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커버스토리 평을 여러 곳에서 받았다. 호평이었다. 팩트의 힘을 느꼈다는 반응이 많았다. 현장을 찾아 찍고, 일본 공식 자료를 뒤지고, 확인하고 또 확인한 안해룡 사진가의 수년간 취재가 빛을 발했다. 그가 혼자 한 건 아니다. 일본 시민사회가 함께 해왔다. 한·일 연대가 일군 취재였다.


최근 한·일 평화의 목소리가 묻히고 있다. ‘센 발언’만 양국 언론에 소개되어 소비된다. 가짜 뉴스도 SNS에 넘쳐난다. 팩트가 부실한 주장이 반향이 더 크다. 평화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시작은 일본이었다. 7월25일 일본 지식인 78명은 ‘한국은 적인가’라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철회하고 한국 정부와 냉정한 논의를 시작하라”고 요구했다. 동의한 일본 시민들이 온라인 서명을 할 수 있게 했다. 1차 마감인 8월15일까지 약 8300명이 동참했다.

8월12일 한국 원로 지식인 67명이 화답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는 경제 보복 조치를 철회하고 한·일 정부는 직접 대화를 즉각 재개하라”고 요구했다. 일본의 성명에는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 오카다 다카시 교도통신 객원논설위원,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 등이 참여했다. 한국의 성명에는 고건·정운찬·이홍구 전 국무총리, 한승헌 변호사,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이들이 참여했다.

한·일 성명에서 동시에 언급한 선언이 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다.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돌아가자고 양국 지식인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 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도 8·15 경축사에서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다. 공정하게 교역하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만들어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 닿아 있다. 이제 아베 총리가 화답할 차례다. 아베 그룹을 유턴시키기 위해서라도 한·일 시민들은 평화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지난 호 ‘일본 근대화 숨은 주역, 조선인 노동자를 찾아서’ 표지사진에 실린 ‘고베 전철 부설공사 조선인 노동자상’은 일본 시민단체가 세운 것이다. 이처럼 한·일 사이에는 평화를 위해 연대해온 역사가 얕지 않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지금이야말로 평화의 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때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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