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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2019년 01월 30일(수) 제593호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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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월간지 <말> 초년 기자 시절 대령 출신 지만원씨를 취재원으로 처음 만났다. 정치군인들의 권력욕과 물욕에 환멸을 느꼈던 그 시절 지씨와의 만남은 신선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 서구식 합리주의를 전파하는 전도사를 자임했다. 지씨는 1990년대 초·중반만 해도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인물로 평가받았다.

육사 출신 정치군인 모임인 ‘하나회’의 실상과 부조리를 기자에게 제보해 여러 차례 특종을 안겨준 이도 그였다. 무기 도입 사업 비리에 대한 제보도 했다. 1990년대 초·중반 지씨와 함께 만든 기자의 특종은 지씨를 정치적 주목 대상으로 부각시키는 데 일조했다. YS(김영삼) 이후를 노리던 DJ(김대중) 진영에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1997년 대선 과정에서 지씨는 DJ 당선을 도왔다. 그러나 이후 어쩐 일인지 그의 이름이 자취를 감췄다. 1999년 무렵 특종을 주겠다는 지씨를 만났다. 북한이 판 땅굴이 수도권을 관통해 서해안 시흥·안산 지역까지 내려간 것으로 추정되는데 국방부가 뒷짐만 지고 있다며 개탄했다. 자기는 유사시 보트피플이 되기 위해 서해에 탈출용 배를 준비하겠다고 역설했다. ‘빨갱이 DJ’가 이를 방조하고 있다며 고발 보도를 요청했다. 그의 제보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시사IN 양한모

이듬해 또 다른 일로 기자와 틈이 더 벌어졌다.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 ‘시스템클럽’에 “대통령 경호실 요원에게 고함, 발견하는 즉시 김대중을 사살하라”는 끔찍한 구호가 올랐다.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펼친 햇볕정책에 대한 반감이라고 했다. 지씨에게 전화해 지나친 매카시즘 아니냐고 물었다. 지씨는 자기를 매카시즘으로 비판하는 기자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였다.

이후 지씨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 특수부대원 600명이 내려와 저지른 소요 사태라고 주장했다. 지씨는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 모인 시민들의 얼굴을 일일이 지목해 54명의 ‘광수(광주에 잠입한 북한 특수부대)’라고 공표했다. 이 일 때문에 지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일각에서 그런 지씨를 국회 5·18진상조사위원으로 추천하려고 했다.

서해까지 파내려온 남침용 땅굴과 600명의 특수부대. 난데없는 이 파문은 시대착오적인 냉전주의자의 ‘사기극’인가, 아니면 그를 따르는 태극기 부대의 믿음처럼 ‘애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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