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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요리사가 말하는 한국 요식업의 현실

2019년 02월 20일(수) 제596호
논산·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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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한 살 차현재씨와 요리사의 일상, 구인난과 구직난이 공존하는 요식업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다음 세대에 이어질 밥상까지 만드는 사람이 요리사라고 생각했다.


볕이 좋은 날이었다. 충청남도 논산 꽃비원에서 서른한 살 청년 차현재 요리사를 만났다. 그는 서울 핸드픽트호텔 한식당 나루, 사직동 주반 등 젊은 미식가들한테 인기 높은 업장을 거쳐, 지금은 서교동 이탈리아 식당 첸토페르첸토에서 일한다. 상업 공간뿐만이 아니다. 2017년부터 1년간은 몬트리올 총영사관 겸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 몬트리올 대표부의 주방장으로 근무한 이력도 있다. 그만큼 안팎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숙련 기술자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런 직업의식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싹텄다. “어머니가 일 나가시니까 집안일 하면서 내 손으로 해 먹는 게 당연했어요. 시장이 놀이터였죠. 채소, 반찬 가게 앞이 좋았어요. 또래 친구들이 PC방에 갈 때 <6시 내 고향>에 나오는 농작물이랑 시골 음식을 쳐다보면 그냥 좋았어요. 라면을 끓여도 더 맛있게 끓이고 싶은 꼬마였어요. 시킨 사람도 없는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요리학원을 다녔어요.”

그가 오늘 밥상을 차리는 논산 꽃비원은 텃밭에서 막 캐낸 채소로 음식을 차려낼 수 있는 공간이다. 조리 공간에는 유난히 햇볕도 잘 들었다. 별다른 조명의 도움 없이도 요리사의 몸짓, 칼질, 칼 잡은 손이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칼은 너무 길지도, 너무 둔중하지도 않은 전형적인 한국식 식칼이다. “남원 대장간에서 샀어요. 길지도 짧지도 않고 손에 딱 맞아요. 고기 썰고, 동치미 무 곱게 가르고, 나물 뚝뚝 끊고, 마늘 으깨고, 채 치거나, 나박나박 썰거나, 송송 썰거나 못 쓸 데가 없어요. 요리사는 비싼 칼 사 모으는 사람이 아니에요. 내 손에 맞는 칼을 골라, 때 맞춰 숫돌에 갈고, 날을 적절히 세워 쓸 줄 아는 사람이에요.”


ⓒ시사IN 이명익
차현재 요리사가 논산 꽃비원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그는 이른 나이에 몬트리올 총영사관 주방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물김치에 잠긴 순무와 당근에 맵시를 내면서 요리사의 말이 터졌다. 날 끝, 날, 날 뒤꿈치, 칼등을 다 쓰는 칼은 유연하게 움직였다. 칼등에는 검지가 올라가기도 하고, 엄지가 올라가기도 했다. 한손에 칼자루를 모아 쥐기도 했다. “좀 더 섬세한 칼질을 할 때에는 집게손가락, 힘을 더 줄 때 엄지를 쓴다거나, 그때그때 알맞은 자세와 칼질이 있지요.”

파인다이닝에서만 일하려는 사람들


취재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섭외를 위한 사전 만남에서, 칼에 무슨 비싼 소재를 썼다느니 장인 아무개의 작품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칼을 사 모으기는 하지만 정작 칼질에도 서툴고, 칼을 갈 줄도 모르며, 내 손과 용도에 맞게 칼을 관리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주방의 구직자가 넘치는 세태에 대한 탄식을 이미 들은 바다. 그런데 ‘그래서 못해먹겠다’가 아니었다. 이 세태 덕분에 생긴 고민을 동료, 선후배와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내친김에 단도직입했다. 온갖 미디어가 스타 셰프를 발굴해 띄우는 시대에 현장에서는 구인난으로 아우성이고, 조리학과 졸업생 또는 견습 요리사는 구직난에 시달리는 이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물었다. “본 대로 말할게요. 20대 초·중반 요리사들은 콕 집어 파인다이닝 업장에만 가려 해요.” ‘파인다이닝’은 주방장의 개성을 살린 음식과 시작·중간·마무리의 짜임새 있는 정찬 차림이 있고, 여기에 와인 또는 주류로 구색을 갖춘 식당이다. ‘캐주얼’보다 한 단계 높은 곳이다.


ⓒ시사IN 이명익
돼지감자와 우거지 등을 넣고 끓인 조치, 시금치무침, 순무물김치, 그리고 쌀밥.


“젊은 요리사들은 유명 파인다이닝 식당, 스타 주방장의 신상명세를 줄줄 외어요. 그들은 그런 데 가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어요. 그들이 직접 가기에는 음식 값이 만만찮으니까요. 거기다 자기최면도 있어요. 인스타그램, 인터넷, 방송 영상에서 본 걸 ‘안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면접 보러 온 요리사 지망생들은 처음부터 유명한 주방의 일원이길 바랍니다. 하지만 무슨 업무를 어느 수준에서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못해요. 음식만, 조리만 하겠다고 해요.”

오늘날 요식업계에서 구인난은 일상이다. 설거지하던 중에 지급받은 조리복을 입은 채로 말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출근 이틀째 문자 하나로 사직을 통보하는 사람도 많다. 일찍이 책임자급 주방 인력이 된 차현재 요리사는 이런 현실을 잘 안다. 지망생, 견습생이 특히 싫어하는 업무 목록이 있다. 주방 안팎의 청소와 정리, 그리고 설거지이다.

