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수선을 맡기러 아웃렛 매장에 가는 길이었다. 매장 근처에 주차를 하려고 주위를 돌다가 젊은 사람들이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한눈에도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핸드마이크를 쥐고 피켓을 들었고, 몇 발자국 떨어져 남녀 두어 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피켓에는 ‘갑질 근절’ ‘비리 규탄’ 같은 구호 몇 개가 적혔을 뿐 그 내용만으로는 이들이 누군지, 어떤 이유로 1인 시위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주변에 붙어 있는 현수막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신발을 맡기고 차를 돌려 나오는데 아직도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그들을 보았다. 호기심이 발동한 건 그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장난을 치고 잡담을 하며 삐딱하게 건성으로 서 있는 모습이 일반적으로 무겁고 진지하기 마련인 시위 모습과 너무 달랐다. 결국 차를 한쪽에 세우고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1인 시위 알바 하는 겁니다”
“어떤 이유로 1인 시위를 하는 거예요?” “아, 예…. 저희는 갑질 근절과 비리 규탄을 위해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혹시 갑질 내용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피켓에 적혀 있는 것만 봐서는 어떤 일인지 알 수 없어서요.” 이런 질문이 낯설었던지 근처에 서 있던 동료에게 손짓을 했다. “이곳 아웃렛 매장 안에 커피숍이 있는데 매장에서 갑질을 해서 1인 시위를 합니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알바 하는 거예요?” “네, 저희는 1인 시위 알바 하는 겁니다.”
1인 시위 알바라고?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시간당 2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고객이 붐비는 주말 점심시간부터 저녁 시간까지 6시간을 했는데, 이제는 가격이 깎여 시간당 1만원을 받으며 6시간을 한다고 했다. 집회 신고도 낸다고 했고, 용역 업체를 통한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일을 구했다고도 덧붙였다.
커피숍 사장이 바쁘면 대신 1인 시위를 맡길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사람과 마네킹의 차이가 뭔가 싶었다. 주유소 앞에서 춤추는 바람 풍선이 생각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시위에 알바를 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1인 시위라는 게 그저 피켓을 들고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나. 대신 든 저 피켓에 묻어 있는 억울함은 무엇일까. 보는 이들이 동의할 만한 부당함의 근거를 도대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노동운동 언저리에서 근 20년을 함께한 사람으로서 무력감마저 들었다. 도대체 시위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항의와 저항의 마지막 수단마저, 억울함의 진정성마저 돈 몇 푼으로 대신 할 수 있는 이 진절머리 나는 효율과 편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청년들의 일자리가 그만큼 모자란다는 것일까. 볕 좋은 봄날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악착같이 싸우는 동료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나는, 감정이입이 과했나 싶을 만큼 그 장면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해고된 기간에 1인 시위를 많이 했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는 1인 시위가 힘들었다. 출퇴근길에 스쳐 지나가는 옛 동료들 속에 우두커니 서 있을 때면 유령이 된 것처럼 비참했다. 나눠주는 홍보물을 받지 않을 때는 야속하기보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저 서 있기만 하는 것처럼 보여도 무수히 많은 생각이 흐르기 일쑤다. 많은 경우 1인 시위는 절박함에서 비롯된다. 낡은 피켓을 들고 지나가는 이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목소리도 높인다. 어쩌면 사소한 일일지도 모를 1인 시위 아르바이트가 특별히 더 마음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전히 몸을 던져 싸우는 이들과 그들과 기꺼이 연대하는 이들이 있음에도, 얼마든지 사람을 사서 시위를 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시위도 돈 몇 푼으로 교환되는 가치가 되었다. 인도 속담에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저항까지 대신 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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