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임 개발사 정규직 일러스트레이터가 메갈리아(메갈)로 ‘적발’됐다. 자신의 SNS 계정으로 한국여성민우회 등을 팔로잉했다는 이유였다. 개인 계정에 사과문을 올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회사 대표는 해당 일러스트레이터와 면담한 내용을 Q&A로 정리해 공지로 올렸다. 요약하자면 “해당 직원을 조사해보니 ‘사회적 분열과 증오를 야기하는’ 메갈이나 페미니즘 같은 ‘반사회적인 사상’에 물든 게 아니라 그저 뭘 잘 모르고 한 일”이라는 내용이었다. 게임 유저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공지 밑에는 메갈이 분명한데도 해고하지 않았다며 ‘분노한 남자들’의 게임 불매 선언 댓글이 이어졌다.
이런 ‘사상 검증’으로 인한 노동권 침해가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2016년 이른바 ‘왕자티 사건’이 있었다. 어느 게임 제작에 참여한 프리랜서 여성 성우가 ‘Girls Do Not Need a Prince(소녀들은 왕자가 필요 없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개인 SNS에 올린 게 계기였다. 일군의 남성 유저들은 그녀가 메갈과 연관이 있다며 게임사에 항의했다. 회사는 성우와 ‘협의’해 작업한 분량을 빼기로 했지만 프리랜서에게는 사실상 해고였다.
지난 3년간 남성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메갈 검증’ 행렬은 자못 비장하다. 이 남자들은 심지어 일베가 아니다. 아닐 뿐만 아니라 일베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가장 강력한 정당성이자 자부심으로 삼는 이들이다. 이들의 주된 주장은 ‘(변질된) 페미니즘이 곧 메갈이며 이는 일베와 다름없기 때문에 사회에서 척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활약이 가장 도드라지는 분야는 게임이다. 한국 문화계를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남성에 의한 매출이 여성에 의한 것보다 높은 시장이 게임이다. 〈2017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남성은 이용자 수와 사용 액수에서 모두 여성을 앞섰다. 게임 개발자의 약 80% 역시 남성이다. 즉, 기획·제작·소비 모두 남성이 주도하는 분야가 게임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여성 소비자와 여성 종사자 수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이와 함께 게임 내 차별적 요소에 대한 지적도 증가해왔다. 이러한 지적은 남성들에게 자신들의 ‘영역’에 대한 일종의 ‘침공’처럼 느껴졌다. 이들은 노출이 심한 여자 캐릭터와 여성에 대한 모욕적 표현, 오로지 남자들만 게임에 대해 논할 권리를 사수하고자 한다. 또 페미니즘이 나치즘보다도 나쁘다 (‘페미나치’)라고 단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유엔 산하기구들의 여성 통계가 다 조작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게임 안팎에서 발생하는 차별적 요소에 대한 논의의 장 마련돼야
결국 문제는 게임에 대한 사회적 통제다. 그간 한국의 게임 정책은 ‘돈을 버는 게임’과 ‘우리 아이 성적을 망치는 게임’의 엇박자 사이 어딘가에 위치했다. 30대 이하 청년 세대 남성들의 가장 보편적인 놀이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영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 사회적 표현물로서 게임이 갖는 효과와, 게임 안팎에서 발생하는 차별적 요소에 대한 논의의 장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동시에 금지나 방기의 양극단에서 벗어나, 게임이라는 매체를 이해하고 잘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R. W. 코넬은 그의 저서 〈남성성/들〉(이매진 펴냄, 2013)에서 “항의하는 남성성”을 설명하며 “골칫거리는 그 수행이 이 남자들을 어느 곳으로도 데려가지 않는 것이다”라고 썼다. 그 말 그대로다. 형제여 어디로 가려는가? 미안하지만 지금 가고 있는 그 길은 막다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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