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일주일 뒤 용씨는 학교에 대자보를 붙였다. 가만히 공부하고, 가만히 스펙 쌓아, 가만히 결혼하라는 ‘교육’의 결과가 이러한 참사를 낳았다는 내용이었다. 노란 리본도 나눠주었다. 청와대 게시판에 침묵 행진을 제안했다.
글을 올린 지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4월30일, 시민 250여 명이 침묵 행진에 함께했다. 검은 옷을 입고, 노란 리본을 묶은 국화 한 송이를 손에 쥐고, ‘가만히 있으라’고 적힌 종이를 다른 한 손에 든 채 묵묵히 인도를 따라 걸었다. 추모의 의미를 담은 침묵과 행진 외에 어떠한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주변 상인들은 가게 음악소리를 줄이고 문밖으로 나와 두 손을 모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침묵 행진은 4월30일에 이어 5월3일, 5월10일에도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