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영화는 뻔하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실존 인물’ 이야기는 다르게 만들 여지가 별로 없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그려야지, 달리 뭘 어떻게? 그걸 알면서도 또 보게 된다. 또 감동받게 되어 있다. 그것이 실화의 힘, 전기 영화의 미덕. 조금 덜 뻔한 캐스팅에 조금 덜 뻔한 대사 몇 마디만 있어도 ‘잘 만든 전기 영화’ 소리를 듣는다. 내가 〈돈 워리〉에 기대한 것도 딱 그만큼이었다. 잘 만든, 뻔한 영화.

거스 밴 샌트 감독이라니 믿을 만했다. 〈굿 윌 헌팅〉(1997)과 〈파인딩 포레스터〉(2000)를 본 이상, 이른바 ‘힐링 무비’를 만드는 그의 특출한 재능을 의심할 수 없다. 아카데미상을 두 개나 받은 영화 〈밀크〉(2008)로 실존 인물의 전기 영화를 다루는 솜씨까지 이미 증명해 보였다. 그런 감독이 20년 전부터 만들고 싶어 안달해온 이야기가 〈돈 워리〉라고 했다.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이라니 안심해도 좋았다. 나는 〈마스터〉(2012)와 〈그녀〉(2013)에서 그의 종잡을 수 없는 변신을 목격했다. 아카데미상 후보가 된 것만도 벌써 세 번. 그런 배우가 20여 년 만에 거스 밴 샌트 감독과 다시 손잡은 영화가 〈돈 워리〉라고 했다.


얘기는 이렇다. 술독에 빠져 살던 주인공 존 캘러헌(호아킨 피닉스)이 덱스터(잭 블랙)의 음주 운전 차량에 동승했다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다. 휠체어를 타고 알코올 의존자 모임에 나가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모임을 이끄는 멘토 도니(조나 힐)에게 의지하고, 병원에서 만난 자원활동가 아누(루니 메라)와 사랑에 빠진다. 뒤늦게 자신의 소질도 살려 주목받는 카투니스트로 새 인생을 산다. 이것은 실화다.

아주 잘 만든, 그래서 뻔하지 않은 영화

처음엔, 과거와 현재를 바쁘게 오가는 영화의 화법이 조금 정신없어 보였다. 주인공처럼 영화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만 같아서, 솔직히 걱정도 되었다. 휘청거리던 존의 삶이 중심을 잡아갈 때, 영화도 같이 균형을 맞춰간다. 알코올 의존자 모임에서 ‘용서의 12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주인공과 함께, 어느새 나도 차근차근 삶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 이상한 전기 영화의 참 이상한 몇몇 장면이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나를 울렸다. 남의 인생을 보러 갔다가 뜻하지 않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주인공을 안쓰러워하지 않고 우러러보지도 않는 영화의 태도가 특히 근사했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도 휠체어를 미는 사람도, 모두 똑같이 헤매고 넘어지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라는 영화의 생각이 내게도 전해졌다. 좋은 영화는 웃음과 눈물을 쥐어짜지 않는다. 좋은 영화의 웃음과 눈물은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돈 워리〉는 ‘잘 만든 뻔한 영화’가 아니다. ‘아주 잘 만든, 그래서 이상하게 뻔하지 않은 영화’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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