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황당한 소설을 읽었다. 타격 폼이란 조촐한 꿈을 표현하는 방식이거나 조리 있게 무언가를 희망하는 갈망의 진동수 같은 것이라고 떠드는 소설이었다. 또한 타격 폼은 남다른 꿈을 좇는 자세이어야만 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든 웃기거나 극복해보려는 자세여야 한다고 저자는 썼다. 아니라면 미안하다,라고까지.

어떤 거지 같은 놈이 쓴 소설(박상 〈이원식씨의 타격폼〉)인지는 모르겠지만 ‘꿈을 표현하는’ ‘부조리를 웃기거나’ 같은 부분에는 살짝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게 야구란 그야말로 인생의 꿈이고, 둥근 것으로 둥근 것을 때리는(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에 나오는 말) 식의 매우 부조리해 보이는 행위를 통해 세상 일의 부조리를 비웃어주려는 것임에 틀림없어 보이거든.

자, 그런 의미에서 나를 매료시킨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타격 폼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리 긴 이야기는 아닐 테니 저 구석에서 자는 분 좀 깨워주길 바란다.

박정태 선수는 몸을 잔뜩 움츠린 채 흔들흔들거리다가 벼락같이 공을 때렸다.
나는 사회인 야구를 하면서 첫 시즌에 4할을 때렸다(사회인 야구 3부 리그에서 4할은 그냥 ‘껌이다’). 그런데 ‘6할도 못 치는 쓰레기’가 되고 싶지 않아서 베이스볼 아카데미 같은 곳에서 정식으로 타격 폼을 배웠다. 선수 출신의 코치는 내 타격 폼에 대해 “어떻게 그런 폼으로 신성한 타격 행위를 하려고 해!” 하며 경악한 뒤 단호한 교정을 감행했다. 정통적이고 바른 타격 폼. 이론상으로는 가장 정교하게 타격할 수 있고 타구에 힘을 많이 실을 수 있는 자세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교정한 타격 폼으로는 안타를 한 개도 때리지 못했다. 나는 어떤 정공법이 옳다는 것만 참고하고 개리 셰필드(박찬호와 LA 다저스에서 함께 뛴 강타자)의 ‘깨방정 방망이’, 토니 바티스타(2000년대 초 이름을 날린 메이저리그 타자)의 ‘쩍벌 스탠스’, 데릭 지터(뉴욕 양키스의 타자)의 얼굴을 조합한 내 타격 폼으로 돌아왔다(그랬더니 감독이 출전을 안 시켜주고 있다).

서두가 길었지만 어쨌거나 개성 넘치는 타격 폼을 가진 타자들이 멋지지 않으냐는 얘기다. 그들은 야구를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생의 지루한 전형성과도 싸울 줄 아는 사람들이니까.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나를 가장 매료시킨 타자는 롯데 자이언츠의 박정태 선수였다. 그의 타격 폼은 나의 오장육부와 발가락까지 미치게 만들었다. 도대체 그런 폼으로 야구를 하는 선수가 야구 만화가 아닌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상을 까무룩 잊게 만들어줄 정도였다. 방망이에서 한 손을 떼고 몸을 잔뜩 오므린 채 흔들흔들거리다 벼락같이 공을 때려내는 타격 폼이라니! 게다가 누구보다도 악바리 같은 눈빛에다 유니폼 상의 한쪽을 어깨 위로 접어 올린 포인트까지.

‘헝그리 정신’ 표현한 조원우의 타격 폼

그의 타격 폼은 한 군데도 빠짐없이 타격 폼이라는 한정성을 폭발하는 개성으로 확장해주는 쾌거였다. 그런 그가 프로에서 주전을 확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코치나 감독들의 편견과 맞서야 했을까. 그의 악바리 근성은 타격 자세에 대한 몰개성과 투쟁하며 얻어진 것인지도 모르며 잦은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일어나던 남다른 근성 자체가 그 개성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수염을 기르거나 머리를 염색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화려하고 위대한 개성이자 휴먼 다큐이다. 그가 은퇴한 뒤 더 이상 그 타격 폼을 볼 수 없게 되자 우울증이 생길 정도였다.

조원우 선수
박정태 다음으로 좋아하는 타격 폼은 조원우 선수의 것이었다. 나는 1990년대 말 쌍방울 레이더스의 처절한 ‘헝그리 정신’에 경도되어 있었는데 타격 폼으로 그 헝그리 정신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해준 선수가 조원우였다. 그의 타격 폼은 짧게 잡은 방망이를 딱 붙여 세운 채 눌러쓴 헬멧 사이로 눈만 보일 만큼 왼쪽 어깨에 턱을 묻고 있는 자세였다. 체구가 큰 선수가 아니었고 어깨와 팔, 얼굴을 잔뜩 쪼그린 자세가 마치 공이 얼굴로 날아올까봐 겁먹은 태도처럼 보였지만, 다른 각도에서 카메라가 얼굴을 클로즈업하면 그의 표정에서 소스라치게 처절한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불쌍함과는 다른 것이었다. 차 떼고 포 떼인 가난한 팀의 처지를 이겨내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의 발악에 가까웠다. 반쯤 가린 웅크린 얼굴 안에 반드시 쳐야 한다는 처절한 근성을 숨겨놓은 채 그는 ‘돌격대 정신’이라 쓰고 ‘헝그리 정신’이라고 읽어도 되는 외인구단 쌍방울 레이더스의 정신을 이끌었다. 톱타자로 고비마다 안타를 터트리며 자신의 처절 타법을 세상에 각인시키는 그의 모습은 나를 찡하게 만들었다. 나는 마감 직전인데 글이 안 써져서 격심하게 마음을 졸일 때면 조원우 선수의 눈망울을 떠올려본다. 그러면 정말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되곤 한다(아아, 지금도 그런 눈빛을 하고 있다).

아무튼 지난 30년 동안 내가 좋아했던 타격 폼 차트를 쭉 얘기하자면 〈시사IN〉 두께가 전화번호부만 해야 할 테니까, 오늘은 이 정도만 쓰겠다. 결론이다. 그야말로 ‘떡하니’ 서 있다는 느낌을 주던 김기태 선수의 타격 폼(아, 그가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방망이를 쭉 펼쳤다가 들 때의 매혹적 느낌이란!). 말도 마라, 타격 폼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후련해지던 양준혁 선수의 ‘만세 타법’. 그리고 흡사 말을 탄 것 같은 자세로 팀의 중심을 지켜내던 송지만 선수의 허벅지 등등.

양준혁 선수의 ‘만세 타법’은 볼 때마다 가슴이 후련했다.
초월 의지 담긴 타격 자세들

나는 그렇게 좋아하던 선수들의 타격 폼을 읽으며 프로야구를 즐겨왔다. 요즘엔 타석에 누군가 서서 타격 자세를 취하면 굳이 얼굴이나 등번호를 비춰주지 않아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타격 자세를 보는 눈까지 업그레이드되었다. 비슷한 것 같아도 미묘하게 다른 선수들의 타격 폼들을 감상하며 내가 깨달은 건 하나다.

무언가를 때리려고 하는 자세는 초월에의 의지를 가진 아름다운 극복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빌어먹을 인생의 비루함을 날려주겠다는 의욕을 가진 ‘휴먼 다큐’인 것이다. 야구 선수들의 타격 폼에서 그들의 삶을 읽는 감동 때문에 나는 도저히 야구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글쓴이 박상은 소설집 〈이원식씨의 타격폼〉을 출간한 소설가로 문인 야구단 ‘구인회’에서 우익수와 1루수를 오가며 활약하고 있다.

기자명 박상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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