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소식지 등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택배 기사가 인기 직업이다. 고객이 돈을 송금하면, 업체가 상품을 우송해준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무척이나 일상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송금과 택배가 가능하다는 것은 사실 매우 신기한 일이다. 북한에는 은행이 없기 때문이다. 은행이 없으니 고객과 업체 역시 은행 계정을 가지지 못한다. 그렇다면 북한 인민들은 어떻게 송금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정리하자면, 이미 초기 단계의 금융업을 운영 중인 돈주들 덕분에 송금이 가능하다. 예컨대 평양의 ㄱ씨가 함경북도 청진의 ㄴ업체로부터 1000원 상당의 상품을 매입하려 한다고 치자. 은행이 없으니 그는 같은 지역인 평양의 ‘돈주 금융업자’를 찾아가 1200원을 준다. 물품 대금 1000원에 수수료 200원을 합친 금액이다. 평양 돈주는 요즘 북한에서도 대중화된 휴대전화로 청진의 돈주 금융업자에게 요청한다. “그곳의 ㄴ업체에게 1000원을 줘.” 이로써 평양 돈주는 청진 돈주에게 1000원과 일정한 수수료(예컨대 100원)를 지급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그러나 청진의 돈주 역시 평양 돈주에게 비슷한 내용의 요청을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두 돈주는 일정 기간 상대방의 주문을 이행한 뒤 만나서 오간 돈의 차액을 주고받으면 된다. 시장경제 시스템에서는 소비자-일반은행-중앙은행 사이의 전산망을 끼고 이뤄지는 상당히 복잡한 청산·결제 업무가 북한에서는 ‘휴대전화를 든 돈주’ 사이에서 해결되는 것이다.
북한의 돈주 금융업자들은 대출 영업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북한 인민들은 목돈을 대출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주택은 국가가 제공하고, 창업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발전으로 소비재가 다양하게 늘어나고 개인 사업에 진출하는 인민들도 많아지면서, 대출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발생한다. 불법이지만 대출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추세에 편승한 게 돈주들이다. 다만 한국의 사채와 마찬가지로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금융업에서는 참혹한 일이 예사로 일어난다. 북한 당국이 경제개발은 물론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관련 법률을 제정해 규율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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