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 단위마다 협동조합·사회적 기업·마을기업을 지원하는 권역별 통합중간지원조직이 있다. 이들에게 주목할 만한 ‘지역의 사회적 경제’ 조직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귀농·귀촌·이촌한 이들이 주도해 마을사람들과 함께 만든 조직이 눈에 띄었다. 시골과 사회적 경제는 어떻게 만나는가. 울산 울주군, 충북 제천시, 경북 예천군에서 사회적 경제의 길을 개척하는 이들을 만났다.
■ 소호산촌협동조합
산촌유학 마을에 야생차 피네
400년 넘은 느티나무가 마음을 붙들었다. 손성호씨(47)는 2004년 울산 울주군에 있는 상북초등학교 소호분교를 찾았다. 아이들이 운동장 양 끝에 골대를 세워두고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공이 느티나무 가지에 맞아 다른 방향으로 튀어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교사인 아내 김미진씨(47)는 대구에 있는 초등학교를, 손성호씨는 부산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직장 때문에 떨어져 살던 부부는 울산에서 살림을 합치기로 하고 이주할 곳을 찾고 있던 터였다. 교사인 아내는 ‘작은 학교에 아이들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부는 느티나무가 있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서 이주를 결정했다.
소호마을에 들어온 이후, 이들보다 몇 년 앞서 이촌한 김수환(55)·유영순씨(52) 부부 등과 ‘마을에서 먹고살 방도’를 의논했다. 뭘 하면 좋을까. 몇 달 동안 회의를 했다.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산촌유학’이다. 아이들이 시골로 유학 와 농가에서 1년 동안 생활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부족해 소호분교가 폐교될 수도 있을 상황이었다. 1기 산촌유학생 3명이 마을로 왔다. 도시에서 온 아이들은 1년 단위로 농가에서 생활하며 소호분교를 다닌다. 방과 후에는 소호산촌유학센터에서 놀다가 저녁에 농가로 간다. 산촌유학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쓰지 않는다. 자기가 먹은 것은 스스로 설거지하고, 텃밭 농사를 같이 해야 한다. 올해로 산촌유학 8기생을 맞았다. 열 명 안팎이었던 소호분교 학생 수는 40여 명까지 늘어났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온 이들은 원주민과의 갈등을 애로 사항으로 꼽는다. 이곳에서도 그랬다. 마을에 아이들이 많아져 ‘시끄럽다’고 싫어하는 이도 있었다. ‘소호마을’ 이름을 팔아 먹고산다는 말도 들었다. 갈등에는 시간이 약이었다. 마을 가구에 산촌유학생이 5일간 머무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간극을 좁혀갔다. 우수 마을기업으로 선정되었을 때, 마을사람을 초청해 잔치를 열기도 했다.
소호산촌협동조합이 생기고 마을에 작은 변화도 생겼다. 이들의 활동을 보고 마을사람들이 협동조합 만드는 걸 도와달라고 요청해왔다. 그렇게 마을사람들이 중심이 된 소호사과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절임배추 작목반도 만들어졌다. 손성호씨가 1대 총무를 맡아 관청에 제출해야 할 문서를 작성해주는 등 실무를 도왔다.
산촌유학 등으로 ‘소호산촌’이 유명해졌다. 손성호씨가 이사 왔을 때만 해도 90가구였는데 230가구까지 늘었다. 부작용도 생겼다. 이 마을에 전원주택을 지은 이들은 마을과 교류가 거의 없었다. 대신 땅 값이 많이 올랐다. 손성호씨는 “올해부터 생산도 하고 체험도 할 수 있는 야생차 밭을 만들려고 하는데, 땅값이 너무 올라 구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협동조합을 어떻게 운영할까’ 하는 점도 고민이다. ‘산촌유학’을 운영하면서 부업 정도로 하자는 의견도 있고, 주력 사업으로 밀자는 이도 있다. 함께 논의하고 연구 중이다. 그럼에도 하나는 분명하다. “돈도 벌어야 하지만 같이 가야 한다고. 같이 일하는 즐거움을 잊지 말자고(손성호씨).”
■ 농촌공동체연구소
몸으로 연구하고 실천으로 바꾼다
제천역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 인구가 2300여 명인 제천시 덕산면에는 ㈔농촌공동체연구소가 있다. 한석주 상임이사(52)는 이곳에서 지역의 사회적 경제에 대해 ‘연구 아닌 연구’를 하고 있다. 그가 제천에 온 지 13년째다.
한석주 이사는 교사 출신이다. 서울 강남에 있는 여자중학교에서 11년 동안 도덕과 역사를 가르쳤다. 활동·답사 중심의 수업을 하는데도 결국은 아이들이 시험 성적으로 귀착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이들의 삶을 갉아먹는 교육이 사회를 삭막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사표를 내고 서울 성미산학교 설립 교사 추진위원장으로 일했다. 2년가량 일을 하다가 2005년에 대안학교인 제천 간디학교의 고교 과정을 설계하러 내려왔다. 간디학교에서 2년 동안 교사로 일했다. “학교만 갖고는 우리 삶을 바꾸는 데 한계를 느꼈다. 간디학교 근방에서 배운 것을 실천할 수 있는 공동체 마을을 이루고 싶었다.” 그는 교단을 떠나 마을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한 일은 공부방 만들기였다. 덕산면만 해도 6개이던 초등학교가 한 개로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마을의 교육 환경이 좋아져야 했다. 공부방을 만들었고, 이는 ‘누리꿈터’라는 지역아동센터로 발전했다.
