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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스크린도어가 있다

2017년 06월 08일(목) 제507호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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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의역 사고 후 1년이 지났다. 많은 것이 바뀌고 또 바뀌지 않았다. 해당 협력업체 직원들은 무기계약직 형태로 직접 고용됐지만 임금 격차는 여전하고 업무 강도도 세졌다.

ⓒ시사IN 조남진
2016년 5월31일 구의역 9-4 승강장 주변에 김군을 추모하는 메시지와 국화꽃이 놓여 있다.

‘너는 나다.’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쓰인 문구다. 이곳에 다시 국화가 놓였다. 1년 전인 지난해 5월28일,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은성PSD 업체 직원 김 아무개군(19)이 전동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사고 후 2인1조 업무가 정착되고 레이저 센서가 도입되면서 선로 안쪽에서 작업하는 횟수가 줄었다. 지하철 정비를 해오던 유성권씨(38)에게도 구의역 사고는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서울메트로는 2008년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따라 전동차 경정비, 스크린도어 보수, 구내 운전, 철도장비, 유실물센터 업무 등을 하청업체에 넘겼다. 김군이 일했던 은성PSD가 스크린도어를 담당했고, 유씨가 몸담은 프로종합관리가 경정비 업무를 맡았다. ‘김군이 유씨였다.’

ⓒ시사IN 이명익
김군처럼 서울메트로 협력업체에서 일했던 유성권씨에게도 구의역 사고는 전환점이었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유성권씨는 1996년 롯데전자에 취업했다. 이후 대기업 제과회사, 케이블방송 업체 등에서 전자·전기 업무를 담당했다. 2010년 여름 프로종합관리에 입사했다. 첫 근무지는 창동 차량기지였다. 서울메트로에서 교육을 받았다. 기지 상시출입증도 받았다. 유씨는 열차 내 손잡이, 유리문, 형광등 등 각종 부품을 교체하거나 안전기를 점검했다. 열차 밑으로 들어가 에어호스로 금속 먼지를 제거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한번 작업을 할 때마다 옆 사람이 보이지 않을 만큼 먼지가 일었다. 흰 작업복도 금세 까맣게 변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스크린도어가 유씨 같은 작업자들에겐 골칫거리였다. 선로 내 분진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소용돌이치면서 미세먼지가 기기에 더 쉽게 내려앉았다. 마스크를 껴도 먼지가 들어왔다. 비염을 달고 살았다. 사고도 잦았다. 고압 전류를 끊고 일하지만, 잔류 전류가 남아 위험했다. 2m 높이 사다리에서 일하다 발을 잘못 디디면 주변이 죄다 강철이어서 큰 부상으로 이어졌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6년 6월까지 서울지하철 산재사고 179건 중 139건이 협력업체에서 발생했다. 사망자 4명 중 3명도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그중 한 명이 김군이다.

구의역 사고 소식을 들은 건 사고 당일 오후 6시 출근 직후였다. 유씨가 야간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구의역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좀 전에 자신이 타고 온 차량일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사고 시각은 오후 5시57분이었다. 머리끝이 쭈뼛쭈뼛 섰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기사가 쏟아졌다.

유씨도 김군처럼 처음에는 지하철에서 일한다기에 정년이 보장되는 자리인 줄 알았다. 그는 서울메트로 협력업체인 프로종합관리 소속 비정규직 신분이었다. 서울메트로 정규직이 이용하는 목욕탕에 ‘용역 사용금지’라고 적힌 문구를 보면서 비정규직이라는 걸 실감했다. 프로종합관리 소속 노동자에게는 사무실이 휴게소이자 탈의실이었다. 샤워 꼭지가 3개 달린 좁은 샤워실을 36명이 썼다. 작업 도중 신발에 까만 기름이 묻어 식당에도 종이 박스를 깔아놓을 정도라 미안해서 잘 돌아다니지 않았다.

