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거의 모든 일간지에 얼굴 사진 두 장이 나란히 실렸다. 장본인은 승리와 정준영. 이른바 ‘버닝썬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들이 경찰에 출석할 때 찍힌 사진이었다. 버닝썬 사건은 강남의 잘나가는 클럽에서 일어난 작은 폭행 논란이 발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확대되어 어디까지 파장이 미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신문은 1면 머리기사와 아무 상관이 없음에도 두 장의 사진을 같은 크기로 비교라도 하듯이 나란히 실었다. 대부분 왼쪽에는 정준영, 오른쪽에는 승리를 배치했다.
누군가는, 한 사람은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평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꽁지머리에 머리카락 일부를 얼굴 앞으로 늘어뜨리고 눈을 위로 치켜뜬 정준영이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 터이다. 중요한 것은 얼굴 사진도 다른 사진들이 그렇듯 맥락에 따라 달리 읽힌다는 점이다.
사진이란 독립적인 이미지가 아니다. 어떤 문맥 속에 들어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힌다. 그 문맥은 대부분 사진 읽기의 방향을 결정짓는 텍스트에 달려 있다. 모든 신문·잡지에 실리는 사진은 그냥 사진만 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진 내용을 해설하는 글이 반드시 뒤따른다. 이를 롤랑 바르트는 ‘닻 내리기’라고 불렀다.
사진설명이 유도하는 ‘의미의 정박’
바르트에 따르면 사진 이미지는 그것을 읽는 데 특별히 정해진 코드가 없고, 해석의 폭이 너무 넓다. 광고나 신문 등 사진을 사용하는 매체에서는 독자가 그 사진을 읽을 수 있는 방향을 문자로 제시해준다는 것이다. ‘닻 내리기’는 ‘의미의 정박’이라고도 하는데 신문·잡지에 실린 사진에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사진을 특정한 방향으로 읽도록 유도하는 캡션이 달린다. 그래서 같은 사진이라도 캡션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매체에 쓰이는 사진이란 대부분 문자로 된 기사를 생생하게 증명하는 보조 역할을 한다. 사진은 기사의 주인공이 아닌 셈이다. 해설 없이 사진 한 장이 신문 전면에 실리는 경우는 다르게 해석해도 별문제가 없거나, 도저히 다른 해석을 할 수 없는 사진일 경우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소리를 완전히 없애고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 안다. 게다가 자막도 없다면 화면에 보이는 영상 대부분은 의미가 불확실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사진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 보이고 다르게 읽힌다. 승리와 정준영 사진도 다른 상황에서 달리 실렸다면 범죄 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빅뱅의 멤버 승리, 장난기 많은 가수이자 예능인 정준영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이미 버닝썬과 마약, 성접대 의혹, 몰카 동영상 공유 등을 알고 있는 독자 대부분은 그들 사진에서 범죄 피의자의 기운을 읽게 된다. 사진 아래 쓰인 캡션은 그런 심증을 더 굳히는 구실을 한다. 즉 확실히 ‘닻’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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