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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 사립학교는 공공성의 성역인가

2018년 03월 05일(월) 제547호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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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정부는 사학법 개정을 추진했다가 보수층 결집으로 재임 기간 내내 발목을 잡혔다. 하지만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약속한 이번 정부에 중등 사립학교 공공성 강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100대 국정 과제 속에는 ‘고교 무상교육’이 포함되어 있다. 공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 균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현행법상 무상교육은 중학교까지 보장되어 있다. 정부는 2019년 초·중등교육법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고등학생 입학금·수업료·학교운영비·교과서비를 지원해 나가겠다는 로드맵을 세웠다.

근거는 중등교육의 공공성이다. 유아교육(유치원)과 고등교육(대학)에도 공공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 중등교육(중·고등학교)에서의 공공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아직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실현되지 못했고 중학교 무상교육에 대한 법적 제도도 2002년에 겨우 완성됐지만, 중등교육의 공공성은 사실상 사회 속에서 자리 잡아 작동하고 있는 원리다.

그런데 여기에 걸림돌이 하나 있다. 바로 사립학교다. 중등 사립학교는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공공성’을 지닌 교육기관인 동시에 사립학교법에 의해 ‘자율성’을 인정받는 개인·법인의 소유물이다. 사학의 공공성에 대한 요구는 종종 ‘사유재산권 침해’ 앞에서 가로막힌다. 중학교의 19.8%, 고등학교의 40.1%가 사립학교다. 사립학교의 공공성을 방치하고 중등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지난해 12월14일부터 지난 2월8일까지 국회에서 네 차례 열린 ‘중등 사립학교 공공성 강화를 위한 연속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문제점과 개선할 점을 짚었다.

ⓒ시사IN 윤무영
지난 1월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등 사립학교 공공성 강화를 위한 연속 토론회’.
■ 사학 자율성에 짓밟힌 학생 인권


서울시의 한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정미양(가명)이 즐겨 쓰는 말 중에는 ‘탈○○’이라는 단어가 있다. ○○은 재학 중인 학교 이름이다. “우리는 항상 ‘탈○○’을 외치며 전학 가는 친구를 부러워해요.” 김양이 다니는 학교는 이른바 ‘사학 명문’으로 불리는 곳이다. ‘명문’의 근거는 명문 대학 입학률. 학교는 그 명성을 잃지 않게끔 성적순으로 기숙사 입소생을 선발하고, 반강제로 야간 자율학습을 시키며, 두발 단속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추워도 교실에서 교복 위에 외투를 입지 못하게 하는 등 엄격한 규율로 학생들을 옥죈다.

‘우리 학교는 왜 이럴까’ 고민하던 김양은 학교의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학교가 변하기 힘든 구조임을 깨달았다. 비리로 유명한 사학법인 산하의 여러 사립학교 중 하나였다. 여러 교사들이 비리를 밝히고 근절하려 싸워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교사들은 고용 불안과 부당한 업무 지시에 고통받으며 전투력을 잃어왔고, 학생과 학부모는 ‘문제는 있지만 대학은 잘 보내는’ 학교의 비리에 눈감아왔다. 교육청 등이 제재하려 해도 학교는 ‘사립학교의 자율성’이라는 방어 논리로 빠져나갔다.

교육의 자율성을 내세우는 사립학교일수록 정작 학생들의 자율성을 억압한다는 사실은 실제 통계로도 증명된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발표한 서울시 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립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받는 인권침해 정도가 공립보다 훨씬 심하다. ‘교사가 학생을 공정하게 대하는지’ ‘보충·자율학습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지’ ‘두발·복장 등이 자유로운지’ 여부 등에 대해 사립 중·고교 학생들은 공립보다 모두 10% 이상씩 낮은 비율로 동의했다. 학교에서 체벌과 모욕적 언사를 경험하는 비율도 10%가량 더 높았다. 김양은 “사학이 내 마음대로 식의 학교 운영을 하는 것을 국가가 정말 막을 수 없는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 사립학교의 전횡, 이유가 있다


