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접어든 지 오래, 이제 설렘은 없다. 인생은 빤하고 일은 하루하루 늘어나고 시절은 하 수상하다. 내겐 글이라는 설렘의 화수분이 있으나 그것이 업이 된 지금 기쁨과 좌절의 균형추도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안타깝지만 나쁜 쪽으로.
설렘의 원천이 하나 있다. 바로 자전거이다. 창고에 오래 처박혀 있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자전거를 꺼내 정비를 하고 그 위에 올라타 페달을 밟기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이다. 처음에는 30분만 타도 힘들고 지루했다. 조금씩 주행거리를 늘리면서 주변 풍광을 즐기는 여유도 생겼다.
예전에는 홀로였지만 이제 함께 자전거를 탈 파트너도 있고 같이 한강 변을 달리기도 하고 시외로 나가기도 한다. 그동안 자전거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진일보해서 자전거도로 조건도 개선되고 관련 법안과 정책도 늘고 있다. 한국은 점점 자전거 타기에 좋은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목요일에 죽을 수는 있어도 장례식을 해선 안 되네”
자전거 타기에는 많은 매력이 있다. 〈자전거를 좋아한다는 것은〉(크리스 해턴, 2014)이라는 책의 서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책의 바탕에는 자전거는 인종과 성, 나이, 빈부 또는 계급의 차별을 없애준다는 생각이 있다. 한마디로 자전거는 진정한 사회적 평등(평준화로 번역됐으나 오역인 듯)을 이끄는 수단인 셈이다.”
책은 여러 자전거 관련 모임을 소개하는데, 그중에 노인들(최고 연령 93세, 최저 연령 55세)이 목요일마다 함께 자전거를 타는 ‘목요일 클럽’이 흥미롭다. 클럽의 규칙 중 하나. “목요일에 죽을 수는 있어도 장례식은 목요일에 해선 안 되네. 그렇게 되면 하루의 멋진 라이딩을 망치게 되잖나.”
자전거를 타다 보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가장 좋은 기억 중 하나는 두꺼비를 구해준 일이다. 밤에 자전거도로 위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두꺼비를 발견하고는 자전거에서 내려 길 바깥으로 녀석을 조심스레 에스코트해주었다. 그러면서 달려오는 라이더들에게 양팔을 벌리고 “두꺼비!” “두꺼비 조심!” 하고 소리 질렀다. 그날 한 생명을 구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왔다.
가장 후회되는 기억은 청소년 라이더들을 야단친 일이다. 지그재그로 위험하게 자전거를 타는 친구들에게 “잠깐만 멈춰보게” 하고는 “앞으로 그렇게 타지 말게. 본인과 타인 모두에게 위험하다네”라고 엄숙하게 이야기했다. 그날 아주 기분이 찜찜해져서 귀가했다. 영락없는 꼰대질을 한 것 같아서다.
얼마 전에는 직장 동료들과 춘천에 가기로 했다. 그때부터 마치 소풍을 고대하는 초등학생처럼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탄 이래로 가장 장거리를 뛰게 될 터였다. 하지만 약속은 계속 미뤄졌다. 한 주는 한 사람이 출장을 갔고 다른 주는 다른 사람이 휴가를 갔다. 춘천 대신에 서울만 빙글빙글 돌았고 춘천 가는 자전거 여행의 출발점이 될 양수리까지만 두 번을 다녀왔다.
모든 자전거 타기가 춘천 가는 자전거 여행의 예행연습처럼 느껴졌다. 페달질을 하면 마음속으로 ‘헛둘 헛둘’ 하듯 ‘춘천 춘천’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춘천 가는 자전거 길의 풍광을 미리 살펴보다 ‘아, 참 예쁘다’ 하고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마가 시작됐다. 춘천행 자전거 여행은 하염없이 지연됐다.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바로 ‘춘천 가는 기차’였다. 내가 왜 이리 춘천 가는 자전거 여행에 푹 빠졌나 싶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가사에 담겨 있었다. ‘춘천 가는 기차’는 이렇게 시작했다. “조금은 지쳐 있었나 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문득 생각해보았다. 요새 나는 시는 못 쓰고 시 쓰는 생각만 한다. 춘천도 그런 것이 아닐까? 춘천은 못 가고 춘천 가는 생각만 하는 것 아닐까?
어느덧 춘천은 내게 다다르지 못한 이상향을 지칭하는 새로운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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