요리학원과 조리를 전공으로 설치한 학교에서도 익히 보았다. 많은 동료들이 요리 실습 시간에만 열정적이었다. 청소와 정리는 대강 해치우고 조리복은 사물함에 마구잡이로 구겨 넣고는 했다. 학교에서는? 짧은 시일 안에, 많은 수강자가 조리사 자격을 따게 하는 데 급급할 뿐 ‘태도’를 교육하는 데 소홀한 점이 있다. “위생은, 자격증 딸 만큼만 외워서는 안 돼요. 교차 오염을 막기 위한 도마와 행주의 깐깐한 관리, 재료와 도구 만지기 전후의 손 씻기, 조리복 간수하기의 중요함을 실제로 마음속에 새겼는가, 아니면 자격증 따느라 금지와 위법 사항만 외웠는가. 이는 현장에서 일하는 태도와 이어져요.”

배움에서 소홀하다가는 업장에서도 ‘대충’이 버릇이 된다. 스스로 무엇이 ‘비위생적이다’라고 느끼지 못하면 기본 업무가 다 귀찮은 일일 뿐이다. 이런 인력은 주방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 “대학에서도 졸업장만 따고 나서 모두 대기업만 바라보잖아요. 요리사, 요식업이라고 다르겠어요.”

시대는 변하는데 경력직 요리사의 연봉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도 큰일이다. 재료비, 월세, 기타 고정지출 비용은 오르기만 하는데 음식 값에는 변함이 없다. 최소한의 인력을 쓸 수밖에 없는 작은 식당은, 요리사로 하여금 경력에 맞게 성장할 기회를 충분히 주지 못한다. 젊은 요리사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현장에서 이탈한다. “악순환이 문제라면 선순환도 말해야죠. 손님도 음식의 가치에 대해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생각을 해주시고요. ‘서비스’를 ‘공짜’나 ‘덤’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해요. 요리사가 업장에서 준비하고, 만들고, 차려내는 데까지의 흐름을 ‘서비스’로 받아들이는 손님이 늘어나야죠. 구인난과 구직난 사이의 틈을 좁힐 실마리는 거기 있지 않을까요.”


ⓒ시사IN 이명익
차현재 요리사는 상황에 맞춰 알맞은 칼질을 할 줄 알아야 진짜 기술자라고 말한다.

그래도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묻자 ‘여전히 찾고 있다’고 했다. 어렴풋하지만 보람은 다른 데 있다고 한다. 요리사는 당장 밥을 차리기도 하지만, 다음 세대에 이어질 밥상까지 만드는 사람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저는 남들이 밥 잘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문화의 핵심인 의식주의 한 축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이 들기도 해요.”

다행히 이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동료가 있단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음식 공부를 하면서 숨통과 시야가 트이는 느낌을 받는단다. “행복하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해요. 다른 직업의 행복은 분명한가요? 살짝 행복이라든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요. 그 잠깐을 과장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행복과 고민 둘 다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시간을 만들려 해요.”

당근 뽑다 알게 된 조리의 기본기

이야기가 무르익는 사이에 음식도 잘 익었다. 평소 좋아하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음식이라며 젊은 요리사가 준비한 한상이다. 우거지와 겨울 냉이, 돼지감자와 돼지고기가 어울린 조치(바특하게 끓인 찌개), 들기름과 된장, 그리고 두부와 어간장과 참기름을 쓴 두 가지 시금치무침, 순무물김치와 잘 지은 쌀밥이 나왔다. 먹기 좋을 때 먹이려는지 손놀림이 바빠진다. 밥상에선 시금치 하나만이 추위를 이긴 푸르름으로 빛난다. 그 밖의 재료는 저장과 발효를 통해 빛깔이 바래며 겨울에 이르렀다. 자연스럽게 바랜 색채가 한결 따듯하고 자연스럽다. “이 분위기가 겨울 분위기잖아요? 뭘 유난 떨지 않아도 제철, 계절이 살아 있잖아요. 돼지감자는 껍질째 써서 향을 한층 끌어올렸어요. 뿌리채소의 껍질을 안심하고 쓴다고요? 믿고 찾는 농민 덕분에 가능해요.”

공부거리는 주방에만 있지 않았다. 밭에서 당근을 뽑고, 그 당근을 맛보면서 당근 뿌리는 물론이고 대와 꽃까지 쓰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충격이었죠. 잘 자란 당근을 뽑아 씹으니 녹진한 크림이 입안에 감도는 듯했어요. 생강 같은 매운 향, 기분 좋은 흙내, 채소 특유의 단맛 그리고 이들이 어울린 복합적인 풍미까지. 덕분에 뿌리채소를 가지고 어떤 맛의 설계, 음식의 설계가 가능하다는 감을 잡게 됐어요. 이런 게 바로 ‘베이직 퀴진(basic cuisine)’, 즉 조리의 기본기죠. 교과서에서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당근을 뽑다 깨달았어요. 재료가 자연스럽게 맛있는 상태, 그게 어떤 건지 알아야 진짜 요리사 노릇도 하죠.”

여기 눈을 뜨니 채소의 풍미를 지니고 발효한 김치, 물김치의 신맛이 더욱 각별해졌다. 발효의 산미, 특히 젖산발효에 따른 매력적인 둥근 산미를 보다 적극적으로 쓰게 되었다. 나아가 날카로운 산미에 견주어 둥근 산미를 어떻게 표현해야 주방에서 함께 이 감각을 공유하고 함께 공부할 수 있을까 하는, 요리사로서 즐거운 숙제까지 얻게 되었다고 한다. “여전히 일하면서 실수하고, 배우고, 반성하고 있어요. 경력이 꽤 쌓였다고 말하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마주 앉은 밥상 건너에서 기술자의 마음이 전해졌다. 듣고 보니 순무물김치는 더욱 상쾌했다. 겨울 오후의 날빛은 한층 밝고 맑았다. 마음도 밥상도 이야기도 모두 소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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