문명고, 서울디지텍고, 경북항공고, 오상고, 김천고….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 역사 교과서 연구학교로 참여 의사를 밝힌 고등학교들이다. 당시 학생과 학부모들의 거센 반대도 무릅쓰고 국정교과서로 수업을 하겠다고 버틴 이 학교들의 공통점은 모두 ‘사립학교’라는 점이다. 김행수 전 사립학교개혁국민운동본부 정책국장에 따르면 이는 우연이 아니다.

비밀은 ‘학교운영위원회’에 있다. 교사·학부모·지역 인사 등이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최고 심의 의결기구인 공립학교와 달리, 사립학교는 운영위원회의 위상이 ‘자문 기구’에 불과하다. 그래서 교육부 직속의 국립 고등학교들도 학교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받아들이지 않은 국정 역사 교과서 도입을, 일부 사립학교는 교장·재단 이사장의 의지 하나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 현행 사립학교법 체제에서는 일부 구성원이 비민주적 절차로 독선적 결정을 강행해도 막을 방도가 없다.

비리를 저지르는 사립학교 교직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공립학교 교직원이 잘못을 저지르면 교육청에서 징계를 내려 바로 처분을 하지만, 사립학교에는 교육청이 아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사립학교법상 사립 교직원의 인사권과 징계권은 학교법인이 갖게끔 되어 있다. 학교 돈 수십억원을 빼돌리고 동료 교사를 성추행하고 채용을 대가로 수천만원 뇌물을 받은 사립학교 교장·교사·행정직원들이 여전히 학교를 떠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외부에 알린 공익 제보자들이 학교 밖으로 쫓겨나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이다. 이득형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 상근 청렴시민감사관은 “더도 말고 징계권만이라도 관할 교육청이 가지면 사학 비리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5년 12월13일 서울 명동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위헌적인 사학법 개정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 정부는 손 놓고, 교육청은 권한 없고


현재 교육부에서 사립학교 관련 조직은 ‘사립대학정책과’와 ‘사학혁신지원과’ 두 곳이다. 모두 대학 교육을 담당하는 고등교육정책실 산하다. 초·중등 교육을 담당하는 실·국 어디에도 사립학교 담당 공무원이 없다. 정부에서도 손을 놓고, 교육청은 권한이 없고, 초·중등 사립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사실상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사립 중·고등학교는 거의 모든 재원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 교원 인건비, 운영비 등이 모두 교육청에서 지급하는 재정결함보조금으로 충당된다.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실시되면 지원 규모는 더 커질 것이다. 문홍주 광주시교육청 장학사는 “사립 중등학교는 대부분의 재원을 국민 세금으로 지원받는 만큼 사립대학에 비해서도 공공성과 공익성이 더 높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립학교의 공공성 강화는 결국 사립학교법(사학법) 개정이 핵심이다. 이 사학법 개정은 오랜 기간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사립학교 문제는 교육계의 오래 묵은 적폐 가운데 하나로 늘 지적되었지만 누군가 선뜻 총대를 메고 나서지 못하는 주제였다. 정치권의 여러 인사들은 과거 사학법 개정을 추진했다가 보수층 결집으로 이후 재임 기간 내내 발목을 잡혔다는 참여정부의 ‘트라우마’를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약속한 이번 정부의 취지를 살리려면 적어도 중등 사립학교의 공공성 강화만은 손 놓고 볼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경수 경기도교육청 장학사는 “그동안 교육청이나 정부가 중등 사립학교들에 대한 재정 지원에만 초점을 맞춰오고 그에 걸맞은 공공성을 갖추고 있는지 관리하는 일에는 소홀했다. 공립학교와 똑같이 공공성을 지니는 공교육 기관이기 때문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고 개입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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