그다음에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두었다. 덕산면에만 결혼 이주여성이 30명 안팎이었다. 기존 다문화가정지원센터는 ‘한국 사회 적응’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엄마(부모)를 존중하지 않는 아이는 사회에서 제대로 역할을 못한다. 엄마가 자아실현을 하고 긍정적으로 살면 아이도 엄마를 달리 보게 된다.” 그는 덕산면에 누리어울림센터를 세웠다. 결혼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오전에는 한국 적응 교육, 오후에는 자아실현을 위한 직업교육을 했다. 또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함께하는 누리자람어린이집을 만들었다.
2010년에는 누리마을 빵카페를 열었다. 삼선재단이 3000만원을 지원하고 한석주 이사의 지인 300여 명이 십시일반 기부를 해 누리마을 빵카페를 열었다. 빵공장·빵카페에서 간디학교 졸업생·귀촌인 등 12명이 일한다.
농촌공동체연구소는 ‘면 단위 민간 중간지원조직’이란 말이 어울린다. ‘중간지원조직’이라는 용어를 쓸 때, ‘중간’은 관(행정기관)과 민(민간인)의 사이를 뜻한다. 그동안 관에서 지원했던 일을 현장에 맞게 효과적으로 지원한다. 연구소는 덕산면에 여러 협동조합이 탄생하는 데 기여했다. 한석주 이사는 전통시장 상인 53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한 청풍명월덕산전통시장협동조합에 참여했다. 전통시장이 만든 최초의 협동조합이다. 처음에는 기획이사를, 지금은 이 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일찍부터 협동조합 연구모임을 만들어 전국 여러 협동조합을 탐방했다. 그 결과 귀촌자 20여 명이 만든 먹거리나눔 협동조합 파릇,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덕산누리협동조합 등이 만들어졌다. 덕산의 청년들이 지역의 집을 짓고 보수하는 마을 공동체 작업장(마을목공소)을 만들어 법인으로 독립시켰다.
한석주 이사가 요즘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두레농장이다. 공유지 3000평을 구해 이곳에서 농사를 지을 도시 회원을 모집했다. 25명이 1년에 20만원씩 회비를 내고 농사를 짓는다. 회원은 농장에서 생산한 농산물(10만원 상당)을 받는다. 10만원은 농사 비용 등으로 쓴다. 한 이사는 “농민이 전체 인구의 5%이다. 나머지 95%가 농촌과 농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농민의 삶이 달라진다. 도시와 농촌이 연계하는 두레농장 같은 프로그램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사람과 물자가 선순환하는 지속 가능한 마을 공동체. 농촌공동체연구소의 한석주 이사는 그 목표를 향해 덕산면이라는 공간을 바탕으로 몸으로 연구를 해나간다.
■ 한국에코팜
주말이 있는 농업의 미래
김영균(42)·김상균씨(39). 경북 예천에서 두 사람은 ‘용감한 형제’로 통한다. 형제는 고향에 내려와 2012년 사회적 기업 한국에코팜을 세웠다. 23세 청년에서 84세 노인까지 직원 8명이 일하는 농업회사법인이다.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에 있는 유일한 농업회사다.
도시 생활을 하던 형제는 ‘언젠가 고향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었다. 대구에서 농산물 납품회사에 다니던 동생 상균씨가 2005년에 먼저 내려왔다. 주말마다 내려와 동생의 농사를 지켜보던 형 영균씨도 2011년 서울에서 하던 아동용품점을 접고 귀농했다.
두 사람이 관심을 둔 일은 채종업이었다. 이듬해 농민들이 심을 씨앗을 생산하는 일이다. 원종을 받아 심고 중간 중간에 다른 색깔의 꽃이 피면 솎아내 혼종을 방지한다. 종자 전용 농기계로 수확을 하고, 선별장에서 벌레 먹은 것이나 찌그러진 것 등을 제외하고 대·중·소 크기별로 구분한다. 이전에는 토마토 등 과채류 종자도 생산했다. 토마토 씨앗은 1㎏에 300만원 가까울 정도로 가격이 높다. 하지만 나이 든 직원들이 일일이 섬세한 인공수분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아 과채류 종자 생산은 접었다.
동생 상균씨도 처음에는 관행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관행농만으로는 미래가 없어 보였다. 그러다 종자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채종업의 시장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형제는 물을 많이 주었다가 적게 주었다가, 온도를 높였다가 낮추었다가, 검은 비닐을 씌웠다가 흰 비닐을 씌웠다가 하는 식으로 채종 기술을 몸으로 익혔다.
둘이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데, 왜 사회적 기업을 하게 되었을까. 형제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어릴 적에 부모님이 품팔이로 하루 13시간씩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는 것을 보았다. 주말이 있는 농업을 만들고 싶었다. 다음 세대가 농업에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뭔가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김영균씨).”
회사 설립 초기에 70대 노인 다섯 명이 일을 했는데 일요일에도 새벽에 출근했다. “평생 일요일도 새벽부터 나와 13시간씩 일하던 분들이다. 빨간 날에는 안 나오셔도 된다고 해도 나오시더라. 빨간 날에 안 나오면 월급에서 돈이 빠지는 줄 알고 나오시는 거였다. 미안해하지 말고 안 나오셔도 된다고 했다(김영균씨).” 주말이 있는 농업. 한국에코팜을 통해 두 형제가 해보고 싶은 일이다.
농업회사법인으로 안정적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1년에 한 번 수확을 해야 돈이 생기는 농업 특성상 매월 월급 맞추기가 어렵다. 그래서 3년 전부터는 ‘경관 조성’ 일을 시작했다. 부산, 대구 등에 있는 유채단지와 코스모스단지에 씨를 뿌려 꽃피우는 일이다. 지역 농민들과 같이 가서 ‘꽃피우는 농사’를 짓는다. “원래 조경회사가 하던 일이다. 씨 심고 꽃피우는 게 농사일과 같아서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일거리를 따냈다. 직원 월급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김상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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