유씨는 2011년 근로계약 해지 통보서를 받았다. 프로종합관리가 서울메트로 전적자를 추가로 받기 위해 비정규직인 유씨와 동료들을 잘랐다. 알고 지내던 정규직 노동자가 그에게 노조 설립을 권했다. 유씨를 비롯한 동료 3명이 전국공공운수노조 서울지하철비정규지부를 만들었다. 유씨는 박원순 서울시장 관저 앞에서 서울메트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피케팅을 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천막 농성을 하며 길에서 잤다. 서울시 교통본부장과 서울메트로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15년 “2017년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라는 합의를 했다. 하지만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통합 논의 과정에서 이 합의는 흐지부지됐다.

유씨는 김군 사건 뒤 한 달여 동안 언론 인터뷰와 토론회에 응하느라 잠을 못 잘 정도로 바빴다. 비정규직 노조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그를 찾았고 ‘위험의 외주화’를 지적했다. 김군 사고 이후 변화가 없지는 않았다. 가장 큰 변화는 지난해 9월, 서울시가 시민 안전과 직결되는 7개 업무를 ‘안전업무직’이라는 별도의 직군을 신설해 무기계약직 형태로 직접고용한 것이다. 유씨도 서울메트로 소속 직원이 되었다. 유씨를 포함해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141명도 마찬가지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뒤 그는 지축 차량기지로 발령받았다. 서울 은평구 갈현동 집과 가까운 곳으로 옮겨달라고 건의한 지 7년 만이었다.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고 있다. 예전에는 교육비가 드니까 서류에 사인만 하고 교육받은 것처럼 꾸몄는데, 요즘엔 전문 강사의 강의를 듣는다. 구내식당 밥값도 덜 낸다. 전에는 정규직 직원보다 1000원을 더 내고 먹었다. 작업환경은 확실히 개선되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를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위험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다. 최근에도 동료 한 명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인대가 끊어졌다.

‘안전업무직’ 신설해 무기계약직으로 고용

업무 내용도 조율에 들어갔다. 하청업체에 있을 때는 서울메트로 간부 출신 감독관이 이해하기 어려운 꼬투리를 잡곤 했다. 하얀색 장갑을 끼고 와서 청소된 애자(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로 전동차 옥상의 고압 전류가 객실로 누전되는 것을 막아주는 안전 운행의 핵심 장치)를 슥 만져본 뒤 먼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다시 하라고 지시하는 식이었다. 구의역 사고 이후에는 안전과 직결된 업무 위주로 작업의 우선순위가 재배치되고 있다.

유씨를 비롯한 안전업무직 노조원들은 정규직과 같은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소속이다. 안전장비 역시 동일한 걸 사용한다. 용역업체가 제공하던 장갑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기도 했다. 9000원짜리 안전화는 3개월도 못 가 뒤축이 닳았다. 김군이 하던 스크린도어 관리 업무 역시 센서 교체 등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은 운행 중 작업이 금지되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무기계약직으로 신분은 안정되었지만 기존 정규직과의 임금 차이가 여전하다. 지난해 구의역사고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은 입사 8년차 기준, 정규직과 안전업무직 간에 100만원가량 급여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프로종합관리에서 월 200여만원을 받았던 유씨는 신규 채용 형태였던 안전업무직 전환 후 첫 달에 150만원을 받았다. 몇 년째 유예 중인 결혼을 아예 포기해야 하나 싶은 마음마저 든다. 임금 차이뿐 아니라 아직 기존 정규직 직원들과 현장에서 데면데면하다. 두 직군 사이에 업무를 분리해놓아 협업이 쉽지 않다. 유씨처럼 정비 업무를 하는 노동자의 경우 야간근무가 사라졌지만 인원은 오히려 줄어 강도가 세졌다. 야근이 남아 있는 스크린도어 분야에서 안전업무직은 3조2교대로, 정규직은 4조2교대로 일한다. 121개 역을 담당하는 ‘승강장 안전문 관리소’는 4곳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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