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중음악상(이하 한대음) 후보가 발표되었다. 음악평론가라는 직업 관련 프로필을 적을 때,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와 더불어 가장 큰 뿌듯함을 선물해주는 명칭이 바로 한대음 선정위원이다. 한대음이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걸은 건 아니었다. 낮은 인지도와 부족한 지원에 허덕일 때가 많았다. 이제는 후보로 선정된 뮤지션들이 앞다투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모습을 본다. 이 직업을 선택하길 잘했다 싶은 순간이다.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한대음은 분과별로 운용되는데, 내가 속한 록·모던록 분과 외의 장르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거다. 나에게만 하루가 48시간 주어지지 않는 이상 모든 음악을 챙길 순 없다. 노력해봐야 록과 팝 정도가 한계다. 심지어 지난 1년간 발매된 록과 모던록 음악들을 다시 점검하느라 며칠을 써버려야 했다. 이 이상은 적어도 나에게는 무리다.
이름이 좀 알려지다 보니 광고 비슷한 것도 했다. 스마트폰 지면 광고였다. 냅다 수락한 건 아니다. 사운드에 심혈을 기울인 스마트폰이라는 게 광고주의 주장이었는데, 직접 들어보니 수긍할 만한 퀄리티였다. 그래서 수락했고 돈 좀 벌었다. 그 돈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원하게 술을 쐈다는 건 비밀로 해달라.
한 유명 평론가가 최근 광고로 구설에 올랐다. 그걸 보면서 직업윤리를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금 깨닫는다. 먼저, 그가 특정 음식을 맛없다고 단언한 것에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근거를 댈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그와 같이 강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평론가로서 대단히 용기 있는 태도라고까지 여겼다. 이런저런 자리를 통해 그의 팬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기대가 컸다는 의미다.
그의 말마따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광고를 찍을 수 있다. 평론가·칼럼니스트라면 문제가 좀 다르다. 평론가는 광고를 하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유명인보다는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광고에서 내뱉는 말이 곧 평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맛없다고 주장한 음식이 맛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본다. 떡볶이와 치킨 말이다. 그러나 어떤 프랜차이즈 커피가 황금비율이라고 단언하고 특정 떡볶이 브랜드 모델로 나선 순간, 그 말들은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떡볶이의 경우 모델료로 기부했고, 성인 안주 개념이었다는 걸로 집 나간 설득력을 회복할 순 없다.
광고모델이 되는 순간 평론가의 옷을 벗는 그
그는 “한국 대중음악 수준이 높지 않다고 말한 사람도 방탄소년단 음악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라며 변명했다. 그렇다면 왜 ‘그’ 커피가 황금비율인지, 다른 라면들에 비해 뭐가 특별해 ‘그’ 라면의 모델을 한 것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그는 “소비자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라며 반론했다. 소비자의 판단에 맡길 거면 평론가라는 직업은 대체 왜 존재하는 건지 묻고 싶다. 그는 광고모델이 되는 순간에만 평론가의 옷을 스윽 벗어던졌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돈이 들어올 기회가 생긴다면, 솔직히 나도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 직업에 대해 최소한 윤리적인 마지노선을 지키려 애쓸 것이다. 본보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반면교사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BBC의 기대주, 예지의 특별함 [음란서생]
BBC의 기대주, 예지의 특별함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아델, 코린 베일리 래, 킨, 미카, 샘 스미스의 공통점은? 모두 다량의 히트곡을 보유한 인기 가수나 밴드다. 진짜 정답은 다음과 같다. 위에 언급한 이름들을 ‘(훨씬) 먼저’ 주...
-
이토록 매력적인 탈세범이라니 [음란서생]
이토록 매력적인 탈세범이라니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느덧 유투(U2)라는 밴드가 공연계의 거물로서만 의미 있다고 평가를 끝내버린 경우가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들의 2014년 ...
-
모든 세대엔 자기만의 사운드트랙이 있다 [음란서생]
모든 세대엔 자기만의 사운드트랙이 있다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지난주 한대수 선생이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이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제법 화제를 모았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그 글의 요지는 “요즘 음악은 1960~1970년대와 비교해 수준이...
-
록 우월주의에 대한 음악 처방전 [음란서생]
록 우월주의에 대한 음악 처방전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ABTB. ‘Attraction Between Two Bodies’의 준말이라고 한다. 해석하면 ‘두 물체 간의 이끌림’인데, 만유인력의 법칙을 풀이한 거라고 부기되어 있다. 과연...
-
오늘 당신은 어떤 음악 들었나요 [음란서생]
오늘 당신은 어떤 음악 들었나요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먼저, 자기 고백부터 해본다. 나는 나라는 인간이 진짜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심이다. 그러나 동시에 내 취향에 대해 노력하고 쌓아온 것들에 대한 작은 자부심 정도는 지니고 있...
-
실패할 수 없는 시대의 선곡 서비스 [음란서생]
실패할 수 없는 시대의 선곡 서비스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지인 소개로 음악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미국에서 일하는 그와 꽤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는데,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어 적어본다. “지금 미국 시장에서 가장 ...
-
최정상을 비난하는 개똥 같은 이유 [음란서생]
최정상을 비난하는 개똥 같은 이유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브루노 마스. 팝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가 없는 최고 인기 뮤지션이다. 만약 그 이름이 낯설다면 이 곡부터 감상해보길 권한다.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