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생존자 장애진씨(27)는 참사 이후 진로가 바뀌었다.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하기 위해 응급구조학과를 선택했다. 대학 졸업 후 안산의 종합병원 응급실 두 곳에서 3년 가까이 응급구조사로 일했다. 현재 그는 현장 초기대응 역할을 하는 구급대원이 되기 위해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생존자라는 말이 불편하진 않아요.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니까요. 참사가 일어난 것이 저에게 불편한 것이지, 생존자라는 말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생존자로서 공개 활동이나 언론 인터뷰를 했던 이유는, 당사자와 유가족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다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참사에 대한 사실을 잘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혼자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해요. 출근 전 카페에 가는 것도 좋아하고요. 일에 지쳐 있을 때는 계속 집에만 있기도 해요.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스스로 잘 회복하는 성격이에요. 그리고 저의 방법 중 하나는 타투를 하는 거예요. 양쪽 팔에 다양한 타투를 새겼어요. 가장 먼저 했던 노란 리본 타투는 세월호 노란 팔찌를 생각하고 했어요. 왼쪽 팔에 있는 타투는 친구들을 아직도 그리워하고, 잊지 않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싶어서 도면을 요청한 거예요. (그림을 보여주며) 이건 바다이고, 바다를 보는 단원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저예요. 옆에 있는 물망초의 꽃말은 ‘잊지 말아주세요’예요. 이건 별이고요.
친구와 이태원 참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돌아가신 분들은 ‘사망자’가 맞지 않으냐고 했어요. 저는 정부가 사용한 그 단어에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희생자’가 맞는 말이라고 했죠. 그건 막을 수 있는 참사였으니까요. 그 친구는 ‘왜 정부가 그렇게까지 책임을 져야 해?’라고 물었어요. 저는 ‘예를 들어 병원에서 가장 연차가 낮은 간호사가 실수를 하면 그보다 높은 연차의 간호사에게, 그다음 수간호사에게, 최종적으로 병원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책임이 넘어간다. 그게 맞는 것 아니야?’라고 되물었어요. 그제야 이해를 하더라고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이 지금 싸우는 모습을 보면 세월호 때와 비슷한 것 같아요. 사람들의 관심이 적어서 많이 안타까워요.
저는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요.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는 생각이 들어요. 해결된 것이 없는데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재난에 관한 매뉴얼이 있으면 활용을 하고 잘 지켰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정부가 참사의 기억을 지우려 하지 말았으면 해요. 미국 뉴욕시 그라운드 제로에 세워진 ‘9·11 테러 추모공원’처럼, 한국도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을 배우면 좋겠어요. 피해자가 나서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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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온마음센터 김선식 팀장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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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 이유림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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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림씨(22)의 가방에는 칠이 벗겨진 세월호 배지가 달려 있다. 2018년부터 달고 다녔다. 이 배지는 중국의 상하이 한인고등학교 2학년 때, 교내 동아리에서 기부 목적으로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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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4반 김건우 학생의 누나 김송이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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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이씨(35)는 2학년 4반 김건우 학생의 누나다. 15년 차 타투이스트다. 참사 이후 유가족 여러 분에게 타투를 해준 적 있다. 어떤 어머니의 가슴팍에는 아이의 이름과 주민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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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6반 권순범 학생의 누나 김소리씨(34)는 표정을 숨기며 살아왔다. 엄마들에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괴로울 때면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울었다. 참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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