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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인 여준형씨가 말하는 ‘빙상계 미투’

2019년 01월 29일(화) 제593호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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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는 빙상연맹의 독재적인 ‘라인 문화’가 폭력을 조장하고 성폭행을 덮었다고 본다. 그는 새로운 집행부도 부패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스케이트를 신었다. 두 살 아래 동생 수연씨도 여준형씨(35)를 따라 빙상 위를 달렸다. 2004년 남매는 함께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뽑혔다. 같은 해 11월, 동생 여수연씨를 비롯한 여자 선수 6명이 코치의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태릉선수촌을 ‘탈출’했다. 빙상 국가대표팀 내부의 폭행 문제가 최초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폭행을 가한 코치들이 받은 처벌은 직위 해제가 전부였다. 한 명은 다시 국가대표 코치를 맡아 두 번이나 올림픽에 나갔고, 다른 한 명은 지금도 빙상 위에서 심판을 맡고 있다.

여준형씨는 중국과 미국 등에서 코치로 활동하다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4년 소치 올림픽이 끝나고 심석희 선수를 1년간 지도하기도 했다. 선수에서 코치가 된 그의 눈에 한국 빙상계는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해 9월부터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을 모아 ‘젊은빙상인연대’를 꾸린 이유다. 김아랑, 김민석 등 국가대표 선수와 코치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든 건 빙상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시사IN 윤무영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위)는 ‘연맹의 꼬리 자르기’가 문제라고 말했다.
1월8일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4년 동안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보도됐다. 다음 날 젊은빙상인연대는 “심 선수의 고발이 이슈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라며 빙상계 미투를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1월13일,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를 만났다.


젊은빙상인연대를 만든 이유는?

외국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돌아와서 한국체육대학교(이하 한체대) 조교를 맡았다. 코치 하는 입장에서도 ‘이거는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 비록 선수가 잘못을 했더라도 선수만 징계를 받고 끝나서는 안 된다. 그런데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거나 임원이 책임을 지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연대를 만들면서 선수들이 더 이상 피해를 받지 않도록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되기를 바랐다.

빙상계 내부에는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구가 없나?

있어도 무기력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몇몇 사람들만의 연맹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사건이 커지는 것을 두고 보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어차피 사건이 묻힐 걸 알기 때문에 신고를 꺼린다.

조재범 코치 사건 이전에도 그렇게 묻힌 사건이 있었나?

2012년 한체대 쇼트트랙 코치가 자신이 가르치던 여자 선수를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다. 연맹에서는 오히려 피해자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다 나중에는 피해자를 회유했다. 그래서 결국 사건이 조용히 묻혔다.

가해자는 어떻게 되었나?

오히려 연맹에서 가해자를 국가대표 소속으로 옮겨줬다. 그리고 나중에 소치 올림픽 즈음 다시 논란이 되니까 어쩔 수 없이 국가대표 코치에서 직위해제했다. 그 빈자리를 조재범 전 코치가 이어받은 거다. 가해자는 여전히 빙상장에서 개인 강사 자격으로 코치 활동을 한다. 나는 그가 연맹의 실세였던 전명규 교수의 측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연합뉴스
1월10일 스포츠·시민단체 회원들이 스포츠계 성폭력 재발 방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명규 교수의 파워가 그렇게 센가?


그가 국가대표팀 감독일 때 좋은 성적을 낸 건 맞지만, 훈련하는 과정에서 선수들을 자주 폭행해 내부적으로 문제가 된 적도 있다. 한체대 체육학과 교수로 임용되면서 ‘날개’를 달았다. 한체대에 어떤 선수를 받을 건지 결정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 있으니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도 전 교수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연맹 전무를 지내고 부회장까지 올라갔다. 지금은 연맹이 ‘관리단체’로 지정됐고 부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한체육회는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체육단체를 ‘관리단체’로 지정한다. 관리단체로 지정되면 연맹 임원진이 전부 해임되고, 그 자리에 대한체육회가 구성한 관리위원회가 투입돼 직접 관리를 받는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불거진 특정 선수 특혜 의혹 등을 해소하기 위해 대한체육회는 지난해 9월20일 대한빙상경기연맹을 관리단체로 지정했다.


관리단체 지정 다음으로 필요한 대책은?


가해자는 조재범 전 코치인데 책임자는 없다. 늘 이렇게 꼬리 자르기 식이다. 이번만은 책임 있는 인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두 번째, 세 번째 피해자가 나올 것이다.

빙상계 내부의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라인 문화’가 큰 원인이다. 입맛에 맞는 사람은 있는 징계도 없애주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던 징계도 만들어내는 식이니 독재적인 권력이 자리 잡은 거다. 젊은빙상인연대의 목표를 ‘빙상계의 폭력 근절’로만 보지 않는다. 관리단체 지정이 끝나고 새로운 집행부가 와도 부패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늘 패턴이 같다. 올림픽 한 달 전에 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일단 메달을 따야 하니까 어떻게든 봉합됐다. 실제로 메달을 딴다. 늘 올림픽이 끝나고 3월 무렵이면 잠잠해진다.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할 때쯤 이 문제는 언론에서도 시들해지고 사람들 관심도 식으면서 자연스럽게 덮인다.

심석희 선수도 이런 전례를 봤기 때문에 혼자서 피해 사실을 감당하고 있었던 걸까?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2012년 한체대 성추행 사건이 재거론되었는데도 조사 한번 하지 않고 징계조차 없이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 ‘이런 구조 속에서는 말을 해도 바뀔 게 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석희도 소치 올림픽 사건이 덮였으니 본인도 이야기를 해봤자 소용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말을 못했다고 한다.

폭행은 주변 사람들도 인지할 수 있다. 그게 묵인됐던 이유는?

조재범 전 코치는 사실 드문 경우다. 나도 대표팀 코치를 해봤지만 국가대표를 때릴 이유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타는 선수들인데 때리거나 그럴 일은 별로 없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조재범 전 코치가 연맹으로부터 실적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재범 전 코치의 폭력이 정당화될 순 없다. 체벌을 한 책임은 명백히 일차적으로 코치에게 있다. 하지만 폭행을 더 부추기고 묵인한 건 연맹의 실적 압박 같은 구조적인 문제다.


조재범 전 코치는 2011년부터 2018년 1월까지 심석희 선수를 포함한 선수 4명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해 9월19일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지난해 10월2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재범 전 코치가 보낸 편지가 공개됐다. 편지에는 전명규 교수가 자신에게 ‘이번에 심석희 1등 못하면 각오해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또는 승부를 조작해서라도 1등 시켜라’는 압박을 가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에 전명규 교수는 국감장에서 “그렇게 한 적이 없다”라고 부인했다. <시사IN>은 전명규 교수의 반론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그는 응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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