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1일과 1월1일. 하루 차이인데 우리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일출을 보고 새해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상’조차 빼앗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울 목동 75m 굴뚝 농성을 이어가는 파인텍 노동자들, 택시 전액관리제 시행을 요구하며 전주시청 앞 조명탑에 오른 택시 노동자, 스물네 살 아들을 산업재해로 잃은 어머니.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 비정규직 노동자, 성폭력과 성차별에 노출된 여성들. 이들은 12월31일에도, 1월1일에도 바뀌지 않는 세상을 향해 거리에서 하늘에서 각자의 싸움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제가 오늘 같은 이들이 또 있습니다. 신년호에 예멘 난민을 다시 커버스토리로 올립니다. 〈시사IN〉은 2018년 7월 ‘8000㎞ 건너온 낯선 질문(제563호)’이라는 커버스토리로 예멘 난민을 다뤘습니다. 2018년 무사증 제도를 이용해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인 500여 명은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난민’이라는 낯선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 질문에 ‘2018년식 답’을 내놓았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알듯 연대와 혐오, 또는 무관심입니다.
그런데 이 낯선 질문은 2019년에도 유효합니다. 1992년 난민협약과 의정서를 비준한 한국은 이듬해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며 난민제도를 정식으로 도입했습니다. 2001년 2월에야 ‘1호 난민’이 나왔습니다. 제도는 도입했지만, 9년간 난민 인정에 인색했습니다. 2013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다고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3.5% 수준입니다. OECD 회원국 평균 난민 인정률은 24.8%입니다. 예멘 난민 신청자 484명 가운데 단 2명만 난민으로 인정했습니다(지난 12월14일 기준). 인도적 체류허가를 ‘412명이나 허용했다’며 만족해야 할까요? 2019년 새해, 우리 사회는 새로운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배우 정우성씨는 2014년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난민에 대한 혐오 정서는 2018년 그에 대한 악플 공세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달리 대응했습니다. 난민에 대해 왜 그런 비난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악플도 두 번씩 읽었다고 합니다. 그는 난민을 넘어 인권과 시민, 공심을 말합니다. 정우성씨와 함께 독자 여러분들도 2018년과는 다른, 새로운 답을 찾는 여정에 나섰으면 합니다.
1월1일 그래도 희망을 품어봅니다. 홍기탁·박준호씨가 75m 하늘 감옥에 갇힌 지 411일째 12월27일 파인텍 노사가 교섭을 시작했습니다. 이날 아들을 잃은 어머니 김미숙씨의 바람대로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새해에는 이런 희망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기원합니다. 2019년 한 해도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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