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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향한 인간의 배고픔

2018년 02월 08일(목) 제543호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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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묻는다. “역사상 최초로 자산 규모가 10억 달러를 넘은 인물이 되셨다면서요?” 그가 답한다. “가진 재산의 액수를 셀 수 있다면 진정한 억만장자가 아니겠지.”

J. 폴 게티. 유전 개발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남자. 1965년의 인터뷰에서 앞에 인용한 명언을 남겼고 이듬해 1966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자’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재산만 많은 게 아니었다. 식솔도 많았다. 다섯 번 결혼하고 다섯 번 이혼하는 동안 아들만 다섯을 얻었다. 그 아들들이 낳은 자식 또한 여럿이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해 여름의 바람만큼 그의 삶을 거세게 흔든 적은 없었다.

1973년 7월10일 새벽 3시. 존 폴 게티 3세가 한 무리의 괴한에게 납치당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돈을 가진 그의 할아버지에게 셀 수 있는 액수의 몸값을 요구했다. 17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80억원 남짓. 1973년에 부른 몸값치고는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기자가 묻는다. “손주 몸값으로 얼마를 주실 생각이죠?” 게티가 답한다. “난 손주가 열넷입니다. 몸값을 주기 시작하면 유괴된 손주가 열넷이 되겠죠.” 기자가 다시 묻는다. “1700만 달러를 못 주겠다면 얼마를 주실 생각이죠?” 그가 다시 답한다. “안 줍니다. 한 푼도.”

이것은 실화다. 게티가 세계 최초 억만장자인 것도 실화, 그의 손주가 납치당한 것도 실화, 몸값은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버틴 것까지 모두 실화. 여기에 한 가지 더. 납치된 날로부터 정확히 넉 달째 되던 날, 한 신문사 앞으로 게티 3세의 잘린 귀가 배달된 것 또한, 믿기 힘들지만 엄연히 실화다.

영화 <올 더 머니>는 실제 이야기를 시간 순서에 따라 차곡차곡 재현해 나간다. 동시에 ‘실제 이야기’로 미처 다 기록되지 못한 개개인의 드라마를 차근차근 지어낸다. 납치당한 아이의 엄마이자 억만장자 시아버지의 며느리 게일(미셸 윌리엄스)이 앞장서 극을 이끌고 관객이 뒤따른다. 게일을 도와 인질 협상에 나선 전직 CIA 요원 플레처(마크 월버그)의 눈을 빌려 관객은 게일과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치열한 언쟁을 목격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를 손에 쥔 자의 마음과 생각을 잠시나마 상상해보는 특권을 누린다.

재산을 셀 수 있다면 부자가 아니다

마침내 관객은 플레처의 입을 빌려 묻는다. “대체 돈을 얼마나 더 가져야 만족할 겁니까?” 게티가 답한다. “More(더 많이)!”

이 의미심장한 장면에서 나는 감독의 전작 <에일리언>을 떠올렸다. 사람의 배를 가르며 튀어나오던 괴물이 문득 떠올랐다. 게티의 입 밖으로 사납게 튀어 나온 한마디, ‘더 많이’는 그 순간 ‘에일리언’이었다. 인간이 키운 괴물이었다. 돈을 향한 게티의 집착과 탐욕은 에일리언의 끝없는 배고픔을 닮았다. 결국 그가 가진 건 돈이 아니었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허기였을 뿐.

88세에 또 한 번 아카데미상 후보가 된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장엄한 연기. 81세에도 여전히 힘이 넘치는 연출을 보여준 리들리 스콧의 듬직한 내공. 영화 <올 더 머니>를 보고 나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멋진 장면의 개수를 셀 수 있다면 진정한 거장이 아니다. 가진 재산의 액수를 셀 수 있다면 진정한 갑부가 아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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