물의 표면을 탁월하게 복제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폭스 탤벗의 음화와 양화 기법이 만들어진 후 사진 복제는 더욱 수월해져 거의 무제한 복제가 가능해졌다. 20세기 들어 망판 인쇄술이 발명되자 사진은 날개 돋친 듯 복제됐다. 신문·잡지·사진집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930년대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오직 한 점만이 존재하는 예술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대신 그것이 소멸된, 복제되는 예술로서의 사진에 주목했다. 신문, 잡지, 책에서 오려낸 사진만으로 자신의 방을 미술관으로 꾸밀 수 있다. 이는 아우라를 붕괴시키며 미술관으로 대표되는 권력의 독점 대신에, 시민 모두의 평등한 예술 공유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1970년대 중반 인기 드라마 〈미녀 삼총사〉의 주연이었던 파라 포셋의 사진 포스터다. 빨간색 수영복을 입고 찍은 그녀의 포스터는 1976년 한 해 동안 북미에서만 1600만 장이 복제되어 판매됐다. 이는 사진 역사상 가장 많이 복제된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장기간에 가장 많이 복제된 사진이라면 로베르 두아노의 ‘파리의 키스’나 알베르토 코르다의 ‘체 게바라’를 들 수 있다).
디지털 프린터로 ‘생산’되는 사진
이런 인쇄 복제와 달리 은염으로 인화된 한정된 복제 사진은 꾸준히 ‘작품’으로 인정되어 왔다. 1980년대 이후 사진 전시가 미술관에서 열리며 작품으로서 사진이 공고화되는 듯했다. 이 같은 물결에 몸을 실은 사진은 복제를 포기하는 길로 갔다. 판화처럼 에디션이라는 제도를 도입해 복제되는 작품 수를 규정하고 줄여나갔다. 극단적으로 한 장만 존재하는 사진도 나왔다.
21세기 들어 큰 변화가 왔다. 암실에서 은염으로 복제되던 사진이 사무실에서 디지털 프린터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제작 과정을 잘 살펴보면 과거 인쇄 방식과 닮았다. 종이 위에 디지털로 찍힌 사진 이미지가 고화질 프린터로 인쇄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디지털 사진 원본과 인쇄된 포스터는 사실상 차이가 없다. 사진가가 자필로 사인하지 않으면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사진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사인이 들어간 고가의 희귀 사진을 아주 소수의 소장자에게 팔아야 할까? 사인 없이, 에디션도 없이, 싼값에 불특정 다수에게 팔아야 할까? 또 소장자 처지에서는 몇 장만 만들어진 고가의 희귀 사진을 사야 할까? 아니면 흔하더라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싼값에 사서 벽에 걸어야 할까? 21세기 복제 기술은 사진의 본질을 다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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